소비자에서 투자자로, 크라우드 펀딩으로 크는 게임시장

게이머들이 소비자란 위치에서 벗어나고 있다. 불특정 다수로부터 정해진 기한 안에 목표 금액만큼 투자받아 공개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는 크라우드 펀딩 활동 덕분이다. 단적인 예로 미국 현지시각으로 지난 6월 16일 액션롤플레잉게임 '쉔무 3'의 크라우드 펀딩이 시작 하루 만에 목표 금액인 200만 달러를 달성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100만 달러를 모금에 성공한 비디오게임 프로젝트란 기록도 따라왔다. '쉔무 3'의 크라우드 펀딩을 알린 자리가 전 세계로 생중계된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의 플레이스테이션 컨퍼런스란 점을 고려해도 게이머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크라우드 펀딩에 나서는지 잘 나타난 사례다.

쉔무3
쉔무3

약 10년에 걸쳐 크라우드 펀딩의 규모가 커진 만큼 게임시장이 여기에 영향을 받은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먼저,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 가상현실 기기 '리프트'가 이 지난 2012년 시작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탄생했다. 이 '리프트'가 가상현실 게임에 대해 공론화를시키고,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의 플레이스테이션 4 전용 가상현실 기기 '프로젝트 모피어스'와 마이크로소프트의 가상현실 기기 '홀로렌즈'의 등장에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해외에서는 이미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여러 종류의 게임용 주변기기가 출시됐다.

오큘러스 리프트
오큘러스 리프트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도 크라우드 펀딩을 거친 사례가 많다. 특히, 지난 2012년 롤플레잉게임 '웨이스트랜드 2'의 약 300만 달러, 2013년 액션게임 '마이티 넘버9'의 약 400만 달러, 2015년 5월 액션게임 '블러드스테인드'의 약 550만 달러 모금 성공 사례 등 금액 규모가 매년 커지고 있다. 물론 저 기록들은 해당 프로젝트의 최소 목표치보다 수 배를 넘은 액수다. '쉔무 3' 역시 이 대열에 합류해 최종 모금액이 얼마나 올라갈지 많은 게이머들 관심이 쏠려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게이머들이 주도해서 100만 달러 단위의 모금액으로 게임 개발을 진행시킨다는 발상은 떠올리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제는 간단한 회원가입 절차와 신용카드, 페이팔처럼 해외 결재 수단만 쓸 수 있으면 전 세계 게이머들이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할 수 있는 세상이 왔다. 이 변화에 대해 일각에서는 비금융 기업들의 금융 서비스 활용, 이른바 '핀테크'의 등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일부 전문가들이 10년 전부터 IT기술을 통해 미래에 바뀔 산업 중 하나로 금융 시스템을 예로 들었으며, 크라우드 펀딩의 태동 시기나 적용 기술 모두 '핀테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블러드스테인드150706
블러드스테인드150706

또한, 크라우드 펀딩의 성공 요인 중에서는 게이머들의 바람을 정확히 파악한 게임 개발자들의 분석도 빼놓을 수 없다. '웨이스트랜드 2'의 제작자 브라이언 파고는 25년 전 발매된 롤플레잉게임 '웨이스트랜드'와 유사한 시스템으로 개발할 것을 예고해 과거의 향수를 잊지 않은 게이머들로부터 모금을 진행할 수 있었다. '마이티 넘버9'의 개발자 이나후네 케이지와 '블러드스테인드'의 개발자 이가라시 코지도 마찬가지다. 각각 캡콤의 액션게임 '록맨 시리즈'와 코나미의 액션게임 '악마성 시리즈'를 여러 해 맡았었고, 두 명 모두 해당 게임의 정신적 후속작을 개발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해당 시리즈의 팬들에게서 모금을 이끌어냈다. 모금액에 따른 추가 옵션 역시 출시 기종의 추가, 신규 콘텐츠 등 게이머가 직접 체감할 수 있는 혜택이 대부분이다.

마이티 넘버9
마이티 넘버9

물론 크라우드 펀딩을 성공했다고 해서 게임이 바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모금 전에 제시했던 목표나 기준치에 못 미친 결과물로 투자자들로부터 비탄을 받은 게임도 다수 존재한다. 그래서 비판론자에게 '구걸'이란 표현을 듣거나 투자가 어려운 소규모 프로젝트를 위한 크라우드 펀딩의 취지가 훼손된다는 평가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이름값 있는 개발사가 맡았거나 모금 전부터 퀄리티를 확인할 수 있는 크라우드 펀딩이 투자자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FPS게임 ‘헤일로: 리치’의 총감독을 맡았던 크리스찬 앨런이 참여한 액션게임 ‘테이크다운: 레드사브르’가 발매 전 게이머들의 기대를 모았다가 발매 후 혹평을 받은 것처럼 이름값과 선행 공개의 내용 역시 확실한 보증 수단은 아니다. 또한, 개발 전 혹은 개발 중에 진행되는 투자인 만큼 크라우드 펀딩이 끝난 뒤 게임 개발이 얼마나 연기가 되어도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한 게이머는 기다릴 수밖에 없다. ‘웨이스트랜드2’, ‘마이타 넘버9’ 등 대규모 크라우드 펀딩에 성공한 게임들도 발매 연기를 피하지 못 했다. 크라우드 펀딩이 계속 게임시장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해당 프로젝트의 완성을 위한 해법을 나와야 할 것이다.

큐라레1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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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대한민국의 경우 해외처럼 게임 부분에서 억 원 단위의 크라우드 펀딩을 성공한 사례는 아직 없다. 해외보다 열악한 게임 개발 환경 및 시장 규모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다만, 지난 2013년 도서출판 초여명에서 보드게임 '던전 월드'를 출판하기 위해 시작한 크라우드 펀딩이 약 5,800만 원, 2014년 아울로그에서 개발 및 서비스 중인 모바일게임 '재배 소년'의 더빙 비용 크라우드 펀딩이 약 1,600만 원, 2015년 4월 스마일게이트 메가포트에서 서비스 중인 카드배틀 모바일게임 '큐라레: 마법 도서관'의 OST 제작 크라우드 펀딩이 약 3,900만 원 모금에 성공했다.

이 모금 액수는 크라우드 펀딩에 대한 국내 게이머들의 이해도가 높아졌으며, 해외의 크라우드 펀딩 사례를 통해 국내의 크라우드 펀딩의 성공 가능성을 확인한 국내 게이머들의 크라우드 펀딩 참여 의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추세로 크라우드 펀딩의 규모가 커진다면 차후 게임 개발을 위한 프로젝트의 성공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크라우드 펀딩이 게이머의 의사를 반영하기 쉬운 수단이란 점은 해외에서 이미 증명됐다. 따라서 확률형 아이템 논란을 비롯해 늘어만 가는 게임 개발사와 게이머의 견해 차이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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