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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선덜랜드'가 나의 황금연휴를 망쳐놨다

조영준

언제나 자비롭게 연휴를 주시는 부처님 오신날로 시작되는 황금 연휴를 앞둔 어느 주말 오전. 넷플릭스를 뒤지던 중 다큐멘터리 하나가 눈에 띄었다. '죽어도 선덜랜드'(Sunderland 'Til I Die)라는 스포츠 다큐멘터리 시리즈였다.

2부리그로 떨어진 선더랜드의 승격 이야기를 다루는 스포츠 드라마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재생한 화면 속 선덜랜드는 충격적이게도 3부 리그인 리그1에서 수 십개의 하부리그 팀들과 승격을 위해 몸부림 치는 초라한 구단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죽어도 선덜랜드 이미지

선덜랜드가 어떤 구단인가? 4만 8천석에 이르는 '스타디움 라이트'를 홈구장으로 영국 북부에 위치한 구단 중에서도 최고의 강성 팬을 지닌 팀이자, 1879년 이래 1부 리그 우승 6번을 기록한 명문이기도 하며, 과거 '해버지' 박지성 선수가 뛰던 시절에는 항상 중위권에 오르내리던 팀이 아니었던가.

더욱이 한때 지동원과 기성용 선수가 몸담으며, 국내 팬들에게도 상당한 인지도를 지닌 팀이 바로 선덜랜드였다. 하지만 이런 찬란했던 시절도 무색하게 다큐멘터리에서 선덜랜드는 리그1에서 매 경기 쌓이는 패배와 무승부에 팬들의 한숨이 늘어나고, 뛰어난 선수들을 지키지 못하는 전형적인 하위 리그 구단의 모습을 그대로였다.

이 드라마를 정주행 하던 본 기자의 마음은 갑자기 불타올랐다. 남들은 아무 신경도 안 쓰는 나만의 소중한 목표가 생기듯 갑자기 선덜랜드를 챔피언스 리그 우승 팀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힌 것.

갑자기 생긴 목표에 급하게 실행한 풋볼매니저 2020(이하 FM 2020)에서 만난 선덜랜드는 다큐멘터리에서 보여준 무기력한 하부리그 팀 이상의 처참한 모습이었다.

FM 2020 선덜랜드 이미지

어지간한 선수 몸값이 500~700억을 호가하는 현대 축구에서 이적 예산 15.71억, 주급 3.16억이 첫번째 시즌 선덜랜드 예산의 전부. 물론, 대부분의 하부리그 팀들의 영입예산이 20억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지만, 4만 명이 입장할 수 있는 대형 홈구장을 지닌 선덜랜드에서 이 정도 예산이라는 것은 개인적으로 충격이었다.

선수단 상황은 더 심각했다. 3부 리그인 리그1 수준에서는 매우 준수한 선수단이였지만, 찰튼으로 임대되어 뛰지도 못하는 ‘에이든 맥기디’가 주급을 무려 2,500만원이나 받고 있었고, 노장 미드필더 ‘그랜트 리드비터’가 1,875만의 주급을 받고 있는 상황. 여기에 팀에서 5번째로 높은 주급을 받는 수비수 ‘베일리 라이트’는 5개월 부상으로 전반기를 통으로 날리고 있는 것을 보고 기어이 혀를 차고 말았다.

FM 2020 선덜랜드 이미지

나이가 많아서 이적도 못 시키는 노장들의 주급이 쓸데없이 높고, 그나마 쓸만한 선수마저 장기 부상으로 쓰지 못하는 FM 게이머들이 가장 싫어하는 상황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이 세 명의 선수가 차지하는 주급이 1년 주급의 15%를 넘는 현실에 혈압이 저절로 올라갔지만, ‘죽어도 선덜랜드’에서 구단주가 1월 이적시장 마지막 날 온갖 협상 끝에 47억에 영입한 공격수 ‘윌 그리그’와 유스 출신의 미드필더 ‘발리 뭄바 그리고 ‘엘리엇 엠블턴’의 능력치가 생각보다 높은 것을 보고 다시 희망을 되찾았다.

3부리그 탈출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3년 상환과 온갖 깎기 신공으로 영입한 ‘애슐리 플레쳐’와 16세 오른쪽 윙 ‘아담 흘로제크’ 그리고 조르지뉴 루터가 알짜배기 활약을 해줘 무난히 3부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자동 승격을 확정지었다. 물론 승격과 함께 쓸데없이 주급만 축내던 ‘에이든 맥기디’가 승격 보너스로 10억을 가져가는 것을 보고 소리를 질러 놀라 달려온 와이프에게 등짝을 맞았지만 말이다.

FM 2020 선덜랜드 이미지

그리고 맞이한 챔피언십(2부리그). 과거 에버튼, 뉴캐슬 같은 1부리그 팀들만 플레이하던 시절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던 리그였지만, 승격으로 마주한 챔피언십은 작년까지 프리미어 리그에 있던 팀들과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어도 손색없는 선수들이 즐비한 무시무시한 곳이였다.

선수 검색으로 계약 완료된 선수를 뒤지고 또 뒤지며, 선수들을 데려오고, 바르샤, 레알, 멘시티 등 천상계 팀들의 유망주 임대를 구걸해 선수단을 간신히 구성한 2021~2022 시즌. 수십 번도 넘게 도르마무 신공(세이브 & 로드)를 시전하며, 기어이 1위 자리를 획득한 선덜랜드는 프리미어 리그 승격이라는 감격의 시간을 마주하게 되었다.

FM 2020 선덜랜드 이미지

승격 이후 1,200억이라는 막대한 영입예산을 바탕으로 선수 스탯과 전술 맞춤을 하나하나 따져가며 영입한 선수들과 ‘도르마무 신공’으로 선덜랜드는 두 시즌 만인 2022~2023 시즌 결국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을 차지했다. 이처럼 FM 속 선더랜드 감독은 올해의 감독상을 수 차례 수상하며 영광의 시간을 보냈지만, 정작 현실의 나는 정반대로 피폐해져만 갔다.

하루에 10시간씩 FM을 플레이하다 보니 한동안 다니던 운동도 자연스레 멀어졌고, 매일 새벽 2~3시까지 잠을 자지 않는 일이 빈번해져 생활 패턴도 완전히 망가졌다. 여기에 황금연휴에 집안일은커녕 컴퓨터만 붙잡고 “왜 골을 못 넣어!”하고 소리만 지르는 남편에 대한 와이프의 화가 극에 달해 고등학생 이후 오랜만에 ‘컴퓨터를 부셔버리겠다’라는 소리를 듣는 지경까지 이른 상황.

FM 2020 이미지

결국 선덜랜드의 챔스 우승으로 나의 목표는 달성했지만, 남은 것은 불어버린 체중과 서릿발 같이 차가워진 반려자의 눈길 그리고 수면 부족으로 온갖 피부병이 발발한 살찐 30대 중반 남성 뿐이었다.

물론, “이번에 선덜랜드로 우승했으니 다음에는 앨런 시어러가 있던 블랙번으로 해볼까?”라는 생각이 잠깐 뇌를 스쳐 지나가기도 했지만, 더 이상 게임을 했다간 ‘이혼 제조기’라는 FM의 악명을 실전으로 체감할 것 같아 이내 생각을 그만두었다.

‘죽어도 선덜랜드’를 보고 세운 작은 목표에서 시작된 스노우볼이 이렇게 커질 줄 모른 채 남들은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연휴가 삭제된 채 출근하는 후회만 가득히 남은 황금연휴였다.

: FM2020 선덜랜드 악마의게임 이혼제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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