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민의 게임 히스토리] 최초의 RPG는?

롤플레잉 게임, 즉 RPG는 시대와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국내의 경우에는 MMORPG, MORPG 등 온라인에 기반을 둔 게임들이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모습이며, SRPG, 액션 RPG 등 RPG에 뿌리를 둔 다양한 게임들도 자신의 자리에서 충실히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RPG가 역할 수행 게임이라는 것은 많은 게이머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소 의문을 갖게 만드는 일이 종종 나타난다. 바로 다양한 게임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 홍보용 문구로 'RPG 요소 삽입', 'RPG적인 육성 요소 도입' 등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왜? 역할 수행이라는 본연의 이름보다 '육성'이라는 것이 RPG의 대명사가 됐을까? 그 기원은 국내에서 많이 유행한 RPG게임이 이른바 일본식 RPG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본식 RPG의 경우 정해진 스토리를 따라 캐릭터의 레벨을 높이고, 더 강력한 적을 물리치기 위해 '레벨 노가다'라고 불리는 반복 사냥이 중심이 됐다. 게이머는 캐릭터를 더욱 강력하게 키우고 게임의 엔딩을 보기 위해 캐릭터를 육성해야 했으며, RPG는 스토리를 따르며 캐릭터를 육성하는 게임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체인메일 3번째 에디션
사진
체인메일 3번째 에디션 사진

그렇다면, 최초의 RPG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일반적으로 RPG는 판타지 전쟁 게임 장르에서 유래된 것으로 본다. '던전앤드래곤'(Dungeons and Dragons / D&D)을 공동 개발한 E. 게리 자이각스(E. Gary Gygax)는 '체인 메일'(Chainmail)이라는 중세풍의 전쟁 게임을 위스콘신에 위치한 제네바 호(Gneba lake)에서 개발했다. '체인 메일'은 '젠콘'(Gen Con)이라는 작은 지역 게임 대회를 열수 있을 정도로 성공했고 당시 수백 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당시 '젠콘'의 참가자 중에는 미네소타에서 온 데이빗 아네슨(David Arneson)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체인 메일'의 규칙을 한 명의 참가자가 하나의 캐릭터를 맡는 1:1 방식으로 수정했고, '체인 메일'의 제작자 자이각스도 이러한 방식에 호감을 가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그 둘은 '던전앤드래곤'의 공동 개발에 돌입했으며, 이들은 곧 최초의 상용 RPG인 '던전앤드래곤'을 선보이게 된다. 물론 이러한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던전앤드래곤'의 개발이 완료되자 게임 업체들에게 게임을 선보였지만 게임의 자유도가 너무 높고, 기존의 전쟁 게임과는 모습이 달랐기 때문에 모두 거절을 당했다. 결국 자이각스는 자비를 털어 게임을 발매하고자 결정하고 아네슨 및 몇 명과 모여 택티컬 스터디즈 룰즈(Tactical Studies Rules / TSR)를 설립한다. 그리고 1974년 게임계에 지각 변동을 일으킨 '던전앤드래곤'이 발매되기에 이른다.

던전앤드래곤 사진
던전앤드래곤 사진

'던전앤드래곤'은 흔히 TRPG(Table top RPG or Table talk RPG) 또는 펜앤페이퍼(Pen and Paper RPG)로 불리며 진행 방식은 아래와 같다. 한 장소에 게이머들이 모이고 그 중 한 사람이 게임의 마스터를 맡는다. 게임의 마스터는 미리 준비한 시나리오에 따라 현재 플레이어들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며 게임을 진행한다. 이 때 게임에 참여한 플레이어들은 가상의 인물을 하나 씩 맡아 행동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예들 들면 마스터가 “현재 당신들은 던전의 입구에 도착했습니다”라고 말하면 플레이어 1이 “던전에 들어가 싸우자”, 플레이어2가 “좀 더 신중해져 보자” 등의 의견을 낼 수 있고 서로 대화를 통해 정보를 얻고 행동을 묘사한다. 전투가 진행된다면 미리 전해진 룰에 따라 주사위를 굴려 어떤 무기를 사용해 어느 정도의 대미지를 입혔는지 결정된다.

플레이어들의 상상력과 대화가 게임의 중요한 요소가 됐으며, 함께 하는 재미에 초점이 맞춰진 '던전앤드래곤'은 많은 인기를 끌었다. 이후에 '어드밴스드 던전앤드래곤' 출시되고, 시간이 흘러서는 국내에도 소개됐다.

많은 인기를 끌기는 했지만 '던전앤드래곤'같은 경우에는 치명적인 문제를 갖고 있었다. 게임을 혼자서 즐길 수 없었던 점과 게임을 진행하기 위해서 알아야 하는 룰북이 상당히 어려웠던 것 등이다. 그러나 이런 RPG의 문제는 PC가 보급 되면서 자연스레 해결된다.

울티마와 리차드 개리엇
울티마와 리차드 개리엇

RPG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리차드 개리엇(Richard Allen Garriott)이 등장하는 것도 이쯤이다.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의 시초를 언급할 때 꼭 등장하는 세 작품인 '울티마'(Ultima) , '위자드리'(Wizardry), '마이트앤매직'(Might and Magic) 중 '울티마'의 아버지인 리차드 개리엇은 1979년 애플2 컴퓨터를 이용해 그래픽이 입혀진 최초의 컴퓨터 RPG '아카라베스'(Akarabeth)를 선보인다.

위자드리와 마이트앤매직의
플레이화면
위자드리와 마이트앤매직의 플레이화면
이후 리차드 개리엇은'울티마' 시리즈를 개발하고 네 번째 울티마 시리즈가 출시 됐을 때는 개인 회사를 차릴 정도가 됐다. 이후에도 '울티마' 시리즈를 계속해서 선보인 리차드 개리엇은 많은 시간이 흘러 엔씨소프트의 게임 개발에 참여해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울티마'는 최초로 던전과 야외를 드나들 수 있는 게임이기도 했으며, 지상에서는 위에서 바라보는 시점으로 진행되며, 던전에는 '위자드리'와 유사한 미로찾기 시스템이 도입됐다. 또한 추후 등장하게 될 일본식 RPG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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