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준의 게임히스토리] 주먹이 절로 쥐어지는 게임 속 강렬한 악당들

작게는 개인적인 원한으로 생긴 적부터 크게는 국가를 위협하는 적국 그리고 인류의 존망을 위협하는 외계인까지 게임에는 언제나 주인공이 일망타진해야 하는 다양한 스타일의 악당들이 등장해 게이머의 앞길을 막고는 한다.

과거의 게임에는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마왕이나, 히로인(여주인공)을 납치하는 악당 등 처음부터 끝까지 ‘나쁜 놈’ 스타일의 1차원적인 악당이 주로 등장했지만 최근 게임 속 선악 구분이 모호해지는 흐름에 따라 본인은 의도치 않았으나 악당이 된다든가, 악당이지만 주인공 이상의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게이머들의 호평을 받는 등 악당들의 종류도 점차 다양해 지고 있다.

게임의 중심이 되는 사건의 흑막이자, 원수로 등장해 주인공의 앞길을 막는 악당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게임의 역사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악당들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쿠파
쿠파

- 공주 납치만 30년. 납치 외길 인생을 걸어온 뾰족 거북 악당 ‘쿠파’

게임 역사상 가장 빛나는 아이콘으로 불리는 마리오도 쿠파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쿠파군단의 통솔자이자 시간만 나면 버섯 왕국(피치 공주가 있는 왕국)을 침공하여 피치 공주를 납치해가는 전형적인 악당 캐릭터로 등장하는 쿠파는 처음 게임이 등장한 이래 무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마리오의 숙적으로 군림하며 마리오(게이머)에게 치이고 밟히며 최후를 맞이하고 있는 캐릭터다.

쿠파의 가장 큰 주특기는 위에서도 언급한 ‘납치’. 매번 수 많은 부하들과 막강한 무기들을 앞세워 피치 공주를 납치하는 쿠파는 납치 때 마다 마리오가 달려와 자신의 왕국을 초토화 시키며 공주를 구출하는 것을 수십 년간 반복한 ‘납치’ 업계의 전설적인 존재로 불리기도 한다. 얼마나 ‘납치’를 많이 했는지 최근 작품에서는 버섯 왕국의 백성들이 피치 공주가 끌려갔다는 소식에 “마리오가 알아서 구해주겠지”라는 반응을 보일 정도.

다만 2013년 닌텐도 Wii로 출시된 ‘슈퍼 마리오 3D 월드’에서는 시리즈 최초로 쿠파가 피치 공주를 납치하지 않으며 수십 년간 이어진 마리오 시리즈의 법칙이 깨어지기도 했다. 물론, 납치 업계의 대부답게 피치 공주를 제외한 나머지 왕국의 공주들 7명을 한꺼번에 납치해 갔지만 말이다.

쿠파
쿠파

워낙 시리즈의 출현이 잦고 인지도가 높다 보니 ‘쿠파’는 마리오를 소재로 한 다양한 장르의 게임에서도 출현도 잦아 ‘마리오카트’, ‘마리오파티’, ‘대난투 스매시 브라더스’ 등의 시리즈에서 꾸준히 등장하고 있기도 하며, 본가에서는 최강의 악당으로, 외전에서는 익살스러운 캐릭터로 맹활약을 이어가는 중이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쿠파’의 이름은 한국의 ‘국밥’에서 유래됐다는 것으로 마리오의 아버지 미야모토 시게루가 한국에서 식사를 하던 중 ‘국밥’이라는 단어를 듣고 굉장히 강렬한 이름이라는 생각에 이를 최종보스의 이름으로 선택했다고 한다. 이는 한국을 처음 찾은 2012년 직접 밝힌 내용이며, 미야모토 시게루는 처음에는 ‘국밥’이 불고기같이 고기를 구워 먹는 음식인 줄 알았는데 한창 시리즈를 출시하던 나중에서야 밥을 말아 먹는 음식이었다는 걸 알았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히기도 했다.

스타2
스타2

- 15년을 이어온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의 최종보스 ‘아몬’

국민게임이라고 불리며, 전세계에 e스포츠를 대중화로 이끈 게임으로 널리 알려진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는 사실 멀티플레이 이외에도 뛰어난 싱글 플레이로 인정을 받은 게임이기도 하다. 이중에서도 치밀하게 구성된 스토리의 경우 저그와 프로토스 그리고 테란 자치령 내에서 벌어지는 인물 간의 물고 물리는 이야기와 테란의 영웅 짐 레이너와 사라 캐리건의 애증관계 그리고 프로토스의 몰락과 재기 등 블리자드 특유의 강렬한 스토리라인으로 전세계 게이머들에게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더욱이 10년의 공백을 깨고 등장한 ‘스타2: 자유의 날개’와 확장팩 ‘군단의 심장’은 뛰어난 설정의 싱글 플레이로 멀티플레이 못지않은 재미를 선사했던 것이 사실. 이러한 스타2에서 진정한 흑막이 드디어 마지막 확장팩 ‘공허의 유산’에서 등장하니 그 주인공이 바로 ‘아몬’이다.

프로토스와 저그를 탄생시킨 신적인 종족 ‘젤나가’ 중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지녔던 ‘아둔’은 곧 타락하여 수많은 형제들과 전쟁을 벌였으며, 테란과 저그 그리고 프로토스 세 종족을 이용해 부활을 꿈꾸며 전 우주를 암흑으로 물들게 하려는 그야말로 스타 시리즈의 최종 보스다.

스타2
스타2

자유의 날개에서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아몬’의 존재를 가장 먼저 눈치챈 이는 프로토스의 영웅 ‘제라툴’. 저그와 프로토스가 결합한 ‘혼종’을 막기 위해 예언을 찾아 나선 제라툴은 저그의 ‘초월체’(오버마인드)를 처치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테사다르’의 영혼으로부터 어두운 그림자가 저그와 혼종을 이끌며 프로토스의 항전에도 전 우주를 손아귀에 넣는 예지를 보게 되고 이내 숨겨진 흑막인 어둠의 목소리(‘아몬’)를 처음 인지하게 된다.

특히, 확장팩인 ‘군단의 심장’에서는 더욱 놀라운 사실이 밝혀지는데, 젤나가가 창조한 종족인 저그는 사실 난폭하며 학살을 자행하는 종족이 아닌 순수성을 지닌 종족이었지만, ‘아몬’이 ‘초월체’를 창조하여 저그의 자유의지를 속박했고, 이내 ‘프로토스를 파괴하라’라는 명령을 심어 넣어 지금의 저그가 되었다는 것이다.

‘초월체’에게 감염된 캐리건 역시 ‘아몬’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후 ‘테사다르’의 희생으로 초월체가 사망하고 이후 레이너가 인간으로 되돌린 것에 이어 스스로 최초의 산란못에 몸을 담가 원시 ‘칼날 여왕’으로 다시 탄생하면서 저그 군단 전체가 ‘아몬’의 적으로 돌아서 일이 점차 꼬이게 된다.

더욱이 수족이었던 ‘나루드’가 캐리건과의 일전 끝에 사망했고, 프로토스의 핵심 인물 제라툴 역시 ‘아몬’의 존재를 인지하고, 적대하고 있으며, 나루드를 통해 알게 모르게 ‘아몬’에 협력하고 있던 테란 자치령의 황제 ‘악튜러스 맹크스’가 짐 레이너 특공대와 캐리건의 협공으로 사망하여 ‘발레리안 멩크스’ 정권이 들어서며 ‘아몬’을 적대시하는 상황.

하지만 캐리건이 인간으로 될 때 분산된 에너지를 모아 ‘아몬’에게 바친 나루드가 아몬이 다시 완전히 부활했음을 암시했으며(나루드가 사망하면서 남긴 유언이 바로 “아몬은 이미 돌아왔다”) 수 많은 혼종들과 프로토스의 지지 세력들 그리고 정체불명의 생명체인 ‘보이드 트래셔’까지 이제 완전히 하나의 세력을 꾸려 전 우주를 휩쓸 준비를 마친 생태다.

공허의 유산
공허의 유산

이 ‘아몬’의 행보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것이 바로 스타2의 마지막 확장팩 ‘공허의 유산’으로, 15년을 이어온 스타 시나리오의 끝판왕 ‘아몬’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게이머들을 즐겁게 해줄지 관심이 쏠리고 있는 상황이다.

콜오브듀티 모던 워페어2
콜오브듀티 모던 워페어2

- 전세계 FPS 팬들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은 배신자 콜오브듀티: 모던워페어2의 ‘셰퍼드’ 장군

등장과 함께 영화적인 연출과 뛰어난 스토리라인으로 FPS에 새로운 장을 연 콜오브듀티 시리즈에는 유난히 인상 깊은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중에서도 전세계 FPS 게이머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준 캐릭터가 있으니 바로 콜오브듀티의 외전인 블랙옵스2에서 등장한 ‘허셸 폰 셰퍼드 3세’ 이른바 ‘셰퍼드’ 장군이다.

작중에서 미 육군의 장군으로 등장하는 ‘셰퍼드 장군’은 주인공 소프와 언제나 복면을 쓰고 다니는 든든한 아군 고스트, 그리고 프라이스 대위가 소속된 특수부대 ‘테스크 포스 141’의 사령관이기도 한 인물. 아프가니스탄에서부터 전장마다 맹활약을 펼치며 장군의 자리에 오른 그는 전쟁영웅으로서 미국 국방부의 신뢰를 얻게 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으니 바로 미국을 침공하는 테러리스트들을 방조하고 내부의 세력을 숙청함으로써 이후 벌어지는 세계 3차대전의 발발을 이끈 장본인이라는 것. 그는 러시아 자카에프 국제공항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 테러(‘리멤버 돈 러시안’의 그 미션)을 사전에 알고 있으면서도 묵인하여 러시아와 미국이 극한의 갈등을 빚는데 일조하며, 전세계에 전쟁의 불씨를 심기 시작한다.

더욱이 러시아의 공수부대의 침공으로 미국 백악관이 쑥대밭이 된 틈을 타 자신이 지시한 비밀작전을 수행한 ‘태스크 포스 141’ 부대원들을 함정을 판 사지로 몰아 넣어 입막음을 하려고 했다. 특히, 이 작전이 셰퍼드의 함정인 줄 몰랐던 로치와 고스트가 간신히 적진을 뚫고 정보를 획득한 채 복귀 지점으로 돌아왔을 때 셰퍼드에게 살해당하는 장면은 게임을 진행하던 FPS 팬들 모두에게 엄청난 충격을 받게 만들었다(사지를 뚫고 안전한 곳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가시기도 전 아군의 사령관의 총격에 사망하는 것을 1인칭으로 지켜본 순간은 어떤 반전 영화보다도 충격이었다)

콜오브듀티 모던 워페어2
콜오브듀티 모던 워페어2

이후 끝까지 그의 존재를 의심한 ‘프리이스’ 대위와 간신히 지옥에서 살아남은 ‘소프’가 대원들의 죽음에 복수하기 위해 셰퍼드를 쫓고 이후 정글에서의 끊임없는 추격 끝에 도망치는 그를 따라잡았지만 예사롭지 않은 격투실력으로 둘을 제압하고 프라이스 대위를 죽이려는 순간, 소프가 던진 나이프(이것도 셰퍼드가 직접 다리에 꽂은 것이다)에 눈이 찔린 후 사망하게 된다.

비록 미국의 입장에서는 역적이나 다름없지만, 전작인 블랙옵스에서 벌어진 핵폭발로 휘하 부대 3만명을 모두 잃고 이를 묵인하는 세계에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음모를 꾸미는 셰퍼드는 FPS 장르를 넘어 스토리가 중요시되는 RPG에서도 보기 드문 강렬한 인상을 남긴 캐릭터로 손꼽히고 있기도 하다. 특히, 고스트가 사망하는 충격적인 장면에 이어 게임의 클라이맥스에 등장하는 흔들리는 상태(셰퍼드에게 너무 많이 맞아서 정신을 못 차린다)의 ‘나이프 던지기’는 게임 역사상 가장 극적인 장면 중 하나로 손꼽히는 순간이기도 하다.

바이오쇼크
바이오쇼크

- 유토피아를 꿈꿨지만 지옥보다 못한 현실을 만든 독재자 ‘앤드류 라이언’

어둡고, 절망적인 세계를 다룬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표방한 작품은 많지만, 2K 게임즈의 ‘바이오쇼크’처럼 이를 현실적이고, 실감나게 다룬 게임도 드물다. 해저도시 ‘랩터’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사건을 다룬 1편과 2편 그리고 천상의 세계 같지만, 온갖 오만과 독선으로 가득한 기이한 공중도시 컬럼비아를 배경으로 하는 ‘바이오쇼크 인피니티’ 등 바이오쇼크 시리즈는 독재와 차별 그리고 한 지도자의 잘못한 선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다룬 심도 깊은 스토리로 게이머들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이 바이오쇼크 시리즈가 시작된 무대 해저도시 ‘랩처’를 설계하고 수 많은 사건의 원인이 된 인물이 바로 앤드류 라이언이다. 러시아 혁명에서 도망쳐 온 미국에서 사업을 일으켜 억만장자가 되었으나, 미국의 뉴딜 정책과 같은 사회 복지주의 정책에 불만을 품은 앤드류 라이언은 개개인의 발전이 ‘위대한 사슬’을 이룬다는 극한의 자유주의 사상을 주장하며, 자신의 재산을 쏟아 부은 해저도시 ‘랩처’를 설계하고 이를 새로운 유토피아라고 칭한다.

바이오쇼크
바이오쇼크

사회 엘리트 계층과 수 많은 시민들과 함께 ‘랩처’에 입주해 자신들 만의 국가를 선포한 그는 법과 종교, 세금 그리고 도덕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사람들의 자유에 맞기는 극한의 자유주의에 입각한 정책을 실시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무한의 자유’는 ‘무한의 경쟁’을 의미했고, 곧 경쟁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속출하지만 실패한 이들을 구제해줄 사회 보장 장치가 없어 이들은 곧 하층민으로 전락해 비참한 생활을 하기에 이른다.

더욱이 ‘프랭크 폰테인’이라는 인물이 지상의 물품을 제공하는 밀수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데 이어 ‘폰테인 미래회사’를 설립하고, 복지제도를 펼치며 하층민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으며, ‘랩처’의 2인자로 거듭 나게 되자 앤드류 라이언’과의 갈등이 심각해진다. 더욱이 폰테인이 환각과 함께 상처를 치유하는데 탁월한 ‘아담’이라는 물질을 ‘바다 민달팽이’에서 발견하고 이를 판매하며 전 랩터가 '아담'의 탐욕에 빠졌으며, ‘바다 민달팽이’를 사람에게 심어 넣을 경우 통상의 20배가 넘는 아담을 추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반 인륜적인 신체 실험을 계속하는 등 랩처는 서서히 광기에 휩싸이게 된다.

바이오쇼크
바이오쇼크

더욱이 폰테인을 제거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한 ‘앤드류 라이언’ 때문에 온 도시가 쑥대밭으로 된 것에 이어 결국 폰테인을 제거했지만, 이후 아틀라스라는 인물이 등장해 또 다른 내전에 휩싸이며 랩처는 결국 완전히 와해되고 만다. 더욱이 아담의 부작용으로 온 몸에 변이가 생기고 미치광이가되는 ‘스플라이서’가 속출한 데 이어 어린 소녀들에게 ‘바다 민달팽이’를 삽입시켜 ‘아담’을 생산하는 도구로 만든 ‘리틀시스터’와 이를 지키기 위해 신체의 장기를 제거하고 강화복에 집어넣어 만든 ‘빅대디’가 등장하는 등 유토피아를 꿈꿨던 도시 ‘랩처’는 괴물들과 반인륜적인 실험이 자행되는 지옥으로 변하고 만다.

극한의 자유주의를 꿈꿨던 앤드류 라이언은 기본적인 ‘행복 추구권’ 보다 자유를 위에 두는 오류를 범했고, 자유를 강제하는 사회에서 경쟁에 실패한 이들은 앞으로도 영원히 실패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고 만다. 절망에 빠진 이들은 곧 사회가 혼란해지자 폭도로 바뀌었고, 다른 곳으로 도망칠 길이 없는 ‘해저도시 랩처’는 곧 절망에 빠진 실패한 도시로 남게 된다.

이처럼 뛰어난 사업수완을 가졌으나 잘못된 생각으로 사람들을 이끌어 하나의 사회를 지옥으로 만든 앤드류 라이언은 사상가나 정치가가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 완벽한 사회 혹은 완벽한 제도로 포장된 곳이 어떻게 타락하는지 게이머들에게 생생한 체험을 남겨주며 깊은 인상을 남긴 캐릭터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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