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스토리] 엔씨소프트 연대기 7화 : 게임에서 펼쳐진 민중봉기-바츠 해방전쟁

**[게임동아에서는 2015년을 맞이하여 게임 기업의 탄생부터 성숙기까지 더한 연대기형 특집 '기업스토리'를 진행합니다. 첫 번째로 선정된 회사는 엔씨소프트로, 엔씨소프트의 과거와 현재를 비롯하여 정치, 인사, 경제 등 가능한 폭넓은 분야를 토대로 다루어볼 계획입니다. - 기사 내 대화는 당시의 상황을 유추해 각색한 것으로 현실과 다소 다른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

  • 참고 : [위키피디아]‘바츠 해방 전쟁’ / [엔하위키]‘바츠 해방 전쟁’ / [슈리아 블로그]제 1,2차 바츠 해방전사 / 바츠해방전쟁 연표(출처 : '한국형 디지털 스토리텔링' - 이인화 교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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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씨소프트에서 '리니지2'의 서비스를 시작한 후 게임 내에서 기억에 크게 남을만한 사건이 몇개 발생하게 되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바츠 해방전쟁'이다.

'바츠 해방전쟁'이란 2004년에 '리니지2' 서버 중 하나인 '바츠' 서버를 장악하고 있던 'DK(Dragon Knights) 혈맹'의 독재에 대항하여 전 서버의 게이머들이 단합하여 맞섰던 온라인 게임 내의 전쟁을 말한다.

바츠 해방전쟁
바츠 해방전쟁

엔씨소프트 연대기를 다루면서 7화에 '바츠 해방전쟁'을 하나의 큰 꼭지로 다루고자 마음 먹었는데, 그 이유는 이 사건이 비단 엔씨소프트 뿐만이 아니라 온라인 게임 역사에 있어 전세계적으로 희귀한 일이며 의미가 있는 사건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바츠 해방전쟁은 '온라인 최초의 시민혁명'이라고 할만한 하나의 민중봉기였으며, 향후 등장할 온라인 게임 '월드오브워크래프트'에 있었던 전염병 사건과 함께 학술적, 인간 심리적으로도 널리 다루어지고 있는 사건이다.

특히 이 전쟁은 2004년부터 2008년까지 4년간 이어졌으며, 20만 명 이상의 '리니지2' 게이머가 참여했고 만화, 문학, 예술 작품전시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 재생산된 바 있을 정도로 국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간략한 바츠 해방전쟁의 히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2003. 7. 9 : '리니지2' 오픈베타 시작.
2003. 9. 14 : DK혈맹 제네시스, 신의 기사단과 3혈맹 연합을 결성, 혈맹을 주축으로 한 반란 진압.
2003. 10. 9 : DK, 제네시스, 신의 기사단 기란성에서 정식 동맹식 체결. 3혈 독재 시대 시작.
2004. 11. 2 : DK혈맹 최초로 피의 군주 누르카 정복. 최초로 혈맹 아지트를 획득.
2004. 3. 19 : 아키러스 전 서버 최초로 75레벨에 도달.
2004. 3. 23 : 거대 3혈동맹 단결식.
2004. 5. 9 : 붉은혁명혈맹 기란성 점령. 바츠 해방과 모든 세금 폐지(세율 0%) 선포.
2004. 5. 23 : 거대 3혈동맹 붉은혁명혈맹으로부터 기란성 탈환.
2004. 6. 10 : 바츠 해방 전쟁'에의 참전을 호소하는 문건들 출현.
2004. 6. 14 : 안타라스의 동굴(일명 용던) 입구에 최초의 내복단 'K?내복단' 2개 파티가 출현.
2004. 6. 14~19 : 내복단의 절정기. 바츠 혁명군 곳곳에서 승리.
2004. 6. 19 : 내복단의 타락 현상 나타남. 바츠 혁명군이 내복단을 공격하는 사태가 보도됨.
2004. 6. 28 : 제네시스혈맹 3혈동맹 탈퇴, 바츠 혁명군에 투항, DK, 신의 기사단, 정혈, 위너스 4혈동맹 결성.
2004. 7. 17 : 혁명군, 아덴성 공성에 성공. '바츠 해방의 날' 선포됨.
2004. 7. 18 : 아덴성의 소유권(제네시스혈맹이 각인)을 둘러싼 혁명군의 상호 비방 시작됨.
2004. 7~11월 : 혁명군, 오랜·아덴·기란·글루디오 4개성 점령. DK혈맹, 오만의 탑에 은신.
2004. 8. 28 : 신의 기사단을 선봉으로 한 4혈동맹 오랜성 탈환 시도. 바츠 혁명군에 패퇴함.
2004. 11. 18 : 붉은혁명과 리벤지 혈맹전 선포. 바츠 혁명군 분열.
2004. 12. 19 : 정혈, 혁명군의 오랜성 공격을 단독으로 방어함.
2005. 1. 27 : DK혈맹, 무제한 척살령 다시 발동함.
2005. 4. 20 : 신의 기사단, 제네시스혈맹을 섬멸하고 혈맹을 해체시킴.
2006. 5 : DK혈맹의 해체, 아키러스의 혈맹 해단식 진행
2006. 8 : DK가 해단되었지만 연합군 사이에 분열, 6혈 동맹이 장악 (횡포 시작)
2007. 3 : 제2차 바츠해방전쟁 : 6혈동맹과 다시 연합군이 등장 대결구도 진행
2008. 3 : 6혈 동맹은 모든 성을 빼앗기고 게시판을 통해 바츠 서버 유저들에게 항복을 선언

(1) DK 혈맹, '바츠' 서버의 폭군으로 군림.. 강압적 행태에 반발

바츠 해방전쟁이 열린 것은 악명 높은 DK(Dragon Knights) 혈맹이 그 시작이었다. DK 혈맹은 '리니지2' 초창기 때부터 '바츠' 서버를 점령하고 강압적인 횡포를 일삼던 혈맹으로, 고레벨 게이머들이 혈맹원으로 참여해 실질적으로 바츠 서버의 중심에 서 있었다. 또한 우수한 다른 혈맹들과 게임 속에서 동맹을 체결하여 견고한 지배 체계를 구축해갔다.

하지만 이렇게 지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후 DK 혈맹은 사냥터를 통제하고 지배중인 성에서 높은 세율을 매기는 등 악행을 일삼아 다른 피 지배층 게이머들에게 원성을 사기 시작했고, 결국 DK 혈맹에 대항하는 연합군이 생겨나면서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특히 DK 혈맹의 높은 세율에 반발한 혈맹 중에는 '붉은 혁명'이라는 혈맹이 있었는데, 이 혈맹은 50명을 이끌고 DK 혈맹이 지배하던 기란성을 점령하고는 세율을 0%로 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많았던 DK 혈맹에서 2주만에 '붉은 혁명' 혈맹을 치고 다시 기란성을 탈환하면서 높은 세율을 매기게 되고, 이를 계기로 여기저기서 연합군이 생겨나면서 DK 혈맹에 대항하기 시작한다.

연합군은 대부분 저레벨 게이머였고, 연합군은 인해전술로 DK 혈맹과 맞섰지만 전투력의 차이로 인해 일방적인 학살을 당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학살은 학살로 끝나는 것이 아닌, 다른 게이머들을 더욱 불붙게 하는 요소가 되었다.

바츠 해방전쟁 엔씨 리니지2
바츠 해방전쟁 엔씨 리니지2

(2) 내복단의 출현

'바츠 해방전쟁' 초기에 DK 혈맹에 대항하는 일부 혈맹들은 스스로를 '연합군'이라고 칭했다. 당시 열세였던 연합군은 '리니지2' 자유게시판에 호소문을 올리며 일반 게이머들의 동참을 호소했고, 이를 본 다른 서버의 게이머들이 DK 타도를 위해 '바츠' 서버에 모이기 시작했다.

호소문의 내용을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단 1렙짜리 캐릭이라도 수십 명이 모여서 DK 혈맹에게 공격을 가하면 물리적으로만이 아닌 심리적으로도 큰 위축을 가져올 것입니다. 이번 전쟁은 바츠 서버만이 아닌, 전 서버가 그 결과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특히 거대 혈에 억눌려 있는 많은 저주서버 유저들이 함께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엔씨 리니지2 바츠해방전쟁 내복단
엔씨 리니지2 바츠해방전쟁 내복단

실제로 이 호소문을 보고, 또 학살 소문을 들은 많은 타 서버 게이머들이 바츠 서버로 모여들었는데, 당시에 '리니지2'는 타 서버간 이동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타 서버의 게이머들은 바츠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신규 캐릭터를 만들어야만 했다. 이에 레벨1에 기본 장비만 갖춘 캐릭터들이 바츠 서버에 대거 등장했고, 흰색의 기본 복장을 입은 이들을 사람들은 '내복단'이라 불렀다.

(3) 내복단의 활약과 제네시스 혈맹의 합류

전 서버에서 모여든 연합군 소속의 내복단은 인해전술로써 DK 혈맹을 압박했다. 내복단들은 고레벨 사냥터인 '용의 던전'으로 수십 명씩 몰려가 있다가, DK 혈맹 소속의 파티가 출현하면 떼를 지어 공격했다. 전략은 DK 혈맹을 공격할 때 체력이 가장 약한 힐러를 먼저 집중 공격하여 쓰러뜨린 뒤에, 나머지 전투 부대를 물리치는 방법을 썼다.

하지만 이렇게 내복단의 지속적인 공격과 불리한 여론에도 불구하고 DK 혈맹은 한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압도적인 레벨 우위와 사냥터 독점으로 인한 아이템 우위로 연합군을 계속 학살할 뿐이었다.

엔씨 내복단 바츠 해방전쟁
엔씨 내복단 바츠 해방전쟁

전쟁이 커지면서 연합군의 숫자도 점점 커졌는데, 2004년 7월 즈음에는 연합군이 32혈맹으로까지 늘어났으며, 여기에 DK의 3대 혈맹 중 하나인 제네시스 혈맹이 탈퇴하여 내복단이 속한 연합군으로 들어서면서 전황이 확 바뀌게 된다.

특히 제네시스 혈맹을 위시로 하여 연합군이 바츠서버 5개의 요충지 중 하나인 오렌성을 빼앗아내면서 DK는 크게 당황하게 되고, DK는 곧 '정 혈맹', '위너스 혈맹'과 'DK 연합'을 구축해 재정비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4) 아덴 공성전 - 바츠 해방의 날 선언

2004년 7월, 연합군과 DK 혈맹 사이에서 바츠 서버의 중심 요충지인 아덴성을 둘러싼 치열한 공성전이 벌어졌다.

바츠해방전쟁
바츠해방전쟁

당시 연합군의 동맹은 40개였으나, 세력적으로는 DK를 위시한 4대 혈맹에게 밀렸다. 연합군은 계속해서 DK연합을 압박했으나, DK 연합은 최고 레벨 군단인 만큼 노련한 전술로 바츠 연합군을 상대했고, '전 서버 최강의 전투 부대'라는 '아키러스 파티'가 나타나자 오히려 바츠 연합군이 초토화되기에 이른다.

이렇게 연합군이 힘에 밀려 후퇴하자, DK 연합은 자신만만하게 근거지인 오랜성을 탈환하려고 궁수 부대만 남겨둔 채 아덴성을 떠나게 되는데, 이게 최대의 실수였다. DK 연합의 주력 군대가 자리를 뜨자마자 퇴각한 척 하던 연합군이 아덴성에 있던 DK 혈맹의 궁수부대에게 돌진하여 전멸시켜버린 것이다. 게다가 이 전투에서 DK 혈맹의 총군주인 shadow 여솔도 쓰러뜨리면서 DK 혈맹은 크게 당황하게 된다.

바츠해방전쟁
바츠해방전쟁

급기야 DK 혈맹이 아덴성으로 복귀하면서 전열을 가다듬으려 하지만, 인해전술로 밀어부치는 내복단 때문에 여의치 않았고, 결국 제네시스 혈맹이 성을 점령하게 된다. 또 DK혈맹의 핵심 전투원들이 산재되어 공격받아 쓰러지면서 연합군이 최종 승리를 거머쥐었으며 이 날은 '바츠 해방의 날'로 선언되었다. 당시 PC방에서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는 사용자들까지도 있었다고 한다.

(5) 바츠연합군의 분열과 4대 혈맹의 역습

아덴 공성전에서 패배한 DK 혈맹은 2004년 11월까지 기란성, 글루디오성마저 모두 빼앗기고 새로 패치된 '오만의 탑'으로 숨어들어갔다. '오만의 탑'은 최고 레벨 캐릭터들이 주로 들어갈 수 있는 던전으로, DK혈맹은 이곳에서 숨고르기를 하다 오랜성을 되찾으려 다시 한번 뭉쳤으나 연합군에게 다시 패배하는 등 재기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DK 혈맹이 주춤한 순간부터 전리품을 둘러싼 바츠연합군의 분열이 시작되었다. 보상에 대한 불만이 표출되어 혈맹들이 서로 다투기 시작했고, 오히려 DK 혈맹과 연합하는 혈맹이 생겨나는 등 불안한 모습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바츠해방전쟁
바츠해방전쟁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분열조짐을 바라보던 타 서버의 게이머들, 즉 내복단이었다. 분열하는 모습에 실망한 내복단이 떠나가면서 연합군을 지지하는 세력이 크게 줄어들었고, 이 틈을 타 DK 혈맹은 빼앗긴 성을 모두 수복했으며, 다시 모든 정권을 잡게 된다.

그 후 2005년 1월27일, DK 혈맹은 다시 무제한 척살령을 발동하여 과거 연합군에 가담한 캐릭터들을 발견하면 로그인 하자마자 PK 했다. 이 당시에 DK 혈맹이 척살한 게이머는 하루에만 700명에 달하기도 했다.

바츠해방전쟁
바츠해방전쟁

(6) DK 혈맹의 해체 - 1차 종전

그렇게 DK 혈맹이 바츠 서버를 장악하고 연합군이 조금씩 게릴라 작전을 펼치며 지내던 가운데, 2006년 5월에 돌연 DK혈맹의 리더 아키러스가 혈맹을 해체하겠다고 선언하게 된다. 최고의 전성기 때 자진 해산한다는 것으로, 아키러스는 "DK 혈맹은 선 보다 악을 선택했고, 악이 있었기에 선은 더욱더 빛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는 말을 남겼다.

이후 DK혈맹이 자발적으로 해산함으로써 2년에 걸친 바츠 해방전쟁은 끝나는 모양새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DK혈맹이 해체되었다고 해서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DK 혈맹이 해체된 후 이 혈맹원들이 6개의 혈맹으로 나뉘어져 동맹을 이루는 6혈 동맹이 생겨났는데, 이들이 서버를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또다른 횡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7) 제2차 바츠 해방전쟁 발발과 끝

물론 6개 혈맹이 동맹 형태로 유지되었지만, 과거 DK 혈맹에 비해 조직력과 힘은 약해질 수 밖에 없었다. 때문에 6혈 동맹은 전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사냥터를 통제하기 시작했고, 이에 반발한 중립 혈맹들이 중립연대를 발족하면서 제 2차 바츠 해방전쟁이 시작되게 된다. 이때가 2007년 3월이다.

하지만, 오랜 기간 전쟁을 해온 6개 혈맹은 계속되는 전쟁으로 인한 피로와 내분으로 지치기 시작했고, 또 서로의 전략이나 전술, 목표 또한 달라 내분을 이기지 못하고 붕괴하고 말았다. 이렇게 2차 바츠해방전쟁도 드디어 막을 내리게 된다.

6혈 동맹은 모든 성을 빼앗긴 후 게시판을 통해 바츠 서버 게이머들에게 항복을 선언했으며, 이로써 약 4년에 걸친 시간 동안 바츠 서버를 지배해 온 DK 연합과 6혈 동맹의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이후 바츠 서버의 역사는 새로운 혈맹과 새로운 게이머들에 의해 쓰여지게 되었다.

< 바츠 해방전쟁의 의미>>

이렇게 20만 명의 게이머들이 만들어낸 4년간의 전쟁이었던 '바츠 해방전쟁'이 막을 내렸는데, 이 전쟁은 역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가치를 얻는 이유로는 우선 인간이 펼치는 전쟁의 새로운 단면을 엿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원래 인류가 생기고 전쟁은 항상 있었으며,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츠 해방전쟁'은 이러한 현실에서 진행됐던 전쟁사의 모습과 굉장히 흡사하며, 인간의 본연의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자료로 삼기에 충분한 여러 기록을 남겼다.

바츠해방전쟁
바츠해방전쟁

특히 연합군의 극적인 승리,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전리품을 둘러 싼 분열. 갑작스런 DK 혈맹의 해체, 또 다른 갈등의 시작 등 이 모든 것들은 현대의 인간사와 그대로 비교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실제로 국민들이 피를 흘리며 탈환했던 역사적 사례로 '프랑스 대혁명'을 보는 듯한 모습이 '바츠 해방전쟁'에는 녹아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바츠 해방전쟁' 안에 펼쳐진 수많은 인간사의 발췌와 한국 온라인 게임의 변화를 가치로 둘 수 있다.

레벨1으로 태어나 퀘스트를 지나서 캐릭터를 키워가고, 혈맹으로 들어가고, 또 군주가 되는 '리니지2'의 시스템은 인간사의 시스템을 간략화해놓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과정에서 '리니지2'에는 크고 작은 스토리들이 생겨나고,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교류가 이어졌다.

그런 여러 에피소드 중에서도 특히 전쟁으로 인한 횡포에 대한 자유 의지를 표출은 역사적으로 희귀한 것으로 꼽힌다. 끝끝내 민주주의를 실현시키지 못한 점 등도 고찰해볼 부분으로 남아있다.

여기에 '바츠해방 전쟁'이 국내 온라인 게임에도 큰 영향을 미친 점도 주목할 만 한데, 이 전쟁 이후 '리니지2'는 동시접속자 10만 명이 넘어갈 정도로 전성기를 맞이했으며, 다른 온라인 게임들 또한 전쟁과 전투, 혈맹 등을 메인 콘텐츠로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즉, '바츠 해방전쟁'은 MMORPG의 기본을 정착시키는 계기가 됐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 < 바츠 해방전쟁을 기념한 다양한 행사들>>

이렇게 4년간 진행된 바츠 해방전쟁은 많은 이슈를 낳았고, 다양한 2차 저작물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4년간의 장대한 일대기를 다룬 소설, 이를 디지털 스토리로 바라보는 시선 등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의 생각 또한 다양했다.

소설가 명운화 씨가 2008년 10월에 바츠 해방전쟁에 참여해 남긴 기록을 책으로 출판한 '바츠 히스토리아'라는 책은 바츠 대전쟁의 5년간의 이야기를 현실감있게 다뤘다.

수많은 갈등과 연계된 스토리를 다루면서 이 책에 대한 표어는 "삼국지와 일리아드를 뛰어넘는 21세기 대전쟁"이었다. 작가가 그만큼의 가치 평가를 내린 셈이다.

바츠해방전쟁
바츠해방전쟁

또 강희진 소설가는 '바츠 해방전쟁'을 테마로 한 '유령'이라는 책을 내서 2011년 제 7회 세계 문학상을 수상받기도 했다. 이 소설은 연쇄 살인이 일어나는 미스터리적 구성의 작품이지만 '바츠 해방전쟁'의 영향을 받았고, 이 전쟁을 소설과 절묘하게 결합시킴으로써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여기에 이인화 교수는 '한국형 디지털 스토리텔링'이라는 책을 통해 '리니지2' '바츠해방전쟁'을 디지털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나가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해외 게임 전문가들이 내놓은 '제국의 게임'에서도 '바츠 해방전쟁'이 중점적으로 다루어지는 등 '바츠 해방전쟁'은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거듭나고 있는 상태이다.

< <엔씨소프트, 다양한 기념 콘텐츠 제작>>

엔씨소프트도 '바츠 해방전쟁'에 대해 굉장한 비중을 두고 관리하고 있는 상황이다.

엔씨소프트는 지난 2012년 6월부터 9월까지 '바츠 해방전쟁'을 기념한 '게임X예술 : 바츠 혁명전' 전시회를 경기도 미술관에서 진행한 바 있다.

바츠해방전쟁
바츠해방전쟁

전시회는 게임의 세계관과 현실세계의 충돌, 가상 공간 내 사건과 이어지는 현실의 삶을 '바츠 해방전쟁'을 주제로 표현했으며, 전시에 초대된 예술가들은 게임 캐릭터, NPC(Non Player character), 퀘스트, 보상, 현실화의 다섯 가지 단계로 구분시켰다. '리니지2' 캐릭터와 '바츠 해방전쟁' 이미지를 비롯하여, 경기도 미술관의 소장품 및 이번 주제와 관련된 회화, 사진, 설치 조형물, 영상 등의 작품이 전시됐다.

엔씨 바츠해방전쟁
엔씨 바츠해방전쟁

또 엔씨소프트는 지난 2014년에 '리니지2' 바츠해방전쟁 10주년 기념행사를 열면서 다시 이 전쟁을 기념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때 엔씨소프트는 '바츠 해방전쟁' 당시의 영상 등을 공개하고 이에 참여한 이용자들의 손도장(핸드프린팅)을 찍는 순서 등을 마련했으며, 2004년 당시의 버전을 되살린 '클래식 서버'를 발표하면서 '리니지2'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엔씨소프트의 '바츠 해방전쟁' 사랑은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는데, 일례로 가장 최근인 2015년 6월17일에 엔씨소프트는 '리니지2' 클래식 서버에 과거 '바츠 해방전쟁'이 펼쳐졌던 가장 요주의 접전지인 아덴성을 추가하는 대규모 업데이트를 진행하면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엔씨 바츠전쟁
엔씨 바츠전쟁

'바츠 해방전쟁'을 취재하면서 만났던 '리니지2' 강정수 사업부장의 한마디가 마음 속에 남는다.

"'바츠 해방전쟁'과 같은 경험을 세상 어디에서 해보겠습니까. '삼국지'와 같은 대전쟁의 시대를 직접 경험했던 분들을 저희가 10주년 기념 행사 때 모았었지요. 당시에 그렇게 으르렁 거리시던 분들이 10년 후 오프라인에서 모여서 서로 반갑게 인사하면서 그때를 회상하시더군요. 그 모습을 바라보니 역사의 한 장면 같기도 했고, 게임이 단순히 게임이 아니라는 것을 온몸으로 체감하게 되었었죠. (웃음)"

- 8화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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