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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준의 게임 히스토리] 시대를 뛰어넘은 FPS의 아버지 존 카멕

조영준

FPS(First-person shooter)는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인체 그대로의 시점 이른바 1인칭으로 진행되는 슈팅 게임을 일컫는 말이다. 생동감 넘치는 액션을 선보여야 하는 장르의 특성상 보다 빼어난 그래픽을 선보이고 역동적인 게임 플레이를 펼칠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FPS는 시대를 뛰어넘어 언제나 많은 사랑을 받아온 장르이기도 하다.

더욱이 마이크로소프트의 '헤일로' 시리즈나 액티비전의 '콜오브듀티', EA의 '배틀필드', 유비소프트의 '파크라이' 등 전세계에서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는 거대 게임사들의 대표 프렌차이즈 게임 중에서도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장르 역시 FPS라는 것은 그 인기를 말해주는 부분이다.

존 카멕

이렇듯 오랜 시간 사랑 받아온 FPS 장르는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지만 흐름을 거슬러 오르면 언제나 한 명의 인물로 압축된다. ‘게임 역사상 최고의 천재’, ‘FPS 아버지’등 수 많은 수식어를 지니고 있는 전설의 프로그래머 ‘존 카멕’이 바로 그 주인공.

위인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큰 인물은 어릴 때부터 범상치 않은 족적을 남기는 법이고, 존 카멕 역시 이와 마찬가로 어린 시절부터 엄청난 일을 저지른 바 있다. 비록 그 범상치 않은 족적이라는 것이 ‘폭탄제조’라는 반사회적인 행동이었지만 말이다.(이 사건으로 존 카멕은 소년원에 가게 되어 18세가 되기도 전에 이미 전과자가 되었다.)

이렇듯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친 존 카멕이 본격적으로 이름을 높인 것은 대학 2학년 자퇴를 결심한 이후부터다. 언제나 컴퓨터 프로그래밍에만 관심이 있던 존 카멕은 답답한 교육 시스템에 염증을 느껴 대학을 자퇴한 이후 프리랜서로 활동하게 됐고, 잡지 부록 게임 전문회사 소프트디스크에서 존 로메로, 케빈 클라우드, 아드리안 카멕을 만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이 중에서도 존 로메로는 뛰어난 프로그래밍 실력뿐만 팀원들이 협동성, 게임의 미적 감각 등 어린 존 카멕에게 부족한 ‘사교성’과 열린 시야를 알려주며 그의 친구이자 스승이 되었고, 이 둘은 의기 투합하여 1991년 이드 소프트(ID SOFT)를 설립하게 된다.

존 카멕

최고의 프로그래밍 능력을 지닌 존 카멕과 뛰어난 게임 감각을 지닌 존 로메로의 콤비는 거칠 것이 없었고, 이드 소프트는 이듬해 1992년 세계 최초의 1인인 슈팅게임 ‘울펜슈타인 3D’를 제작하며 세상에 그 이름을 알렸다.

‘울펜슈타인 3D’가 미친 파급은 엄청났다. 총기를 실시간으로 바꾸어 가며 시시각각 다가오는 적들을 상대하고, 맵 곳곳에 있는 총탄을 모아 이를 보충하는 등 이전까지 없는 새로운 액션 플레이를 선보인 것 뿐만 아니라 적진 한복판에서 펼치는 사보타주를 사실적으로 표현해 내며, 1인칭 슈팅게임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다.

당시 하드웨어의 성능 한계에도 불구하고, 울펜슈타인은 ‘3D’ 요소를 상당수 갖추고 있었는데, 2D 그래픽을 복합적으로 입혀 마치 3D 환경에서 게임을 하는 유사한 효과를 구현했다. 이러한 기법은 그 당시 굉장히 파격적인 것으로 실제로 게임을 하다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게이머들이 속출할 정도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혁신적인 게임의 개발을 존 카멕이 대부분 맡아서 했다는 점으로, 그는 게임 내 모든 효과와 총기의 물리엔진 등을 거의 혼자서 만들어 내다시피 하며 자신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울펜슈타인 3D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존 카멕과 존 로메로는 다음 게임 개발에 착수하게 되고 이듬해인 1993년 게임 역사의 기념비적인 작품 ‘둠(DOOM)’을 선보인다.

둠 2

화성의 기지에 구조요청을 받은 요원이 지옥문(헬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온 악마들을 만난다는 배경으로 진행되는 ‘둠’은 특유의 잔혹한 게임성과 시대를 앞서간 그래픽(아직까지 둠을 배경으로 하는 미니게임이 나올 정도), 사실감 넘치는 액션을 앞세워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현대 FPS 개념을 확립하고, 최초의 네트워크 플레이를 지원해 혼자가 아닌 게이머와 게이머간의 PvP 모드를 선보인 것뿐만 아니라 사용자 제작 콘텐츠(MOD)의 시대를 열어 놓은 것 등 ‘둠’이 게임사에 미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지만, 가장 혁신적인 것은 바로 ‘게임엔진’을 최초로 만들고 이를 판매하는 등 지금의 엔진 중심의 게임 환경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이전의 게임은 개발자가 알고 있는 코드의 양에 따라 게임플레이, 그래픽, 물리구현이 모두 달랐지만, 당시 최고의 프로그래밍 기술을 가지고 있던 존 카멕은 ‘울펜슈타인 3D’에서부터 사용된 수 많은 코드들을 다시 정립하고 이를 하나의 툴로써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둠 엔진’을 만들어 냈다.

이 ‘둠 엔진’은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일일이 코드를 제작해야 하는 기존의 게임 개발 방식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고, ‘둠 엔진’을 바탕으로 다양한 장르의 게임이 만들어져 지금의 개발 환경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더욱이 엔진을 통해 게임을 개발하는 방식은 개발자의 문턱이 낮아지게 되는 흐름으로 이어졌고, 이후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무장한 프로그래머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게임 산업이 발전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렇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 ‘둠 엔진’을 코드부터 개발 툴까지 거의 혼자서 만들다시피 한 인물이 바로 ‘존 카멕’이니 그가 게임 역사상 최고의 천재 중 한명으로 꼽히는 것은 무리가 아닌 일이다.

더욱이 ‘존 카멕표’ 게임엔진은 ‘네트워크 대전’이라는 지금의 온라인게임의 개념을 세운 동시에 진정한 의미의 3D 게임을 선보인 작품 ‘퀘이크’에 사용된 ‘퀘이크 엔진’의 개발로 이어졌다. FPS게임에 최적화된 물리엔진과 뛰어난 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는 이 ‘퀘이크 엔진’은 콜오브듀티, 라프라이프, 메달오브아너 등 수 많은 대작 게임에 사용되며, 이름을 높였다.

존 카멕

더욱이 3D 그래픽으로 개발되어 전용 그래픽카드를 필요로 했던 ‘퀘이크 엔진’의 등장으로 컴퓨터 업계에는 본격적인 그래픽 카드 시장이 열리게 되었고, 하드웨어의 성능에 따라 게임의 퀄리티가 완전히 달라지는 엔진의 특성상 컴퓨터 업그레이드를 필요로 하여 게이머로 하여금 ‘최신 게임등장 = 컴퓨터 업그레이드’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등 PC 게임업계 발전에 존 카멕이 미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밀레니엄의 공포와 함께한 2000년에 이르러 존 카멕은 31세의 나이에 미국예술과학아카데미(AIAS)가 수여하는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며, 게임업계 관계자로서는 미야모토 시게루, 시드 마이어, 사카구치 히로노부에 이은 네 번째 수상자가 되었고, 이는 최연소 기록으로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이처럼 게임업계의 정상에 오르며 전성시대를 연 존 카멕이었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둠과 퀘이크 시리즈가 후발주자들에게 밀리며 그 명성이 점점 쇠퇴했고, 시장의 흐름 역시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거대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스케일 큰 게임이 주를 이루며, 시장에서의 영향력 또한 날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2011년 이드소프트에서의 마지막 게임 ‘레이지’ 이후 존 카멕은 가상현실기기 오큘러스 리프트의 최고기술경영자(CTO)로 이직했으며, 이후 약 2조 2천억 원이라는 엄청난 가격에 페이스북에 인수된 이후 가상현실 기기와 게임이 접목된 새로운 게임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는 중이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어린 시절부터 천재성을 드러낸 존 카멕은 자신의 관심사인 프로그래밍을 나날이 갈고 닦아 게임역사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겼다. 하지만 그가 훗날 '어리석었다'고 말했을 만큼 자신의 능력만을 믿고 자만했다면 지금의 명성과 성공은 이루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굴하지 않고 오랜 시간 갈고 닦은 프로그래밍이라는 토양과 더 새롭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더해 꽃을 피운 존 카멕처럼, 국내 게임 시장에 종사하는 개발자들 역시 자신이 가진 능력에 남들과는 다른 독특한 '무언가'를 접목시켜 게이머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다면, 한국에서도 제2, 제3의 ‘존 카멕’을 만날 수 있지는 않을까?

: 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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