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경, 그가 꺼내든 온라인게임의 또 다른 가능성과 미래

"아키에이지의 4차 비공개테스트를 80일간 진행할 예정입니다"

처음 이 말을 듣는 순간 귀를 의심했습니다. 테스트를 80일간 진행한다니요. 오픈베타도 아니고 비공개테스트를. 80일간 게이머들이 게임을 꾸준히 즐길지 의심스러웠고, 회사가 원하는 결과물을 받아볼 수 있을지 걱정도 됐습니다.

"송재경 대표의 의견이겠죠? 회사 내부에서 반대는 안하던가요?"

저의 대답이자 질문이었습니다. 과거 이런 테스트가 없었기 때문에 과정이나 결과가 머릿속으로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과연 테스터들이 80일간 게임을 할까?' '테스트 이후 데이터는 초기화될텐데, 테스터들의 반응은 어떨까?' '80일 동안 테스트를 하면 그 이후 오픈베타는?' 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돌았죠.

하지만 그 다음으로 떠오른 생각은 '송재경 대표가 아니면 이런 도전이나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입니다. '과연' '역시'라는 수식어도 붙었구요.

결국 아키에이지의 4차 비공개테스트는 다소 기간이 늘어나 95일간 진행됐습니다. 웬만한 온라인게임의 오픈베타에 준하는 기간 동안 진행된 테스트이니 만큼 많은 사건 사고들이 있었고, 아키에이지와 송재경 대표가 그리고자 하는 온라인게임의 미래도 보았습니다.

95일간 진행된 아키에이지의 4차 비공개 테스트를 돌아봤습니다.

아키에이지는 2012년 블리자드의 디아블로3, 엔씨소프트의 블레이드앤소울과 함께 빅3로 분류된 게임입니다. 게이머들의 관심과 기대가 그만큼 높다는 것이겠죠. 근데 개인적으로는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게임이었습니다. 지난 테스트에 참여해 게임의 모습을 보았고, 개발 초기부터 게임을 바라봤기 때문에 현재의 문제점들을 그만큼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게이머들이 아키에이지에서 많이 지적하는 부분은 캐릭터의 움직임과 전투, 타격감 부분입니다. 아키에이지뿐만 아니고 국내 출시되는 모든 게임에서 전투의 비중은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국내 사용자들은 다른 요소보다 전투의 재미 부분에 비중을 많이 두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키에이지의 전투는 아직 부족하지만 많이 개선됐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현재 가장 직접적으로 비교되고 있는 게임이 엔씨소프트의 블레이드앤소울이다 보니 아키에이지의 전투는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화려한 이펙트를 강조하지도 않았구요. 초기에 비해서는 엄청난 발전이 있었지만 온라인게임은 과정이 아닌 결과물로 보여지기 때문에 현재의 전투만으로는 아직 국내 게이머들의 높은 눈높이와 기대치를 만족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개발자분들도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아마 오픈베타 전까지 전투 및 타격감 부분은 계속 수정되어 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아키에이지를 살짝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전투는 온라인게임에서 중요한 부분이나 아키에이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다른 게임과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전투와 사냥만을 강조한 국내 온라인게임들도 많지만 아키에이지는 전투 외에도 하고 놀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고 놀 것이란 부분이 애매하기 때문에 엑스엘게임즈도 그렇고 송재경 대표도 이를 ‘자유도’라 칭했습니다. 하지만 이 자유도가 최근 발매되어 호평을 받은 PC게임 ‘스카이림’의 자유도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처음 아키에이지가 공개되었을 때도 ‘자유도’를 언급했고 게이머들은 PC게임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도를 기대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키에이지의 ‘자유도’란 레벨업과 전투로 획일화되던 온라인게임에 다른 선택지를 준 정도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고 레벨이 되면 장비를 맞추기 위해 인던을 반복해서 돌고, 그러기 위해서는 반복 사냥이나 전투만을 해오던 것에서 벗어나 보기 위한 방안으로 보입니다.

나무를 심고 그걸 잘라 집이나 배를 만들고, 배를 타고 무인도에 가서 나만의 공간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농장을 만들어 돈을 벌어도 되고 과일을 심어 돈을 벌수도 있습니다. 물론 기본적인 퀘스트, 메인 스토리, 공성전, 대규모 PvP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구요. 기본이라 하기는 다소 많을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부분도 있어서 퀘스트나 미션은 충분히 준비되어 있거든요.

아키에이지에서는 게임 내 방치되어 있는 잡초 하나만 뽑아도 경험치를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좋은 광물을 캐거나 나무를 벤다거나 하면 더욱 많은 경험치를 얻을 수 있죠. 물론 전투만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적은 경험치도 아닙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25레벨(현재 최고레벨은 50) 부근에서 약 40~50그루의 나무를 베면 레벨업이 가능했던 것으로 기억하거든요.

아키
아키

그래서 지난 테스트에서 나무를 심고 열매를 따는 ‘농부’ 활동을 하는 게이머들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개발자분도 그렇게 많은 테스터들이 재배 콘텐츠를 즐길지는 몰랐다고 하셨을 정도입니다. 재배 콘텐츠는 아마 다음 테스트에서 크게 증가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간담회에서 많은 의견들이 수렴됐고, 보상이나 명예점수에 대한 부분도 부족했던 것을 개발자분이 인정한 만큼 새로운 콘텐츠보다는 발전된 모습의 재배 콘텐츠가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아키에이지의 ‘노동력’도 다른 게임에서 볼 수 없는 부분입니다. 노동력은 전투가 아닌 제작, 재배 등에 활용됩니다. 매일 조금씩 얻을 수 있으며 노동력이 없어도 전투나 퀘스트는 진행할 수 있지만 제작이나 생산, 채집 등의 활동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노동력은 단순히 채집, 생산과 같은 활동에 그치지 않고 보다 광범위한 부분을 염두에 둔 시스템입니다.

그 중 가장 큰 부분은 커뮤니티입니다. 커뮤니티는 온라인게임의 꽃으로 불리며 전투만큼 온라인게임에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작은 쾌속정이나 집 같은 것은 한명의 노동력을 사용해서 간단히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성전에 사용될 성이나 대형 범선은 혼자서 만들기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그렇다고 못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을 필요로 할 뿐. 때문에 대규모 건축을 할 때는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과 함께 해야 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강제성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행동들이 게이머들의 선택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강제로 ‘2명 이상 모여서 해라’가 아닌 혼자하면 2~3일이 걸리니 ‘주변 사람과 같이 해볼까’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거든요. 그래서 이번 비공개테스트에서 게이머들에 의해 만들어진 원정대(길드 개념)는 173개였습니다. 같은 목적을 가지고 모여든 사람들이죠. 원정대는 최소 5명이상으로 구성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아키에이지의 이번 테스트의 최대 성과는 이런 자연스러운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형성된 원정대, 그리고 원정대간의 대립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경쟁과 대립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온라인게임은 오랜 기간 서비스되기 어려운데, 아키에이지는 이번 테스트에서 그런 기반이 형성될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종족간의 대립을 기본으로 제3세력인 해적까지. 종족 간의 대규모 원정대들끼리의 대립까지 생각하면 상당히 흥미로운 구조였습니다.

또 다른 ‘자유도’를 가진 해적도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그들은 범죄지수가 일정 수치 이상 기록한 집단입니다. 해적이 되면 범죄에 패널티를 받기 않기 때문에 매력적으로 느끼는 게이머들도 많습니다. 우선 해적이 되기 위해서는 범죄 지수를 올려야 합니다. 다른 게이머의 나무나 재배한 것들을 무단으로 채집하면 1점의 범죄지수를 얻고 PK는 5점~30점까지 책정됩니다. 이 수치가 100점이 되면 감옥으로 소환되고 300점 이상이 되면 해적으로 분류되죠. 무한PK를 할 수 있지만 그만큼 본인도 공공의 적이 되는 것이기에 본인의 행동의 선택에 따라 게임 전체 이용에 제한을 받게 됩니다. 새로운 방향의 ‘자유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컨트롤 장비 등에서 월등한 게이머들이 해적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키에이지는 수치적으로도 다양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173개의 원정대, 원정대 최대 규모는 153명, 제작된 집은 3,400채 이상, 13만여 마리의 가축 판매, 75만개의 소나무 묘목 판매, 딸기 씨앗 66만개 판매 등 총 220만 그루의 나무가 심어졌죠. 접수된 의견은 2만 여개, 게시판 하루 등록 게시물 수 2,700여개, 테스트 기간 동안 총 26만여 개의 게시물이 등록됐습니다. 웬만한 오픈베타에 비교될 정도의 수치죠.

물론 오랜 기간 테스트를 진행하다보니 문제도 노출됐습니다. 소위 말하는 ‘편파에이지’ 사건들입니다. 엑스엘게임즈에서 특정 길드에 편파적인 기준을 적용했다는 의견이었습니다. 특히 해적분들이 피해를 보았죠. 개발&운영팀장님이 발 빠르게 공지를 올리고 간담회에서 그런 일은 없었다고 못을 박았지만 ‘많은 이들에게 그렇게 보였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의도야 어떠했을지 모르겠지만요.

대규모 비공개테스트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역시 운영부분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 부분입니다. 비공개테스트였던 만큼 조금 더 혜택을 주어도 크게 상관이 없기도 했구요. 결과적으로 과정 및 결과에 상관없이 테스트에 참여하지 않은 게이머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남긴 꼴이 됐습니다.

처음 계획했던 80일을 넘겨 95일간 진행된 이번 테스트는 결과적으로 아키에이지에는 큰 도움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콘텐츠의 완성도도 높아졌고, 내부 인력으로 체크할 수 없었던 수많은 버그들도 수정됐습니다.

송재경 대표가 처음 게임을 공개하면서 들려주셨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키에이지는 기존 온라인게임과 차별화된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아예 다른 개념의 게임은 아니다. 많은 부분들을 여백으로 두고 게이머들이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라는 것이었죠. 이는 바로 커뮤니티였고, 이번 테스트를 통해 그 부분에 대한 가능성을 느꼈습니다. 송재경 대표가 초기에 기획했던 모습으로 게임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더군요.

아직 아키에이지는 많은 콘텐츠를 숨겨두고 있습니다. 오픈베타를 위해 메인 스토리가 공개되지 않았고, 현실적 물리엔진이 적용되는 인스턴스던전도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이번 테스트를 통해 게이머들의 의견도 많이 받아 그에 대한 개발도 이뤄질 것입니다. 아키에이지의 다음 테스트가 기다려지는 이유입니다.

5차 테스트 역시 4차와 마찬가지로 비공개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아직 기간과 방법에 대해서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지난 테스트로 많은 것들을 얻은 엑스엘게임즈의 선택은 아마 지난번과 같은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비공개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게임에 대한 평가와 가능성을 논하는 것은 일러도 한참 이른 판단이지만, 아키에이지의 미래는 나쁘지 않습니다. 모든 게임이 그렇지만 아키에이지는 기존 온라인게임 보다 더 앞을 내다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과 같이 할 수 있으면서도 혼자서 유유자적 즐길 수 있는 게임의 밑그림을 그려지고 있습니다. 바로 송재경 대표가 꿈꾸고 기획했던 것이 아마 이런 부분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이번 4차 테스트를 마무리한 기념으로 16일 저녁 간담회가 열립니다. 개발팀장님에게 수고했다는 메시지와 함께 차기 테스트에 대한 재촉도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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