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 전 강철 멘탈은 필수, '마괴신 트릴리온'

평화롭던 마계에 찾아온 거대한 괴수 '트릴리온'. 이름대로 HP 1조를 자랑하는 이 무시무시한 적을 막기 위해 주인공인 대마왕 '제아볼로스'와 그를 보좌하는 6명의 미녀 마왕, 그리고 수수께끼의 미소녀 '파우스트'를 비롯한 조력자들이 힘을 합쳐 대적하는 장대한 서사시. '마괴신 트릴리온'의 스토리를 이런 식으로 포장해 친구에게 소개해준 게이머가 주변에 있다면 조심하자. 그는 당신의 정신을 괴롭히기 위해 함정을 팠을 가능성이 크다.

마괴신트릴리온01
마괴신트릴리온01

컴파일하트가 개발하고 사이버프론트코리아(CFK)에서 유통 중인 PS VITA용 롤플레잉게임 '마괴신 트릴리온'은 크게 챕터마다 마왕을 한 명 선발해 단련시키는 육성 파트, 정해진 기간마다 잠에서 깨어나는 '트릴리온'을 물리치기 위해 결전을 벌이는 전투 파트로 나뉜다. 육성 중에는 수련을 통해 얻은 경험점을 써서 능력치를 높이거나 스킬을 습득할 수 있다. 또한, 선물을 건네거나 교류 이벤트가 발생하면 해당 마왕과의 호감도가 올라간다. 이렇게 일정 기간 육성 기간을 거치면 '트릴리온'과의 결전의 날이 다가와 마계의 운명을 결정지을 사투가 벌어진다.

문제는 압도적인 강적과 맞서기 위해 동료들의 희생을 각오하며 도전해 나간다는 '마괴신 트릴리온'의 콘셉트에서 발생한다. 게임 특성상 초반은 물론이고 육성 과정에 따라선 중반 이후까지 '트릴리온'과의 전투에서 게이머가 승리를 차지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그리고 패배 후에는 마왕의 비참한 말로가 화면과 스피커를 통해 생생히 묘사된다. 절망에 가득 차 눈물범벅이 된 마왕들의 얼굴부터 오만감정과 한이 서린 유언, 그리고 산채로 씹어 먹히는 효과음까지 게이머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

마괴신트릴리온06
마괴신트릴리온06

특히, '트릴리온'과 맞서 싸울 마왕들은 전부 주인공의 친남매, 소꿉친구, 사촌, 조카 등 가까운 관계로 설정됐으며, 육성 과정에서도 각자의 개성을 통해 매력을 뽐낸다. 캐릭터에 애착이 큰 게이머라면 상상 이상으로 자세히 재현되는 마왕의 사망 과정에 눈과 귀를 닫고 싶어질 것이다. 앞서 육성시켰던 마왕이 사망하면 일부 능력치가 다음 마왕에게 계승되지만 이것만으로는 도저히 위안이 되지 않는다.

마괴신트릴리온02
마괴신트릴리온02

그래서 마왕이 사망하기 직전에 발동시키는 다섯 가지의 '절명스킬'은 위력에서나 상징성에서나 게임 내 큰 비중을 차지한다. '트릴리온'은 총 세 번에 걸쳐 형태가 변하기 전까지 피해가 누적되는 만큼 다회차 플레이가 아닌 이상 게이머는 '절명스킬' 중 마지막으로 강력한 피해를 입히는 '찰나의 일격'이나 일부 부위를 영구적으로 봉인시키는 '부위 봉인'을 자주 활용하게 된다.

마괴신트릴리온05
마괴신트릴리온05

'트릴리온'에 의해 마왕들이 사망하는 일을 막기 위해선 많은 준비가 뒤따라야 한다. 전투에 유용한 액티브 및 패시브 스킬만을 골라서 습득, 일정 수준의 능력치 도달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또한, 각종 우수한 장비 아이템과 피해 무효화부터 공격 횟수 증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효과를 갖춘 '마각인'도 필요하다. 전투 중에 피해를 받으면 HP보다 캐릭터 이벤트를 통해 축적한 추억 포인트가 먼저 줄어들기 때문에 '트릴리온'과의 결전에 앞서 이를 최대한 많이 확보할 필요가 있다.

마괴신트릴리온08
마괴신트릴리온08

전투 중에도 게이머의 선택이 승패에 큰 영향을 끼친다. '마괴신 트릴리온'의 전투 시스템은 게이머가 한 번 행동에 턴을 소모할 때마다 동시에 적도 1회 행동하는 방식이며, 적을 물리칠 때마다 턴 소모가 없는 1회 행동이 보너스로 주어진다.

이를 활용해 바닥에 표시되는 적의 스킬 범위 및 발동에 기민하게 대응해 최대한 공격을 적게 받는 것이 전투의 기본 전술이다. '트릴리온'의 공격 대부분은 매우 강력해 얼마나 많이 공격을 피하느냐가 중요하다. 공격 혹은 이동 버튼을 한 번 잘못 누를 때마다 턴을 낭비하는 문제나 대각선 이동 및 공격을 위해선 일일이 카메라 시점을 좌우로 움직이는 불편한 시스템에 적응할 때까지는 시행착오에 의한 패배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마괴신트릴리온04
마괴신트릴리온04

이동형 스킬로 재빨리 움직이거나 후방에서 공격시 엄청난 대미지를 입히는 '불의격', '트릴리온'의 일부 공격을 봉인하고 피해량을 증가시키는 '부위 파괴'에 유용한 '장갑 파괴' 같은 스킬들을 활용하면 전투가 좀 더 수월해진다. '트릴리온'과의 결전에 앞서 던전 '천인의 계곡'에 들어가서 몬스터와 싸우며 아이템 수집 및 캐릭터 성장을 진행하거나 '모쿠진'과의 모의전에서 '트릴리온'의 공격 패턴을 파악하면 큰 도움이 된다. 이 밖에 횟수에 제한이 있으나 전투 중 철수해 육성 기간을 조금이라도 확보하는 방법도 있다.

이렇듯 절망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스토리와 결전의 그 날까지 악착같이 준비하는 육성 과정, 한 턴 차이에 승패가 갈리는 '트릴리온'전 등이 어우러지면서 게이머는 외줄을 타는 듯한 플레이를 즐기게 된다. 이러한 고생 끝에 조건을 달성하고 진엔딩을 보면 그 보람은 더욱 각별하다.

마괴신트릴리온03
마괴신트릴리온03

하지만, 1회차를 마무리하고 마왕 개별 엔딩을 비롯해 게임 내 콘텐츠를 파고들기 시작하면 게임에 대한 인상이 상당 부분 바뀐다. 스토리 진행상 처음부터 모든 마왕 중 한 명을 고를 수가 없어 일부 캐릭터의 이벤트를 확인하기 위해선 1회차에서 겪었던 육성 과정 및 다른 캐릭터들의 사망 이벤트를 반복해야 한다. 또한, 일부 이벤트는 확률에 의해 발생해 게이머의 스트레스를 부추긴다.

전투 난이도도 안정적인 육성 방법과 필승 전략이 갖춰지고 나면 일부 능력치가 계승되는 다회차 플레이 특성상 갈수록 쉬워진다. 그리고 난이도가 내려가면 불편한 카메라 이동, 성능 편차가 심한 밸런스로 인해 단조로워지는 전투 조작, 상황에 따라선 압도적인 능력을 갖추고도 일부러 '트릴리온'에 당해야 하는 자학 플레이만이 남는다.

정리하자면 '마괴신 트릴리온'은 1회차에 한해 스토리, 육성, 전투 세 박자가 잘 맞아떨어진 롤플레잉게임으로 완성됐다. 하지만 마왕 개별 엔딩 등 게임 내에서 게이머가 수집할 콘텐츠 대부분은 반복플레이가 필수이며, 이를 통해 앞서 느꼈던 재미는 퇴색돼 단조롭고 지루한 플레이만 남아버린다. 다양한 전략을 시험하기 어려운 스킬, 아이템의 성능 편차도 아쉽다. 향후 뒷마무리가 더 깔끔한 컴파일하트의 롤플레잉게임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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