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준의 게임 히스토리] 세계 게임시장을 이끈 어드벤처 게임의 명가 '시에라 '

80~90년대를 게임으로 불태운 게이머들에게 어드벤처 게임은 게임 장르 그 이상의 존재였다. 치밀하게 구성된 스토리 속 미궁에 빠진 수수께끼를 풀어가며 즐기는 진행의 쾌감과 도트 그래픽으로 그려내는 인물들까지 소설 못지 않게 상상을 나래를 펼칠 수 있었기 때문.

더욱이 당시는 한글화는 물론이고 국내 정식 출시 조차 엄두도 못내던 시절이었고, 직접 영어사전에서 단어를 찾아가며 단서를 찾는가 하면,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고 퀘스트를 풀어가는 등 그야말로 게임을 즐기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시대였다. 이런 상황에서 대사량이 어마어마한 어드벤처 게임의 엔딩을 본다는 것은 몇몇 게이머들에게만 주어진 일종의 ‘특권’같은 일이었고, 엔딩 영상을 볼 때의 감동은 다른 장르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물론 게임 하나를 사면 죽으나 사나 그 게임만 플레이해야 했던 당시 상황도 고려해 봐야 한다)

킹스퀘스트
킹스퀘스트

이러한 어드벤처 게임이 전성기를 기록하던 시절 게임회사 그 이상의 존재로 군림하던 회사가 있었다. 바로 지금도 회자되는 전설의 게임 ‘미스터리 하우스’와 ‘킹스 퀘스트’, ‘판타지마고리아’ 시리즈를 통해 어드벤처의 명가로 불렸던 시에라 엔터테인트(이하 시에라)가 그 주인공.

지금은 '무슨 게임사 이름이 그래?' 할 정도로 가물가물해졌지만, 당시 시에라는 지금의 '블리자드'처럼 만드는 게임마다 호평 일색이었던, 게임 개발의 명가를 이름을 높이던 회사였다.

시에라 온라인
시에라 온라인

1979년 켄 & 로버타 윌리엄스 부부에 의해 창립한 시에라는 처음에는 ‘온라인 시스템즈’라는 흔하디 흔한 이름을 가진 수 많은 작은 회사 중 하나였다. 이후 회사의 이름을 자신들의 사는 집 뒤에 위치한 시에라 산의 이름을 따 ‘시에라 온라인’으로 바꿔 영역을 IT 분야로 넓히기 시작한다.

미스테리하우스
미스테리하우스

하지만 점차 경영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고, 당시 유행하던 ‘텍스트 게임’을 플레이해 본 아내 ‘로버타’는 이에 깊은 감명을 받아 이내 자신의 PC로 어드벤처 게임 하나를 개발하기에 이른다. 이 게임의 제목은 ‘미스터리 하우스’. 시에라의 첫 번째 게임 출시작이었다.

이 ‘미스터리 하우스’는 단순 텍스트로 이뤄진 기존의 게임에 그래픽이라는 요소를 더한 혁신적인 게임이었는데, 상당한 수준의 IT 기술자였던 남편 ‘켄 윌리엄스’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 ‘ 로버타’는 이를 훌륭히 구현해 내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실제로 ‘미스터리 하우스’는 게임에 영상을 더해 성공한 기념비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이 게임은 등장과 동시에 엄청난 판매를 기록했는데, 인기가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애플 컴퓨터를 사실상 혼자서 개발하다시피 한 천재 스티브 워즈니악이 직접 편지를 보내 “우리가 개발한 애플 II 컴퓨터로 이런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호평을 받았을 정도다.

이후 본격적으로 게임 산업에 뛰어든 시에라는 ‘타임 존’, ‘킹스 퀘스트’, ‘로라 보우’ 시리즈 등 굵직굵직한 게임들이 아내인 로버타의 주도 아래 개발되면서 점차 어드벤처 게임의 명가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킹스퀘스트
킹스퀘스트

이중 1984년 선보인 ‘킹즈 퀘스트’는 등장과 동시에 평단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국내 게이머들에게도 친숙한 ‘킹즈 퀘스트’는 그림과 텍스트로 행동을 결정하던 기존의 게임들과는 달리 캐릭터를 직접 움직여 문제를 해결하는 굉장히 혁신적인 게임이었다. 이 여파로 ‘킹즈 퀘스트’ 이후로 게임 시장은 텍스처(글)이 아닌 그래픽을 앞세운 작품으로 완전히 재편된다.

특히, 이 게임은 RPG 시스템의 기틀을 닦은 울티마와 비교되며 엄청난 마니아들을 거느렸는데, 이런 인기는 최근까지 이어져 몇몇 게이머들이 모인 팬카페에서 1~3편을 6편 수준의 도트 그래픽으로 변환한 것에 이어 음악과 음성(!)까지 추가한 리메이크 버전을 공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그리고 그 리메이크 버전의 한.글.패.치가 지난해 등장했다. ‘킹즈 퀘스트’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

시에라 로버타 윌리엄스
시에라 로버타 윌리엄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시에라가 게임 역사상 최초의 여성 CEO가 등장한 회사라는 것이다. 실제로 시에라는 수장인 로버타가 최초의 여성 개발자였고, 회사 내부에 여성 개발자의 비율이 굉장히 높을 만큼 진취적인 회사였다.

시에라 스튜디오
시에라 스튜디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시에라의 어드벤처 게임은 라이벌인 ‘루카스아츠’에 비해 섬세하거나,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게임이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래리 시리즈’와 ‘판타즈마고리아’ 시리즈로, 미국식 화장실 개그와 온갖 성적인 표현+농담으로 가득한 ‘래리 시리즈’는 무려 20년 동안 성인 어드벤처 게임의 바이블로 군림하기도 했다.

판타즈마고리아
판타즈마고리아

특히, 1994년 등장한 ‘판타즈마고리아’는 모탈컴뱃 등의 게임에 사용된 ‘풀모션비디오’(이하 FMV / 배우가 연기한 영상을 게임에 적용시키는 방식)로 제작됐는데, 게임 곳곳에 충격적인 묘사가 등장하는 등의 높은 수위로, 게임의 유해성을 지적 받은 대표적인 작품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영광의 80~90년대를 지나 본격적인 그래픽 게임들과 액션 장르가 인기를 얻으면서 시에라의 시대도 서서히 저물기 시작했다. 비록 90년대 중반까지 ‘폴리스 퀘스트’, ‘스페이스 퀘스트’, ‘가브리엘 나이트’ 등의 명작 게임을 선보이며 회사가 성장하기는 했지만, 이후 침체에 빠지기 시작했고 이내 여러 장르의 게임 유통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 시기 시에라가 배급을 담당한 게임이 바로 최고의 게임을 뽑을 때 빠지지 않 등장하는 전설의 게임 ‘하프라이프’와 ‘홈월드’다. 벨브와 렐릭 게임즈라는 두 거대 회사가 시에라를 통해 데뷔 무대를 치른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영이 어려워진 시에라는 비벤디에게 회사의 지분을 매각했지만, 이후 비벤디가 블리자드-액티비전을 편입하고, 다시 회사들이 분리되는 복잡한 과정 속에 결국 액티비전의 산하 스튜디오로 편입된다. 한때 세계 게임시장을 움직였던 회사에 걸맞지 않게 거대 자본을 가진 게임사들의 이합집산 속에 회사가 정처없이 움직인 샘이다.

킹스퀘스트
킹스퀘스트

이대로 회사의 운명이 끝난 것처럼 보이던 시에라는 불현듯 2013년 킹스 퀘스트의 신작을 개발 중이라고 발표해 전세계 팬들을 다시 열광시켰다. 1편을 다시 리부트한 ‘킹스 퀘스트: 유어 레거시 어웨이츠’는 2015년 7월 발매되어 액션과 어드밴처가 공존하던 그 때 그 시절의 재미를 다시 게이머들에게 선사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꾸준한 활동을 이어온 회사는 드물지만, 그 명성을 계속 이어가는 회사는 더더욱 드물다.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이제는 수많은 게임사 중 하나가 되어 버린 시에라 엔터테인먼트. 과연 어드벤처 게임의 명가로 불리던 이 회사는 앞으로, 어떤 작품을 통해 게이머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을까? 이들의 행보가 궁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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