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 기금 조성부터 1% 징수까지

지난 18일 국내 게임업계는 한 건의 법안 개정안으로 인해 충격에 휩싸였다. 일본 동북 및 관동 지방의 재난 상황과 리비아 내전에 국민들의 시선이 쏠려있는 사이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이 국회에 전격 제출됐기 때문이다.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이정선 한나라당 의원 외 총 10명의 의원들이 발의한 이 법안은 '게임 업체들의 연간 매출액 중 1%를 징수해 인터넷 중독 예방 기금을 마련해 여성가족부장관이 운용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법안에 대해 게임업계에서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인터넷게임을 서비스하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법안대로라면 현재 인터넷게임에 연관된 온라인 및 모바일 게임업체는 물론 쇼핑업체, 게임 채널링 언론사, 심지어는 1인 스마트폰 개발자들까지도 법안의 대상자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는 수익 여부와 관련 없이 인터넷을 통해 서비스되는 게임과 관련된 모든 기업으로부터 매출의 1%를 거둬가겠다는 뜻으로, 이 법안이 원안대로 통과될 경우 게임업계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중소규모 업체 또는 개인 개발자는 개발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이 법안은 그 동안 강제적 셧다운제를 시작으로 지속적으로 이어져온 여성가족부의 '작업'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으며, 게임을 국가 미래 산업이라며 지원하겠다고 나섰던 현 정부의 진의까지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지난 2010년 3월, 여성 정책과 가족, 청소년 정책 주무 부서를 여성가족부로 통합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경륜과 경정법 시행령의 개정을 통해 기금 규모가 6%로 줄어들어 연간 300억 원에 달했던 기금이 60억 원 규모로 축소된 여성가족부는 게임업계에 대한 영향력 강화를 위해 2010년 4월 청소년보호 업무가 여성가족부로 이관되자마자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관련 법안을 법안 소위로 상정해 통과시켰으며, 청소년 기금 조성 대상으로 술, 담배, 060서비스, 그리고 게임이 포함된 '청소년육성기금 재원 확충방안 연구'라는 용역 과제를 발주했다.

당시 상정된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은 청소년들이 12시 이후 게임을 즐길 수 없도록 제한하고, 게임에 대한 규제를 게임법이 아닌 청소년보호법으로, 문화부가 아닌 여성가족부의 관할로 가지고 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당시 관련 부처에서 이미 해당 기능을 갖춘 것들을 도입했음에도, 청소년에 관련된 것은 무조건 자신들이 총괄해야한다는 억지에 가까운 논리었으며, 이로 인해 당시 법안 발안으로 인해 문화관광체육부에서 제출했던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 처리 역시 발목이 잡혀 스마트폰은 물론 당시 적극적으로 나서야했던 주요 사업에 발목이 잡히는 상황에 이른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용역 과제 역시 그 목적의 진의가 도마에 올랐다. 조성 대상에 술, 담배도 포함돼 있었지만 술은 국세청에서 주세를, 담배는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른 국민건강증진기금을 각각 내고 있는 상황에서 청소년기금까지 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기에 사실상 게임이 주 타겟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이후 엔씨소프트, 넥슨, 한게임, CJ인터넷(현 CJ E&M 게임부문), 네오위즈게임즈 등 게임업계 대표 게임 업체들이 문화체육관광부의 '게임산업 지속 성장 기반 강화를 위한 게임 과몰입 대책'에 발맞춰 '게임 과몰입 예방 100억 기금 조성'을 발표했으나 여성가족부는 자신들의 뜻을 굽히지 않았으며, 오히려 지속적으로 '강제적 인터넷 셧다운제'를 내세우며 문화체육관광부와 게임업계를 압박했다.


그러나 정작 지난해 11월에 정병국 국회위원이 주최하고 한국대중문화예술산업총연합에서 주관한 관련 토론 행사에는 행사 3일전에서야 불참을 통보하며 불리한 곳에는 발을 담그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여 주며 자신들의 주장에 신빙성을 스스로 떨어뜨렸으며, 협의를 통한 현실적인 법안 도출의 의지 역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2011년에 들어서도 여성가족부의 이러한 움직임은 계속됐다. 지난 3월16일 이정선 한나라당 의원과 사단법인 민생경제정책연구소 공동 주최로 열린 '인터넷 중독 예방 기금마련을 위한 기업의 역할' 토론회에서는 4000억원에 달하는 기금을 게임업체로부터 모아 직접 관리하겠다는 한층 구체적이면서 통큰 주장을 내세웠다.

이날 발표회에서는 참가자들이 '게임업계가 100억원 규모의 자율 기금으로 면죄부를 받으려 한다'는 주장과 함께 '별도의 기관을 두어 천문학적인 비용을 직접 관리하겠다'는 주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으나, 정작 '왜' 마련돼야 하며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실질적인 근거는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

오히려 '기금의 사용처를 청소년 게임 중독 예방에만 국한 시킬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사업에도 사용되어야 한다'며 '기금을 마음대로 사용하겠다'는 자신들의 속내마저 드러내기까지 했다.

이날 발표에 대해 게임업계는 "이는 게임업계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미리 돈을 거둬가겠다는 것과 다름없다"며 "이런 대우를 받으며 국내에서 게임사업을 하느니 여성가족부를 피해 해외로 나가는 사례가 나오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틀 뒤 위에서 언급한 이정선 의원의 법안이 소리소문 없이 발의되며 여성가족부의 주장은 보다 구체화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게임산업의 주무부서의 역할을 해야 할 문화체육관광부와 당사자인 게임업계는 갈수록 목소리를 높여가는 여성가족부에 대한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법률 발안으로 인한 충돌 이후 여성가족부의 주장의 맹점을 제대로 지적하거나 자신들의 당위성을 알리고 여성가족부의 법안을 대체할 실질적인 대안을 내세우는데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주무부처로써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응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오히려 "곧 엄청난 권력을 가지게 될 여성가족부의 비위를 벌써부터 맞추려 한다"는 비난의 목소리마저 들리고 있는 실정이다.

게임업계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21일 열린 '게임과몰입 상담치료센터'의 향후 운영방안 관련 기자회견에서 김종민 이사장이 "너무 강한 규제는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고 밝힌 것 이외에는 여성가족부의 주장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주장하거나 기업 규모의 지원 방안에 대해 어떠한 소리도 내고 있지 않다.

마치 '남이 먼저 나서주겠지'라고 생각하는 듯한 안일한 모습마저 보여지고 있어 과연 당사자들로써 현재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 간다.

아무리 그 뜻이 좋은 법안이라고는 하지만 현 정부의 정책에 반하는 기구를 억지로 설립해가면서까지 천문학적인 큰 돈을 담아 여성가족부 아래 둔다는 점은 그간 여성가족부가 걸어온 길이나 그들이 해온 활동의 결과물, 그리고 전혀 제시하지 못하는 실질적인 사용처 및 '별도의 용도로도 사용하겠다'는 주장을 봤을 때 그 돈이 제대로 사용될 것이라는 보장을 받기는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모든 사업자들에게 일괄적으로 매출의 1%를 거둬들여 실질적인 수익을 얻지 못하는 대부분 영세 게임업자나 개인 개발자들의 개발 의지를 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의 법안은 '청소년 보호'라는 본래 의지마저 퇴색될 확률이 높아 보이는 만큼 보다 현실적이고 투명한 방식의 지원으로 전환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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