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여전히 매력적인 그릇에 담긴 이상한 맛의 스토리. 전장의 발큐리아4

2008년이었다. 매력적이긴 했지만 너무 비싼 가격 때문에 속을 쓰리게 만들었던 PS3를 구입하고 한참 이것 저것 즐기던 시절에 첫 눈에 확 들어오는 놀라운 그래픽을 가진 취향 저격의 게임이 하나 발표됐다. 여러 편의 게임이 발매되고, 만화, 애니메이션까지 등장하면서, 이제는 세가의 인기 IP로 자리잡은 전장의 발큐리아와의 첫 만남이다.

사실, 한창 PS3와 XBOX360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던 시절이었다보니 대작 게임들이 연이어 쏟아지고 있어 새로운 IP 게임이 주목을 받을 만한 분위기도 아니었고, 다른 기대작을 제치고 주목을 받을 만큼 엄청 유명한 개발자가 만든 게임도 아니었다. 하지만, 손으로 그린 파스텔화 같은 느낌의 그래픽이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져서, 동영상을 계속 반복해서 봤던 기억이 있다.

전장의발큐리아4
전장의발큐리아4

이렇게 신선한 그래픽에 반한 사람들이 많았는지 신생 IP 치고는 꽤 좋은 평가를 받은 이 시리즈는 2, 3편이 PSP로 나오면서 약간 마이너한 게임 시리즈로 서서히 잊혀지나 싶었는데, 세가가 이 시리즈를 좀 더 본격적으로 키우려고 마음을 먹었는지 다시 정규 시리즈 4편을 PS4로 플랫폼을 옮겼다.

그리고, 작년에 실시간 전투로 약간의 변신을 시도해 혹평을 받았던 외전 푸른 혁명의 발큐리아의 존재를 지워버리고 다시 본래 방식으로 회귀했으며, 한글화까지 했다. 그동안 PSP의 작은 화면을 보면서 제대로 된 후속작이 목 말랐던 시리즈 팬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전장의발큐리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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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시작하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다른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든 파스텔화풍의 개성 넘치는 그래픽이다. 만화 같은 그래픽을 가진 게임들은 그동안 정말 많이 등장했지만, 이 게임만큼 따뜻한 느낌이 드는 그래픽은 10년 전에도, 지금도 찾아보기 힘들다.

2편과 3편은 휴대용 게임기로 발매됐으니 1편과 4편을 비교하면, 1편을 처음 봤을 때의 느낌과 큰 변화는 없다. PS3와 비교할 수 없을 수준의 향상이 있었던 PS4용으로 만들어진 게임이니 당연히 4편의 캐릭터와 배경이 훨씬 더 상세하게 묘사되고 있고, 동작도 더 자연스럽기는 하지만, 그것이 바로 느껴질 정도의 발전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좀 더 선명해졌다” 정도의 차이라고 할까? 여전히 개성 있는 그래픽이긴 하지만, 요즘 대작 게임들의 그래픽이 워낙 화려하다보니 그 때만큼 눈에 확 띄는 수준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보통 신작의 그래픽이 10년전에 발매된 게임과 비교해서 큰 차이를 느끼기 힘들다면 발전이 없다고 비판을 받아야 하는게 당연하겠지만, 이 게임만큼은 발전이 없는 후속작을 비판하기보다는 시대를 엄청나게 앞서간 1편의 그래픽을 더 칭찬하고 싶다.

전장의발큐리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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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전작을 플레이해본 사람들은 잘 알고 있겠지만, 이 게임은 SRPG 장르이지만, 정해진 범위 칸에서 이동할 수 있는 일반적인 일본식 턴제 SRPG 스타일이 아니라 BLITZ(Battle of Live Tactical Zones)라고 불리는 독특한 전투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이 시스템에서는 커맨드 모드와 액션 모드가 존재하며, 커맨드 모드에서 움직일 캐릭터를 지정하면 정해진 CP가 소모되고, 액션 모드에서는 선택한 캐릭터의 AP가 모두 소모될 때까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액션 모드에서는 1인칭 백뷰 시점으로 캐릭터들을 조작하고, 공격할 때도 직접 조준을 해야 하기 때문에 후반부로 갈수록 지루해지는 일반적인 SRPG에 비해 좀 더 박진감 넘치는 플레이를 즐길 수 있다.

전장의발큐리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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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커맨드 모드에서는 오더라고 해서 응급 치료, 공격력 강화 등 CP를 소모해서 상황을 유리하게 만드는 특별한 커맨드를 사용할 수 있으며, 각 병과마다 각기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어, 주력인 탱크와 함께 정찰병, 돌격병, 저격병, 대전차병 등 여러 병과와 오더를 조합해 빠르게 적을 물리치는 것이 이 게임의 묘미다.

전장의발큐리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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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 이미 BLITZ 시스템이 완성되어 있기 때문에 4편의 시스템 역시 1편과 큰 차이는 없다. 조금 달라진게 있다면 박격포 개념의 척탄병이 추가돼 원거리에서도 적을 쉽게 제거할 수 있으며, 새롭게 등장한 대형 전함 센츄리온 덕분에 쉽오더라는 개념이 생겨, 레이더, 화력지원 등을 받을 수 있게 됐다는 것 정도? 그리고, 파괴되면 게임오버가 되기 때문에 보물처럼 조심스럽게 다뤄야 했던 탱크도 파괴되더라도 쉽오더로 다시 전장에 복귀시킬 수 있기 때문에 든든한 방패로 써먹을 수 있게 됐다.

전장의발큐리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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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미션 목표가 대부분 거점 점령이고, 최대한 짧은 턴에 미션 목표를 달성해야 S랭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적을 모두 무시하고 압도적인 AP를 가진 정찰병으로 거점만 점령하는 플레이 패턴은 그대로다. 많은 적들이 등장해도 머리를 굴려 1~2턴에 미션을 클리어했을 때 나름 쾌감이 있긴 하지만, 너무 타임어택만 강요하는 미션 때문에, 꽤 전략적인 플레이를 즐길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전투 시스템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느껴진다.

전장의발큐리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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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이다보니 이전 작의 스토리를 모르면 플레이하기 힘들까봐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1편과 마찬가지로 연방과 제국의 전투를 다루고 있지만, 1편의 주인공과는 다른 캐릭터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전작을 플레이하지 않아도 큰 문제없이 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 물론 시리즈 세계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라그나이트와 발큐리아 같은 개념을 알고 있다면 좀 더 흥미롭게 게임을 즐길 수 있겠지만, 모른다고 해도 큰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전장의발큐리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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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2, 3편은 논외로 하더라도 나름 평가가 좋았던 1편과 달리 4편의 스토리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 모든 병력을 한점에 집중시켜 한방 역전을 노리는 노던 크로스 작전이나 강력한 병기를 앞세워 양동 작전을 펼치는 시그너스 작전도 무모해보이기는 하지만 납득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고, 계급 체계를 무시하는 학원물 풍의 인물 관계도도 그냥 동네 친구이니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제갈량을 능가하는 바람의 속삭임이라는 사기 같은 능력을 아무 때나 발휘하면서 위기를 넘기는 주인공도 게임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미소녀가 난무하는 라이트노벨 풍의 게임에서 밴드 오브 브라더스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 수준의 진지함을 찾는다면, 그게 더 문제다.

전장의발큐리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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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스토리의 핵심이 되는 악역 포제의 선택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상세한 내용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너무나도 정상적이었던 캐릭터가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이유가 너무 이상하다. 비윤리적인 행동을 바로잡겠다면서 더 비윤리적인 행동을 선택한다는게 말이 되나! 식상하더라도 차라리 가족이나 연인 문제였다면 오히려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게다가 전쟁이 지속될수록 점점 더 이상해지는 주인공과 소대원들의 선택도 이해가 안된다. 이 역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무리 전쟁이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고 해도 게임 내내 휴머니즘에 빠져 있던 그들이 마지막 미션에서 하는 정신나간 행동들은 이전까지 플레이를 통해 가지게 된 호감도를 모두 날려버릴 정도로 강렬했다. 이 게임에서 끝까지 상식적이며, 매력적인 모습을 보이는 캐릭터는 오히려 악역으로 등장하는 볼츠 장군 뿐이다. 그나마 칭찬할 것이 있다면 대단원편이라고 해서 그냥 이름없이 소모될 수 있는 일반 병사들 개개인의 이야기를 경험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 게임에서 적에게 맞아서 쓰러진 뒤 3턴 이내에 후방으로 수송하지 않으면 그 병사가 완전히 사망한 것으로 나오기 때문에, 대단원편을 통해 에피소드를 경험한 병사가 사망할 때는 꽤 애틋한 감정이 든다.

전장의발큐리아4
전장의발큐리아4

국내 정식 발매가 되지 않은 게임 시리즈 치고는 나름 팬층이 탄탄한 게임 시리즈인 만큼 전장의 발큐리아4 발매 소식을 듣고 기대하던 사람들이 많았을텐데, 스토리만큼은 용서가 안되는 수준이지만 게임 자체의 재미는 탄탄하다. 치밀하게 전략을 세워 아군을 한명도 죽이지 않고 적을 전멸시키는 재미도, 적의 허를 찔러 1~2턴만에 S랭크로 클리어하는 재미도 있으며, 미션 클리어 보상을 활용해 소대원과 장비를 업그레이드시키는 재미도 쏠쏠하다. 전투만 따로 즐기고 싶은 이들을 위해 유격전투라고 원하는 전투를 골라 즐길 수 있는 전투 모드도 따로 제공한다. 전투만 보면 이 게임 하나로 꽤 오랜 기간 즐거운 시간을 만끽할 수 있다. 평소 이 시리즈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워낙 오랜만에 등장하는 제대로 된 후속작이니 주변에서 말린다고 하더라도 구입할 것이라 생각된다. 다만, 정말 스토리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플레이해야 실망감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전장의발큐리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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