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준의 게임히스토리] 한국 시장에서의 영광과 굴욕의 역사 Xbox가 걸어온 길

플레이스테이션과 함께 한국 콘솔의 양대 산맥으로 군림하고 있는 Xbox(엑박)가 국내 시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어느덧 1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월드컵의 열기가 가라앉지 않았던 2002년 당시 만연하던 불법복제의 홍수와 온라인게임의 강세로 '콘솔 게임의 무덤'이라고 불리던 한국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Xbox는 1세대 Xbox 이른바 ‘구엑박’과 후속기기인 Xbox 360를 거쳐 지금의 Xbox One에 이르기까지 한국 게이머들의 숱한 화제 속에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e3 엑스박스 컨퍼런스
e3 엑스박스 컨퍼런스

사실 엑박 진영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Xbox(구엑박)는 국내에서 그리 큰 기대를 받은 콘솔기기는 아니었다. 2000년대 초반 한국의 게임시장은 이미 온라인중심으로 편입되어가고 있었고, 콘솔게임을 즐기는 게이머의 수가 급격히 줄어가던 시기였다.

더욱이 콘솔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들은 이미 80년대부터 세계 최고의 시장을 구축한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 게임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온 경향으로 인해 북미의 스타일의 게임기인 Xbox에 회의적인 분위기였다.

더욱이 이미 2002년 초 출시한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2(PS2)를 중심으로 한국의 콘솔게임 시장이 정리되고 있어 “과연 한국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분위기가 팽배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구엑박 런칭
구엑박 런칭

이 모든 우려 속에서도 Xbox(구엑박)은 2002년 12월 23일 정식으로 판매를 시작하며 게이머들에게 첫 선을 보였다. 당시 게임을 유통하던 세중게임박스와 한국 마이크소프트(이하 한국MS)가 내세운 Xbox의 캐치프레이즈(선전)은 바로 ‘역대 최강의 성능을 지닌 게임기’였다.

실제로 Xbox는 동종 세대 기종인 소니의 PS2와 닌텐도의 게임큐브에 비해 CPU와 GPU의 기본 스펙이 높았고, 당시 PC게임에서나 사용되던 다이렉트X를 통해 게임을 개발할 수 있어 ‘월등한 성능을 지닌 게임기’라는 칭호를 받을 만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게임 타이틀의 부재. 당시 라이벌이었던 PS2는 대다수의 작품이 한글화를 통해 등장하는 ‘한글화 르네상스’를 맞은 시기였고, 디스가이아, 귀무자, 진삼국무쌍2 등 지금도 회자되는 명작 게임들이 앞다투어 쏟아지고 있던 플레이스테이션 역사에서도 손에 꼽을 만할 황금기였다.

이에 반해 Xbox 진영은 독점으로 출시된 헤일로와 데드오브얼라이브3(DOA3), 기어스오브워가 그나마 인기를 끌었을 뿐 큰 판매고를 올리지 못했고, 이미 PC로 등장한 게임이 상당수 재탕으로 등장하는 것은 물론, 한글화 타이틀도 부족해 게이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구엑박 런칭
구엑박 런칭

이렇듯 야심 차게 국내 시장에 첫 발을 디딘 Xbox는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던 PS2와 비교해 그야말로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야 했다. 위로가 되는 것은 이러한 Xbox의 저조한 성적은 거의 모든 아시아권 시장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난 것으로 당시 세계 최대의 콘솔 게임 시장 중 하나였던 일본에 굉장히 많은 공을 들였음에도 고작 50만대의 판매고를 올렸을 정도로 인지도가 낮았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 북미와 유럽 게임시장에서 Xbox는 천 만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리며,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일본 게임사들의 각축장이었던 북미와 유럽에서 다시 영향력을 되찾는 쾌거를 기록하기도 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Xbox(구엑박)은 게임기를 넘어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 구엑박은 컴퓨터와 유사한 구조로 구성되어 있어 모드칩을 넣거나, 하드디스크를 교체하는 등의 개조를 통해 미디어 플레이어, 서버, 심지어 에뮬레이터로 활용되는 등 다양한 형태의 기기로 변신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Xbox는 1세대 게임기 대결이 끝난 이후에도 끊임없이 게이머들 사이에서 거래되는 기이한 현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엑박360 런칭
엑박360 런칭

이렇듯 참패로 끝난 1세대 게임기 전쟁. 하지만 4년뒤 벌어진 2세대 대결에서는 그 구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2005년 12월 북미시장에서 발매 된지 꼭 두 달만인 2006년 2월 24일 한국에 상륙한 Xbox 360은 초반부터 물량 공세를 선보이며 게이머들에게 Xbox의 부정적인 기억을 완전히 불식시켰다.

이러한 배경에는 이전과는 달라진 Xbox의 위상에 있었다. 번지스튜디오에서 개발한 헤일로는 이미 명작 시리즈의 반열에 오르며 북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고, 기어스오브워 역시 밀리언셀러에 버금가는 판매량을 올리며 또 하나의 킬러 타이틀로 부상하고 있었다. 여기에 차세대 기종 중 가장 먼저 발매된 Xbox 360은 수 많은 게임사들의 작품을 콘솔로 선보이며 새로운 재미를 제공했고, 타이틀 역시 먼저 확보할 수 있어 라이벌인 소니의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3(PS3)가 출시되기 이전에 이미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할 수 있었다.

아울러 게임 타이틀의 부족으로 인한 Xbox의 부진을 온몸으로 겪은 한국 MS는 타이틀 확보에 주력했고, 지금도 역대급 더빙으로 꼽히는 헤일로2편과 3편의 한글화를 이끌어낸 것은 물론 다수의 타이틀을 국내 게이머들에게 선보이는 등 이전과는 사뭇 다른 공격적인 행보로 호응을 이끌어냈다.

피파10
피파10

2000년대 중반 이후 발생한 북미 게임들의 선전과 일본 게임들의 쇠퇴 역시 Xbox 360의 한국 흥행에 힘을 보탰다. 일례로 위닝일레븐 시리즈(현 프로 에볼루션 사커)에 뒤쳐져 있던 EA의 피파 시리즈가 그래픽과 게임성 두 가지 부분에서 급격한 성장을 이루어내 ‘피파 2010’부터는 위닝일레븐을 완전히 밀어내 버렸고, 세계 최고의 레이싱 게임으로 꼽히던 ‘그란투리스모’의 판매량이 ‘포르자 모터스포츠’에 뒤쳐질 정도로 기존의 강자로 군림하던 일본 게임들이 북미 게임에 완성도와 판매량에 뒤지는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독점 타이틀에 집착하던 소니에 비해 MS는 헤일로, 기어스오브워 등의 핵심 게임을 제외하고는 멀티 플랫폼으로 게임을 선보이는 전략을 펼쳤으며, 이는 게임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 일반 타이틀의 경우에도 PS3에 비해 높은 판매고 기록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과거 북미 게임에 부정적이었던 한국 게이머들의 인식을 완전히 뒤집어 버린 것이다.

Xbox 360의 승승장구는 역대 최고의 주변기기로 꼽히는 동작인식 기기 ‘키넥트’가 발매로 더 큰 날개를 달았다. 동작인식 기기의 새로운 장을 연 키넥트는 이전까지 FPS 게임의 범람으로 ‘FPS 박스’라는 비아냥을 듣던 Xbox 360에 운동, 퍼즐, 파티게임 등의 등장을 이끌어내 장르에 큰 변화를 주었고, 게이머의 연령대를 낮추고 여성게이머를 확보함으로써 더욱 많은 판매고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러한 Xbox 360의 인기는 국내에도 이어졌다. 한국 출시 3년 뒤인 2009년 Xbox 360은 10만 대에 달하는 판매량을 기록했으며, 한국 MS 역시 당시 높아진 환율에도 불구하고 Xbox 360의 판매가격을 고수했고, 한글화 역시 PS3에 비해 Xbox 360으로 등장하는 타이틀의 수가 더 많았을 정도였을 정도로 노력을 기울여 큰 호응을 받기도 했다.(다만 2000년대 중반에는 한글화가 된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 시기였던 것을 감안해야 한다.)

물론 2009년 소니에서 실시한 파격적인 가격인하 정책과 언차티드, 갓오브워 등의 게임을 통해 판매량이 역전되기는 했지만, Xbox 360은 그 영향력에서만큼은 ‘구엑박’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선전하며 MS가 국내 게이머들에게 소니 못지 않은 영향력을 미치는 회사로 올라서는 것에 큰 힘을 보탰다.

Xbox One의 키넥트와 패드
모습
Xbox One의 키넥트와 패드 모습

이러한 성공 이후 2014년 벌어진 세 번째 차세대 기기 격돌. 한때 PS3를 누를 정도로 높은 판매고를 올렸던 Xbox 360의 뒤를 이어 등장한 Xbox One은 현재 한국에서 처참하다 싶을 정도로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는 중이다.

2014년 9월 23일 등장한 Xbox One은 대작 타이틀의 부재는 물론 무려 638,000원(키넥트 동봉버전 가격)에 이르는 높은 가격 등으로 'Xbox One의 불합리한 국내 가격 책정에 대한 가격 인하 온라인 서명운동'이 벌어질 정도로 게이머들의 공분을 사며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여기에 적극적인 한글화 정책과 국내 게임사들과의 협업 등을 통한 국산 콘솔게임 발매 등 카와우치 시로 사장을 앞세운 라이벌 SCEK의 행보가 그 어느 때보다 공격적이었음에도 불구, Xbox One 출시 이후 한국 MS는 한글화, 타이틀 공개 등에 미온적인 행보를 이어가 ‘과연 게임기를 팔 의지가 있는가?’라는 게이머들의 의구심을 자아낼 정도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한글화 예정 타이틀이 당일 취소되기도 하는 등 각종 문제를 일으켜 물의를 빚기도 했을 정도로 2015년 한국에서 Xbox One은 부정적인 이슈가 가득했을 정도였다.

엑박원 쇼케이스
엑박원 쇼케이스

하지만 ‘E3 2015’서 공개된 대작 타이틀의 연속 공개에 힘입어 한국 MS 역시 2015년 하반기 적극적인 한글화 및 이벤트를 준비중인 상태다. “헤일로 5: 가디언즈”, “라이즈 오브 더 툼레이더”, “포르자 모터스포츠 6” 등의 대작 타이틀이 연내에 출시 혹은 출시 예정인 것은 물론, 라이즈 오브 더 툼레이더가 음성을 포함한 완벽 한글화로 출시되는 등 Xbox One 출시 이후 가장 기대감이 높은 상황이기도 하다.

이처럼 ‘구엑박’에서 겪은 굴욕의 시기를 거쳐 PS3를 압도할 정도의 성공을 거둔 ‘Xbox 360’의 시대. 그리고 출시 후 역대 최저의 판매고를 기록했지만 이제 다시 날아오를 준비를 마친 Xbox One까지. Xbox 시리즈는 한국 시장에 발을 디딘 이래 흥망성쇠를 겪으며 다음 단계를 준비 중에 있다. 과연 Xbox가 앞으로의 콘솔게임기 대결에서 유난히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PS4에 맞서 한국에서 어떤 결과를 기록할지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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