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스타크래프트' 흥망성쇠

2005년 봄. 프로토스의 동면(冬眠)

2005년에 들어서며 '프로리그'의 통합문제로 팀단위 리그가 정체되고 있는 틈을 타 양대 스타리그가 팬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된다. 연초의 스타리그에서는 프로토스의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IOPS 04~05 스타리그(이하 IOPS)의 16인중 유일한 프로토스였던 박정석은 아쉽게 8강 진출이 좌절되었고, 당신은 골프왕 04~05 MSL(이하 당골왕)에서도 강민과 김환중, 박용욱 등이 조기탈락하는 등 프로토스의 처참한 몰락은 팬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는 발해의 꿈, 알케미스트, 아리조나 등 프로토스가 플레이하기 힘들었던 맵의 영향과 함께 그 수가 적었던 플토 게이머들이 상호간의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키지 못한 탓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프로토스가 없었던 양대 리그가 결코 시시했던 것은 아니다. 천재 테란 이윤열이 IOPS와 당골왕의 결승전에 오르고 이에 맞서 IOPS에서는 투신 박성준이, 당골왕에서는 운영의 마술사 박태민이 진출하여 테란과 저그 종족 대립구도를 뜨겁게 달궜다. 투배럭 이후 바이오닉 병력으로 앞마당 멀티를 확보한 저그의 성큰밭을 어떻게 뚫을 것이냐가 관건이었던 기존의 테란 대 저그전과는 달리 경기수가 늘어나면서 그 양상은 더욱 다채로워졌다. 테란은 원배럭 더블커맨드 이후 다수의 병력을 활용하는 플레이나 8배럭 치즈 러쉬 같은 빠른 승부 등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며 저그를 상대했고 저그는 박성준과 같은 공격적인 플레이나 박태민과 같은 운영을 살린 플레이, 이주영과 같은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플레이 등 각 선수의 트레이드마크를 만들어내면서 테란에 맞섰다.

프로토스가 자취를 감춘 가운데 IOPS에서 이윤열이, 당골왕에서 박태민이 우승을 차지하며 2005년 봄의 테란vs저그의 대접전은 무승부라고 정리할 수 있다. 그 와중에, 그늘에 가려져 있던 프로토스는 재기의 칼날을 가는데 여념이 없었다. 플토의 기대주였던 송병구가 챌린지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박용욱, 박정석, 손영훈 등이 듀얼토너먼트를 통과했으며 전태규, 이재훈 등이 새롭게 MSL에 입성하는 등 겨울잠 자던 프로토스의 부활준비는 물밑에서 차근차근 이루어지고 있었다.

2005년 여름, 태양만큼 뜨거웠던 저그

스토브리그가 끝난 4월 이후, 온게임넷의 에버 2005 스타리그(이하 에버)와 우주배 2005 MSL(이하 우주)이 개막하며 팬들은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에버에서 팬들의 관심은 스타리그에 진출한 네 명의 프로토스 전사들에게 모아졌는데, 대플토전 극강세를 보이는 박태민, 박성준, 홍진호 등 일류 저그들과 대플토전 FD 빌드로 무장한 테란이 동시에 압박을 가하며 프로토스들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었다.

스토브리그 이후, OSL과 MSL의 공통맵이 사용이 결정되면서 선수들은 연습량에 부담이 덜어지고 그 맵에서의 최적화된 빌드를 가지고 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러면서 점점 경기는 안정적인 물량전 위주로 흘러가는 분위기를 보였다. 프로토스는 저그를 상대로 수비형 프로토스를 완성시켰으며 테란은 프로토스를 상대로 방어에 치중한 후 풀업 메카닉을 활용한 중후반 플레이를 선호했다. 저그 역시 포르테, 네오 레퀴엠, 루나 같이 자원 많은 맵에서 물량자원전 위주의 플레이를 보여주며 세 종족 간의 물량 싸움은 극에 달했다. 즉흥적 전략과 창의적 전술을 원하는 올드 팬들은 경기의 단순화를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거의 동시에 스카이 프로리그 2005(이하 프로리그)가 통합리그라는 기치 하에 화려하게 개막했다. 공통맵의 사용으로 경기 패턴이 단순해지고, 상대 선수를 모르는 상태에서 연습을 해야 하기 때문에 프로리그에서 역시 전략보다는 안정적 물량전 양상의 경기가 이어졌다. 안정화, 장기전화 되어가는 플레이 양상은 게임의 박진감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했는데, 이는 게이머 뿐 아니라 e스포츠 관계자들의 최대 고민거리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극단적 공격성향의 박성준은 KeSPA(한국e스포츠협회) 공식랭킹에 저그로는 최초로 1위에 등극을 하며 성적면이나 인기면에서 최고조를 달리게 되었다. 더욱이 이병민과의 에버 결승전에서 극적으로 승리, 홍진호를 제치고 저그 최강자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이변에 이변을 이어갔던 우주MSL에서는 박정석의 활약이 눈부셨는데, 서지훈, 최연성, 조용호 등 난적들을 거꾸러뜨리며 결승까지 진출했다. 특히 1시간 13분 45초라는 최장경기시간을 기록했던 조용호와의 패자조 결승 4경기에서 박정석은 스타팬 사이에 오래도록 회자될 명승부를 만들어냈다. 결승에서 무서운 신예 마재윤에게 우승컵을 내주기는 했지만 우주에서의 박정석은 프로토스 비상(飛上)에 목말라하던 많은 스타팬들에게 단비같은 존재였다.

박성준과 마재윤의 우승과 함께 저그는 최고의 여름 시즌을 누렸는데 박태민, 조용호, 홍진호 등 기존 저그 유저의 활약과 마재윤, 김민구, 김준영 등 신흥 저그의 등장이 겹쳐지며 저그 팬들의 웃음은 가실 날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테란은 기본 종족 상성을 활용한 플레이를 연구하였으며 프로토스는 수비형 전략을 더욱 강화하여 가을 시즌의 반격을 예고했다.

2005년 가을. 프로토스의 계절, 가을의 전설은 쓰여졌다.

전통적으로 유독 가을만 되면 크게 활약했던 프로토스. 팬들은 2005년 '가을의 전설'을 이어갈 프로토스에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그 중 가장 관심을 끌었던 건 바로 '新3대 프로토스'였다. 박지호, 오영종, 송병구가 그 주인공이었는데 모두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펼쳐 보이며 So1 스타리그(이하 So1)에 나란히 입성했다. 신3대 플토가 정체되어있던 프로토스 진영에 새 패러다임을 제시함과 동시에 비선호 유닛이었던 '아비터'의 전술적 가치가 입증되며 프로토스는 가을의 전설을 계승하기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So1에 플토의 천적인 저그가 일곱이나 포진되어 있었기에 일각에서는 2005 가을의 전설에 회의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So1에는 저그의 천적인 테란이 넷 밖에 없었기에 저그의 강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다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테란 네 명은 모두 8강에 진출하였으며 박성준을 제외한 여섯 명의 저그는 모두 8강 진출에 실패했고, 박성준 역시 8강에서 2패로 탈락하며 저그 암흑기가 도래했다. 결국 So1 4강은 오영종, 박지호 신예 프로토스와 임요환, 최연성 우승경력의 테란으로 구성되며 저그의 몰락 하에 테란 vs 프로토스가 첨예하게 대립했다.

2005년 가을의 진정한 주인공은 오영종이었다. So1 4강 대진을 보고 많은 이들은 임요환과 최연성의 재대결이 펼쳐질 거라 예상했는데 예상과 달리 박지호의 물량을 잠재운 임요환과 다크템플러를 앞세워 괴물 최연성을 꺾은 사신토스 오영종이 결승에 진출하게 되었다. 오영종은 질럿공장장과 사신이라는 자신의 두 닉네임을 증명하듯 물량과 전략을 두루 갖추고 결승에서 황제 임요환을 무너뜨리며 2005년 가을의 전설을 계승했다. 오영종의 우승은 고참급 프로토스 유저에게 큰 자극이 되었으며 이는 듀얼토너먼트에서 프로토스가 넷이나 진출하는 호성적으로 드러났다. 반면 부진을 거듭하고 있는 저그는 박성준과 김근백만이 신한은행 스타리그에 이름을 올리며 분투하고 있다.

돌고 돌고 도는 전략

2005년에는 종족 간의 대립구도도 볼 만 했지만 전략 간의 싸움 역시 치열했던 한해였다. 특히 FD테란의 발견은 '플토>테란'이라는 종족 상성 자체를 흔들어 놓았는데, 테란을 상대할 때 프로토스가 가지고 있던 약간의 우위마저 무너트린 강력한 무기로 급부상했다. 물량형 전장 'R포인트'의 등장과 함께 FD테란은 그 강력함을 더욱 과시하게 되었는데 초반 강한 압박으로 상대를 위축시키며 멀티를 빠르게 확보하는 이 빌드를 깨는 것이 프로토스 진영의 숙제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완벽한 빌드는 없는 법. 옵저버를 늦추며 빠르게 투 게이트로 압박하거나 다크템플러나 리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등 프로토스는 다양한 패턴으로 FD테란에 대처해 나갔으며 결국 FD테란은 대플토전 완벽빌드에서 초반카드 중 하나로 그 위상이 격하되었다.

최근 프로토스가 저그에 강세보이고 있다고는 해도 결국 이번 겨울에 저그를 압살한 것은 테란이었는데 그것이 바로 '빠른 더블커맨드'라는 전략 때문이었다. 저그가 앞마당을 먹으면 전에는 그 앞마당에 최대한 압박을 가하거나 여차하면 바이오닉 병력으로 뚫어버리는 것이 테란 대 저그전의 일반적인 흐름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저그의 멀티 여부와 상관없이 빠른 멀티를 통한 많은 물량으로 중후반 싸움을 벌이는 것이 대저그전 테란의 트렌드가 되었다. 하지만 최근의 저그는 빠른 더블커맨드 전략을 상대로 성큰 숫자를 줄이며 멀티를 더 확보하는 고전적인 패턴으로 서서히 대응책을 마련해가고 있다.

수비만 일삼는 테란을 상대로 프로토스는 아비터를, 수비만 일삼는 토스를 상대로 저그는 다크스웜이라는 무기를 꺼내들었다. 스타크래프트가 끊임없이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완벽'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한 전략이 나오면 그 전략을 무너트리는 전략이 나오고 그 전략에 대한 또 다른 전략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선수들은 끊임없이 연구하고 연습하며 팬들은 열광하게 되는 것이다. 역사가 돌고 돌듯이 스타크래프트의 전략 역시 돌고 돌면서 발전해나간다. 수많은 전략들과 그 파훼법들이 등장했던 2005년의 스타리그를 돌이켜보면 2006년의 스타리그 역시 많은 e스포츠 팬들을 열광시킬 수 있으리라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치열했던 2005년의 스타리그, 멋진 경기를 펼쳐준 선수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뜻을 전한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해가 바뀌면 또 어떤 경기가 우리를 즐겁게 해줄 지 기대가 된다. 하지만 지금의 경기는 선수들도 그렇고 게임리그 관계자들도 그리고 팬까지 양상이 단일화되었다는 평가를 한다. 이는 단순히 유행이라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된다. '이기기 위한' 게임이 '재미없는' 게임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수들은 더 큰 고민에 빠지게 되고 팬은 과거를 그리워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가 맵제작자이기도 하지만 가장 시급하게 바뀌어야 할 것은 다양한 패턴이 나올 수 있게끔 맵을 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5년에 들어서면서 맵은 선수들의 플레이나 빌드를 강요했고 선수들은 특정 맵에서 가장 승률이 좋은 플레이를 하다 보니 경기 양상이 모두 비슷하게 흘러가게 된 것이다. 선수들 입에서 '맵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는 지금의 맵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다 다양한 방향에서 끌어낼 수 있는 맵이 제작되길 바란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예로 든 맵이 '노스텔지어'와 '비프로스트'이다. 다양한 패턴으로 유명한 두 맵을 꼽았다는 것 역시 선수들이 말하려는 바가 무엇인지 잘 시사해 준다.

2005년에 선수들의 충분한 기량을 쌓아올려 치열한 전투를 보여주었다면 2006년에는 보다 다양한 경기 양상을 보여줄 수 있게끔 선수와 관계자 그리고 맵제작자가 노력해야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노력은 팬들에게 만족을 줄 수 있을 만큼 결실로 다가올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싸움.. 힘을 겨룬 2005년이라면 두뇌를 겨루는 2006년이 될 것이다.

변종석

|

2003. 3. 올림푸스 스타리그부터 온게임넷 공식맵 제작 및 관리

2003. 6. 2003 그랜드 파이널부터 WCG 공식맵 제작 및 관리

2005. 2. 온게임넷 스페셜 '배틀 필드 11' 진행

2005. 3. 온게임넷 맵제작팀(Ongamenet Map Architect Team) 결성 및 활동

2005. 7. 빅에프엠 '변종석의 잃어버린 사원을 찾아서' 진행

주요 제작 : Nostalgia, Guillotine, Paradoxxx, 남자이야기, MERCURY, Alchemist, 개척시대(팀 제작)

주요 수정 : 신개마고원, The Huntress, Vertigo Plus, XenoSky, Requiem, Incubus 2004

현재는 온게임넷 맵제작팀에서 활동하며 차기 시즌 맵 준비중

---|---

게임동아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Creative commons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의견은 IT동아(게임동아) 페이스북에서 덧글 또는 메신저로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