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준의 게임 히스토리] 불꽃처럼 바람처럼… 이제는 추억이 된 게임사들

오랜 시간 게임을 즐긴 게이머라면 본인이 꼽는 최고의 게임 리스트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게임이 갑자기 개발사의 파산으로 사라진다면? 혹은 합병으로 인해 완전히 다른 장르의 게임으로 전락해 버린다면? 그 게이머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열렬히 응원하던 걸그룹이 소속사가 바뀜으로써 멤버가 교체되고 갑자기 어울리지도 않는 섹시컨셉을 들고 나온 것처럼 말이다.

하나의 기업이 자금 상황이 어려워지거나 혹은 게임의 연이은 사업실패로 앞으로의 수익이 불투명할 때 선택하는 방법인 파산과 합병. 이는 거대한 사업군으로 발전한 게임업계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 중 하나다.

일반적인 기업과 게임회사의 파산은 게이머들에게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바로 하나의 게임 시리즈를 더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 물론, 새롭게 회사가 합병되어 이전 시리즈의 명맥을 이어가거나 핵심 개발진이 다시 팀을 꾸려 게임을 출시하며 다시금 그 때 그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주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게임에만 해당한 것일 뿐 대다수의 게임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불꽃처럼 시대를 풍미한 게임을 선보이고도 자금의 압박 혹은 트랜드의 변화를 쫓아가지 못해 기억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게임사들. 이번 히스토리에서는 이들 게임사들이 과연 어떤 과정 속에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었는지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th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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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5대 게임사의 거짓말 같은 몰락- THQ

크리스마스 시즌이 한창이던 2012년 12월 20일 전세계 게이머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 소식이 전해졌다. 바로 2010년 세계 5대 게임사로 이름을 날리던 THQ가 파산 신청을 한 것이다. ‘WWE 스멕다운’, ‘세인츠로우’, ‘컴퍼니오브히어로즈’, ‘홈월드’, ‘다크사이더스’, ‘워해머 던오브워’ 시리즈까지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수 많은 히트게임을 소유한 THQ의 파산 신청은 게이머들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1989년 설립된 THQ는 ‘Toy Head Quarters’(장난감 본부 지구)에서 이름이 유래했을 만큼 장난감 제작회사에서 출발한 회사였다. 이내 게임 개발을 주력 사업으로 결정한 THQ는 디즈니와 픽사와 같은 유명 제작사에서 라이선스를 확보해 게임을 개발하는 식으로 성장을 이뤄가기 시작했다.

더욱이 당시 축구와 야구에 비해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던 프로레슬링의 판권을 획득하여 ‘WWE 시리즈’를 선보이기도 했으며, RTS 장르의 명작 ‘컴퍼니오브히어로즈’, 혁신적인 액션으로 주목 받은 ‘레드 플래닛’, 막장 GTA로 잘 알려진 독특한 오픈월드 게임 ‘세인츠로우’ 등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선보이며 전세계 15개 이상의 게임 스튜디오를 지닌 거대 게임사로 성장해 나갔다. 특히, 지난 2002년 12월 THQ 코리아를 설립하면서 국내 게이머들에게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워해머 던오브워
워해머 던오브워

더욱이 ‘워해머40K 던오브워’의 소설 판권을 획득하며 제작한 ‘워해머40K: 던오브워’ 시리즈가 히트를 기록하면서 새로운 프렌차이즈로 자리잡기도 했으며, 아동용 게임 사업 역시 활발히 진행하는 등 THQ는 그야말로 ‘돈을 찍어내는’ 회사로 몸집을 키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도 커져 버린 기업의 고질병인 기업병이 회사 전체를 강타하며 점차 내부 분위기가 경직되기 시작했고,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개발된 게임들의 수익이 저조해지면서 서서히 THQ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디즈니, 픽사 등 엄청난 라이선스 비용을 제공해야 하는 게임이 대다수였던 THQ의 특성상 많은 판매를 기록해야 했지만 이들 게임의 수익이 점차 감소하면서 매출은 높지만 이득이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uDraw 이미지
uDraw 이미지

야심 차게 판매한 게임 콘트롤러 ‘uDraw’의 실패는 THQ의 하락세를 더욱 가속화 시킨 결과로 나타났다. 2010년 판매를 시작한 ‘uDraw’는 PS3, Xbox 360, 닌텐도 Wii 등 무려 3개의 게임기에 호환되는 것은 물론, 그림을 그리는 테블릿과 게임 조작을 동시에 지원하는 게임 컨트롤러였다. 아동과 저학년 게이머를 타겟으로 한 것이 분명한 이 기기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닌텐도 Wii 용으로 무려 100만 대가 팔려 나가며 THQ의 고위진들을 고무시켰고, 곧바로 PS3, Xbox360 버전의 출시를 이어가게 만들었다.

그러나 성인 게이머들이 대다수였던 PS3와 Xbox360에서 아동용으로 만든 컨트롤러에 관심을 보이는 이는 거의 없었고, ‘uDraw’ 전용 게임이 3개 게임기 합쳐 10개도 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로 다가왔다. 전용 게임을 개발해야만 진가를 발휘하던 ‘uDraw’를 게임 개발사들이 외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때문에 ‘uDraw’는 무려 140만대의 재고가 쌓이며 THQ의 재앙으로 다가왔고, 결국 판매를 중지하며 게임 역사에 길이 남을 희대의 실패로 기록됐다.

아무리 한 해에 8억 달러(한화 9,240억 원) 이상의 수익을 거두던 THQ도 이러한 손해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투자 실패와 연이은 게임들의 수익 저조는 곧 회사의 위기로 다가왔고, 2012년 2월 상장폐지 위기에 놓인 THQ는 자금 확보를 위해 회사의 프렌차이즈 게임의 판권과 스튜디오를 외부에 매각하기 시작했다. 2010년 12월 THQ 코리아가 철수한 것에 이어 게임 시리즈의 판권과 스튜디오를 외부에 매각하며 회생을 노렸다. 특히, 한창 스튜디오 매각이 가속화되던 2012년 THQ 게임들이 인터넷 묶음 판매 사이트 ‘험블 번들’에 세트로 덤핑 판매되는 것은 물론, 스팀 연말 세일에 워해머의 전 시리즈가 9.99달러에 판매되어 게이머들이 THQ의 몰락을 온몸으로 체험하기도 했다.

wwe 2k14
wwe 2k14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THQ는 2013년 1월 3일 결국 나스닥에 상장 폐지되며, ‘던오브워’, ‘컴퍼니오브히어로즈’를 개발한 렐릭 게임즈를 ‘세가’에, WWE 판권을 ‘테이크투’에 넘기는 등 산하 스튜디오가 경매에 판매되며 20년이 넘는 회사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루카스아츠 이미지
루카스아츠 이미지

명작 어드벤처와 스타워즈 게임의 명가 디즈니의 품에 안기다- 루카스아츠

루카스아츠 만큼 올드 게이머(30세 이상)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은 회사도 드물 것이다. 그림판당고, 원숭이섬의 비밀 등 지금도 회자되는 명작 어드벤처 게임을 비롯해 남자들의 로망이 듬뿍 담긴 스타워즈 시리즈를 선보이며 당당히 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루카스아츠. 이 루카스아츠는 루카스필름의 대표 조지 루카스가 1982년 3월 창립한 ‘루카스필름 게임즈’로부터 시작된다. 전세계적으로 대히트를 기록한 스타워즈를 보유한 루카스 필름은 이내 게임 쪽에도 관심을 보였고, 특히 어드벤처 게임에 주목해 게임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어드벤처 게임 시대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게임 ‘공포의 저택’을 비롯해 얼마 전 HD 리마스터로 큰 화제를 불러온 불후의 명작 ‘그림판당고’와 어드벤처 게임의 정수로 불리는 ‘원숭이섬의 비밀’ 시리즈 등 유머와 스토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작품을 연이어 히트 시키며 ‘루카스필름 게임즈’는 세게에서 내로라 하는 게임사로 성장한다.

엑스윙
엑스윙

1991년 자회사로 독립하면서 ‘루카스아츠’가 된 이후 스타워즈 판권을 적극 활용한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했으며, ‘X-wing’, ‘타이 파이터’ 등의 작품으로 연이은 성공을 기록한다. 2000년대 들어 어드벤처 게임 출시 중단을 발표하며 전세계 게이머들을 경악시키기도 했지만, 이내 RPG, 액션 등의 장르에 집중한 루카스아츠는 ‘스타워즈 구공화국기사단’, ‘제다이나이츠’, ‘스타워즈 배틀프론트’ 등 수작을 출시하며 죽지 않은 그들의 실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후 2011년 구공화국 기사단에서 호흡을 맞춘 바이오웨어와 공동으로 개발한 ‘스타워즈: 구공화국기사단‘ 온라인을 선보인 것에 이어, 차세대 게임기와 변화한 트렌드에 맞춘 게임을 준비 중이던 ‘루카스아츠’는 돌연 큰 위기에 빠지게 된다. 바로 모회사인 루카스 필름이 디즈니에 인수된 것이다.

스타워즈 제다이 퀘스트
스타워즈 제다이 퀘스트

이후 온갖 추측이 나돌던 2013년, 디즈니는 ‘루카스아츠’에서 개발 중이던 게임들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이내 2013년 4월 3일 공식적인 스튜디오 폐쇄를 발표하며 100여 명의 개발자를 모두 해고하여 게이머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사실상 게임 사업부가 끝나버린 셈이다. 현재 스타워즈의 게임 판권은 각 회사들로 흩어진 상황이며, 최근 E3 2015에서 EA에서 개발한 ‘스타워즈: 배틀프론트3’가 엄청난 퀄리티를 선보이며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2004년 루카스아츠의 어드벤처 게임 출시 중단에 항의하며 퇴사한 뒤 설립한 게임사 ‘텔테일 게임즈’가 2012년 어드벤처 게임 ‘워킹데드’를 선보이며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는 것이다. 특히, 잘 짜여진 각본과 몰입도 높은 영상미 그리고 게이머들의 선택에 따라 변화하는 스토리는 2012년 각종 상을 휩쓸기 충분했으며, 어드벤처 게임의 부활을 알린 게임으로 평가받고 있다. 어드벤처 시대의 신호탄을 쏜 루카스아츠의 개발진들이 만든 회사가 어드벤처 게임의 부활을 알린 작품을 선보인 셈이다.

시에라 온라인
시에라 온라인

어드벤처 게임의 혁신에서 다시 복귀를 꿈꾸는 전설의 회사- 시에라

이제는 '그런 회사가 있었나?' 할 정도로 가물가물 해졌지만, 80 ~90년대를 게임으로 불태운 게이머들에게 시에라 엔터테인먼트는 게임회사 그 이상의 존재였다. 바로 지금도 회자되는 전설의 게임 ‘미스터리 하우스’와 ‘킹스 퀘스트’, ‘시저’ 시리즈를 제작한 개발사이기 때문. 1979년 켄 & 로버타 윌리엄스 부부에 의해 창립한 시에라는 처음에는 온라인 시스템즈라는 이름의 작은 회사였다. 그러다 회사의 이름을 자신들의 사는 집 뒤에 위치한 시에라 산의 이름을 따 ‘시에라 온라인’으로 바꾼 이들은 아내 ‘로버타’가 집에서 개발한 어드벤처 게임 ‘미스터리 하우스’가 엄청난 흥행을 거두면서 본격적으로 게임 개발에 착수하게 된다.

이 ‘미스터리 하우스’는 단순 텍스트로 이뤄진 기존의 게임에 그래픽이라는 요소를 더한 혁신적인 게임이었는데, 게임에 영상을 더한 기념비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이 게임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애플 컴퓨터를 사실상 혼자서 개발하다시피 한 천재 스티브 워즈니악이 직접 편지를 보내 “우리가 개발한 애플 II 컴퓨터로 이런 게임을 하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호평을 받았을 정도다.

킹즈퀘스트
킹즈퀘스트

이후 ‘타임 존’, ‘판타즈마고리아’, ‘로라 보우’ 시리즈 등 굵직굵직한 게임들이 아내인 로버타의 주도 아래 개발되면서 명성을 쌓아온 ‘시에라 온라인’은 점차 어드벤처 게임의 명가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후 1984년 ‘킹즈 퀘스트’를 선보이면서 게임업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이 ‘킹즈 퀘스트’는 그림과 텍스트로 행동을 결정하던 기존의 게임들과는 달리 캐릭터를 직접 움직여 문제를 해결하는 굉장히 혁신적인 게임이었다. 마치 글로 모든 것을 결정하던 머그게임에서 캐릭터가 움직이며 상호작용하는 최초의 온라인게임 ‘바람의 나라’가 등장한 것처럼 말이다.

시에라는 굉장히 진취적인 회사이기도 했는데, 수장인 로버타가 최초의 여성 개발자인 것을 비롯해 회사 내부에 여성 개발자의 비율이 굉장히 높았다. 사실상 게임업계에 여성 개발자의 역사가 바로 이 시에라에서 시작된 셈이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시에라의 어드벤처 게임은 라이벌인 ‘루카스아츠’에 비해 상당히 섬세하거나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게임이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래리 시리즈’로 미국식 화장실 개그와 온갖 성적인 표현+농담으로 가득한 이 게임은 무려 20년 동안 성인 어드벤처 게임의 바이블로 군림하기도 했다.

래리 시리즈
래리 시리즈

영광의 80~90년대를 지나 본격적인 그래픽 게임들과 액션 장르가 인기를 얻으면서 시에라의 시대도 서서히 저물기 시작했다. 비록 90년대 중반까지 ‘폴리스 퀘스트’, ‘스페이스 퀘스트’, ‘가브리엘 나이트’ 등의 명작 게임을 선보이며 회사가 성장하기는 했지만, 이후 침체에 빠지기 시작했고 이내 여러 장르의 게임 유통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 시기 시에라가 배급을 담당한 게임이 바로 전설의 게임 ‘하프라이프’와 ‘홈월드’다. 벨브와 렐릭 게임즈라는 두 게임업계의 거물이 시에라를 통해 데뷔한 것이다.

경영이 어려워진 시에라는 비벤디에게 회사의 지분을 매각했고, 이후 비벤디가 블리자드-액티비전으로 편입되고 다시 두 회사가 분리되면서 이내 시에라는 액티비전의 산하 스튜디오로 편입된다. 그러던 2013년 시에라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신작 게임의 소식을 알렸으며, 이후 ‘킹즈 퀘스트’의 최신작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혀 자신들의 건재함을 게이머들에게 알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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