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스토리] 엔씨소프트 연대기 9화 : 엔씨소프트, 신작 MMORPG '아이온'의 약진이 시작되다

[게임동아에서는 2015년을 맞이하여 게임 기업의 탄생부터 성숙기까지 더한 연대기형 특집 '기업스토리'를 진행합니다. 첫 번째로 선정된 회사는 엔씨소프트로, 엔씨소프트의 과거와 현재를 비롯하여 정치, 인사, 경제 등 가능한 폭넓은 분야를 토대로 다루어볼 계획입니다. - 기사 내 대화는 당시의 상황을 유추해 각색한 것으로 현실과 다소 다른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

8화에서 다루었던 것처럼, 캐주얼 게임 시장에 본격적인 발을 들였던 엔씨소프트는 '플레이엔씨'라는 포털 사이트를 준비하고 다양한 게임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러브비트', '포인트 블랭크' 등 일부 게임에서 선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엔씨소프트의 메인 종목은 다중접속롤플레잉온라인게임(MMORPG)인 것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처럼, 엔씨소프트는 탄탄하게 차기 MMORPG들의 준비를 해나갔다. 바로 '리니지3', '아이온', '길드워'가 그 게임들이었다.

아이온 로고
아이온 로고

세개의 핵심 차기작 중 가장 앞서 준비된 것은 '아이온' 이었다. '아이온'은 향후 '리니지'와 '리니지2'에 이어 엔씨소프트의 가장 중요한 MMORPG의 계보를 잇는 게임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처음부터 메인 게임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2001년대 초반부터 엔씨소프트 내부에서는 '리니지'를 3D 버전으로 바꿔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었고, 그렇게 해서 진행된 프로젝트가 바로 '리니지 포에버' 였다. 이렇게 '리니지'의 3D화를 염두에 뒀던 것은 당시 '리니지'가 2D 게임으로 언제까지 경쟁력을 가질 것이냐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준비한 대비책 개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리니지'가 꾸준히 탄탄한 모습을 유지하고, 게이머들 또한 '3D로 변환하는 것을 반대'하면서 이러한 3D 버전에 대한 계획은 전면 수정되게 된다.

2년 여가 지난 2003년까지 2월, '리니지 포에버'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고 '리니지 포에버' 개발자들은 '아이온'이라는 새로운 브랜드의 게임으로 팀을 옮겨가게 된다. 엔씨소프트도 당시 언론에 사업 계획을 발표하면서 '리니지 포에버'를 '아이온'으로 변환한다고 공식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온'은 당시에 '타뷸라라사'와 '리니지3'의 사이를 잇는, 한마디로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게임으로 내부적으로 평가받고 있었던 상황이었고 핵심 개발자 몇명을 제외하면 상대적으로 경력이 길지 않은 개발자들이 배치되는 등 여러가지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아이온
아이온

또한 '리니지' 브랜드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것을 시도하다보니 시행 착오도 많이 겪을 수 밖에 없었다. 다양한 시도를 계속해나가면서 출시까지 최소 8번 이상 게임이 뒤집힌 것으로 집계될 정도다. 그 만큼 완성도를 높이는데 집중했고 또 당시에 출시된 '월드오브워크래프트'로 인해 게이머의 수준도 높아지면서 다양한 분석도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런 노력 속에서 '아이온'은 한때 '파이널판타지 온라인'과 비슷한 느낌의 모습이기도 했고, '블레이드앤소울' 보다도 훨씬 액션이 강화된 스타일리시 RPG로 변모한 적도 있었다. '리니지'와 비슷한 사냥 형태, 그리고 '월드오브워크래프트'와 거의 흡사한 형태로 바뀌기도 했다. 그런 여러 조율 과정을 거쳐서 '아이온'은 현재와 흡사해졌고, 거기에 공중과 비행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도입되면서 또 다시 엔씨소프트 개발실은 불이 꺼지지 않는 공간으로 변해갔다.

당시 개발자들은 "새로운 게임 시스템의 창조라는 건 엄청나게 힘든 작업이었다."라면서 "너무 많은 뒤집힘과 고통이 있었고.. 2005년 경까지 '아이온'이 과연 정식으로 출시될 수 있을지 아무도 확답하지 못했다."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아이온
아이온

아이온
아이온

회사의 여러 프로젝트 중 하나였던 '아이온'이 특히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사실 2006년 4월에 있던 'E3 게임쇼'와 '지스타 게임쇼'가 계기였다. '아이온'은 이 게임쇼에서 당시 폭풍같은 관심을 받던 빌로퍼의 '헬게이트: 런던'과 함께 베스트 콘텐츠 후보로 이름을 올리며 엄청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다.

재미난 점은 이 게임쇼에 출품한 '아이온' 버전은 몇 번 뒤집힌 상태에서 게임쇼를 위해 급하게 만들어진 버전이었다는 점이다. 당시의 개발자들은 "일직선으로 주욱 퀘스트를 진행하고 전투만 살짝 체험할 수 있는 버전을 급하게 만들어 내놨는데 기대 이상의 반응이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렇게 주목을 받은 후 '아이온'은 드디어 회사의 중점 타이틀로 부각되게 되는데, 이유는 김택진 대표가 이 타이틀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또 당시 메인 타이틀로 앞세우던 '리니지3'가 기술 유출 사건으로 출시가 불투명해졌기 때문이었다.

(기술 유출 사건은 이 아래에서 다시 다루기로 하고) 결국 E3와 지스타 때의 관심으로 인해 '아이온'은 '리니지' 시리즈와 구분되는 새로운 프랜차이즈로 성장했고, 동서양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월드 클래스 MMORPG, 그리고 천족과 마족의 전쟁 이야기를 바탕으로 공중전을 가진 신개념 게임으로 확정됐다.

아이온
아이온

김택진 대표도 동시에 '아이온' 개발팀을 직접 컨트롤하기 시작했고 게임의 그래픽, 디자인의 퀄리티는 물론, 새로운 시스템, 철학, 여기에 경쟁자 WOW와 히트작인 '리니지2'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목표도 명확히 했다. 특히 김택진 대표는 '아이템'의 가치에 대해 주목하는 모습을 보였다.

"와인의 흐름이 담겨있는 아이템 시스템을 만들어보세요."

어느날 개발 팀에 떨어진 한 마디. 와인의 흐름이 무슨 말일까. 해석하자면 이런 것이었다. 와인이란 원래 출시때부터 가격이 천차만별이지만, 시간이 지나서도 각각의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 김택진 대표는 '아이온'의 아이템을 게임 시스템과 더 유기적으로 연동시키라는 주문과 함께 각자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요구한 것으로 당시 '아이온' 개발자들은 풀이했다.

회사의 주력 차기작이 되면서 '아이온'의 개발팀장을 맡은 지용찬 씨를 비롯해 아이온의 개발자들은 더욱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되는데, 개발자들의 건강 문제 등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자 김택진 대표는 핵심 측근인 우원식 상무를 투입해 개발에 속도와 완성도를 높이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또한 조직을 재정비하여 효율성을 극대화하고자 하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의 기대와 개발자들의 노력과는 달리 비공개 테스트를 거치면서 '아이온'은 게이머들에게 다양한 비판을 받았고 업계에서도 성공하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불안감은 주식시장에도 영향을 끼쳐서, 엔씨소프트의 주식은 2만원 대까지 추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택진 대표와 지용찬 팀장 등 '아이온' 개발자들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 꾸준히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었고, 점점 '아이온'은 완성된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역사적인 반전을 준비하고 있는 '아이온'의 출시일인, 운명의 2008년 11월11일도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리니지3
리니지3

또 하나의 핵심 타이틀이었던 '리니지3'는 '아이온' 보다 늦은 2005년 11월 경에 개발 시작을 하게 되는데, 당시 엔씨소프트의 이재호 부사장(CFO)은 11월4일 3분기 실적 컨퍼런스 콜에서 "리니지3 개발에 최근 착수했으며 3년 간의 개발 기간을 두고 선보일 것."이라며 공식화 한 바 있다.

관련으로 XBOX360과 같은 콘솔 게임기로의 개발도 천명하면서 엔씨소프트는 새로운 시장에 대한 개척이 진행된다는 기대감도 높아진 상태였다.

하지만 '리니지3'의 주요 개발자 중 한 명이었던 박용현 실장은 인센티브 및 대우에 대한 불만으로 엔씨소프트를 퇴사한 뒤에 투자를 받고자 '리니지3' 핵심 기술자료를 일본 회사에 넘기려 했지만 실패하고 투자가 여의치 않자 블루홀이라는 신생 게임사의 설립에 합류했다.

또 이 박용현 실장과 몇몇 개발자들이 블루홀에서 이 '리니지3'의 핵심 자료를 이용해 게임 '테라'를 만들었다는 게임업계의 의심을 받았으나, 법원에서는 이부분에 대해서 증거 불충분이라는 판정을 내리며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리니지3 소송
리니지3 소송

엔씨소프트는 2008년 8월에 핵심기술을 외부로 유출한 전 직원들과 경쟁업체를 상대로 60억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내게 되고, NHN(한게임)은 엔씨소프트와 소송을 진행 중인 개발자들이 소속된 '테라'와 계약을 하면서 당시 상도의가 없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한편, 별도로 '리니지3' 소송은 게임 산업에서 중요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이유는 첫 집단 이직에 대한 소송이었기 때문이다. 박용현 실장 등 주요 개발자들은 이 형사 재판에서 유죄를 받았으며 민사 재판에서도 유죄를 받았다. 다만 법원에서는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엔씨소프트의 경광호 차장은 "형사 대법원 판결에 이어 민사 대법원 판결에서도 영업비밀 유출 혐의를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범죄 행위는 인정하지만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은 없다는 민사 판결 부분에 대해서는 유감이다."라며 "영업비밀 유출 사건의 시비가 가려진 점은 다행으로 생각하며, 기업의 영업비밀을 유출하거나 무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기업과 게임 산업 전반에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을 주는 행위이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이러한 불법행위들이 근절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사건 이후 게임사 별로 유출을 쟁점으로 한 소송 건은 줄어들은 것으로 파악된다. 또 하나의 핵심 차기작인 '길드워'는 향후 엔씨소프트의 북미 시장을 다룰때 함께 다루기로 하겠다.

- 10화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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