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부 4000억원 발언, 어떤 근거로 나왔나

지난 16일 이정선 한나라당 의원(여성가족위원회 소속)과 사단법인 민생경제정책연구소 공동 주최로 열린 '인터넷 중독 예방 기금마련을 위한 기업의 역할' 토론회에서 게임업계를 충격에 몰아넣는 발언이 나왔다.

청소년들의 게임 중독을 막기 위해 셧다운제를 시행하는 것 뿐만 아니라 게임사들에게 청소년 게임중독 예방을 위한 기금을 원천 징수하겠다는 것. 게다가 조성해야 한다고 말하는 기금의 규모 역시 4000억이라는 천문학적인 수치라 게임사는 물론 네티즌들에게도 뭇매를 맞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 여성부에서 4000억원의 기금을 조성해야 하고, 그 금액을 게임업계에서 전액 부담해야 한다고 말한 근거는 무엇일까?

16일 토론회에서 발표된 70페이지나 되는 자료에 따르면 국내 인터넷 중독자의 수는 약 175만명에 중독률은 8.0% 정도라고 한다. 이중 청소년 중독률은 12.4%로 성인 중독률 5.8%의 두배 이상이다.

또한, 이들이 게임중독으로 인한 손해와 치료 비용을 합산한 사회적 손실비용이 최소 1조7000억원에서 최대 5조4천억원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도 발표됐다.

조사된 사회적 손실 비용의 항목으로는 입원 및 외래 진료비, 인터넷 중독 예방을 위한 행정비, 보호자의 시간 비용, PC방 사용료, 온라인 게임 아이템 구입 비용, 치료로 인한 근로 기회 상실 비용, 청소년의 학습 시간 손실 비용, 부모의 업무 시간 손실 등이 포함됐다.

즉, 이 같은 피해를 주고 있는 청소년 게임 중독을 막기 위한 사업을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이 투입되어야 하는데, 예산이 부족하니 부담금 제도를 활용해서 게임업계가 이를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담금 제도란 공익사업에 필요한 경비를 그 사업과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에게 부담시키는 제도로 현재 '부담금관리기본법'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부담금은 대략 90여종이 있으며, 2009년 중앙정부의 부처별 총 부담금 징수액은 1조7천3십1억2천6백만원이라고 한다.]

이 같은 부담금 제도 도입의 당위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자동차 리콜이 사례로 발표됐다. 자동차 사고의 가장 심각한 사례를 자동차의 결함에 의한 사고라고 들며, 자동차 회사들이 모든 자동차가 사고를 일으키지 않아도 사고를 일으킬 개연성에 대한 책임을 져 리콜을 실시하고 있다는 것.

또한, 담배, 사행 산업을 예로 들며 사회적인 문제를 발생시킬 요인을 가진 산업은 그 원인 제공자인 해당 산업이 이를 해결해야 하며, 방식 역시 매출액의 일부를 원천 징수하는 방식이 맞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기금 조성의 규모에 대한 근거로는 방송쪽의 사례가 거론됐다. 방송의 경우 방송발전기금을 조성하여 방송의 발전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데, 금액이 매출액의 6% 이내에서 결정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문화부와 게임업계의 발표에 따르면 2012년에는 게임산업의 매출 규모가 12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고 하니, 기업의 사회적, 도의적 책임과 윤리 경영에 의거 이익금의 10% 정도를 환원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 발표를 실제 게임산업의 상황에 대입시키면 매출액의 6%는 4000억원에 달하며, 이익의 10%는 작년 상장사 평균 영업이익률 36%을 적용했을 때 2300억원에 달한다.

이 같은 여성부의 입장을 접한 게임업계의 반응은 황당 그 자체다. 게임업계에서 청소년 게임중독 예방을 위해 기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여성부의 논리를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토론회의 발표에서는 제시된 근거는 인터넷 중독 전체의 위험성이었지 게임 중독만의 위험성을 알려주는 수치라고 보기 힘들었다. 여성부가 발표한 자료에서도 인터넷 중독 중 게임 중독이 차지하는 비율은 만9세~만12세 57.4%, 만13세~만15세 49.3%, 만16세~만19세 31.3%로 전체의 절반 수준이였지만, 토론회의 타겟은 처음부터 끝까지 게임이었다.

청소년 게임 중독 예방을 위해 기금이 필요하다면서 왜 4000억원이라는 기금이 마련되어야 하는지, 또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입장은 단 하나도 제시하지 못했다. 단지 게임업계가 다른 제조업에 비해 많은 돈을 벌고 있으니 많이 내야 한다는 입장만을 보였으며, 기금의 사용처를 청소년 게임 중독 예방에만 국한 시킬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사업에도 사용되어야 한다며 기금을 마음대로 사용하겠다는 심중을 드러내기까지 했다.

참고로 여성부가 게임업계에서 돈을 많이 벌고 있다고 제시한 수치는 엔씨소프트, NHN, 네오위즈게임즈 등 국내 1~3위 기업들의 수치이며, 엠게임, 한빛소프트 등 중견 기업조차 작년에 적자를 기록했다는 현실을 외면한 것이다. 돈을 많이 버는 업체의 경우에도 매출의 대다수는 국내가 아닌 해외 수출로 벌어들이고 있다.

또한 게임은 방송처럼 공공사업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사회필요악으로 간주되고 있는 도박 산업마저도 작년까지 순매출액의 0.2%를 기금으로 부담하고 있다가, 최근 이것을 1%로 올리자는 개정안이 제시된 상황이다.

근거로 든 자동차 리콜도 납득하기 힘든 사례다. 자동차 사고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음주운전 등 운전자의 부주의이지만, 그 사실을 외면하고 자동차 결함이 더 큰 요인이라면서 은근슬쩍 사용자의 잘못된 사용보다 기업의 책임이 더 크다는 식으로 몰아갔으며, 게임은 자동차와 달리 안전도 검사에 해당되는 사전 심의 제도를 거치고 있어 문제가 되는 게임은 아예 서비스를 할 수 없다는 사실 역시 무시했다.

결국, 토론회에서 나온 얘기를 종합하면 "여성부에 예산이 부족하니 돈을 많이 버는 게임업계에서 돈을 내놓아야 한다. 마련된 기금은 알아서 잘 쓰겠다"로 요약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이런 대우를 받으면서 왜 국내에서 게임사업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이러다 수출 산업의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국내 게임사들이 모두 여성부를 피해 해외로 나가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게임동아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Creative commons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의견은 IT동아(게임동아) 페이스북에서 덧글 또는 메신저로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