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산업 위기보고서] 쉬운 책임 전가. 게임을 가해자로 만드는 사회

[게임산업 위기보고서 1부 : 점점 어려워지는 한국 게임 시장]
4화. 쉬운 책임 전가. 게임을 가해자로 만드는 사회

[본지에서는, 대형 기획 '대한민국 게임산업 위기보고서 : 그래도 희망은 있다'를 통해 한국 게임산업에 대한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내용을 다룰 계획이다. 이번 기획이 한국 게임산업의 총체적 위기를 진단하고, 한국 게임사들에게 진정한 위기를 타파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도박, 마약, 술, 그리고 게임.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어울리지 않는 한가지가 껴 있는 조합이지만, 현재 한국에서는 이 비상식이 통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4대 중독물이기 때문이다.

4대중독토론회2
4대중독토론회2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게임중독법이 공론화되면서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학교 내 왕따 문제부터 시작해, 폭력 사건, 자살까지 사회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사건 사고의 원인으로 게임이 지목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더구나 게임중독법 발의자인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은 최근 소속 상임위원회를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로 옮기면서 다시 게임중독법을 강력히 추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황우여 신임 교육부 장관 역시 게임을 4대 중독물, 사회악으로 규정한 바 있기 때문에,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날이 갈수록 더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완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내, 아니 전세계 청소년들 대부분이 즐기고 있는 대표적인 놀이 문화인 게임이 국내에서 유독 사회악으로 지목되고 있는 것은 진정한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겉으로 드러난 문제만을 주목하는 기성세대의 단편적인 시선 때문이다.

과거 2001년에 발생한 동생 살해 사건의 경우 범인이 폭력적인 게임을 즐긴 것이 원인이 됐다고 보도됐지만, 범인이 자주 즐겼던 폭력적인 게임이라는게 알고 보니 소년, 소녀의 성장을 다룬 아름다운 스토리로 유명한 영웅전설이었다. 그런 상황까지 몰고 간 복합적인 요인을 분석하긴 어려우니,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요인인 게임을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하려다가 발생한 오류다. 게임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었다면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그 당시에는 공론화돼 게임 등급 심사 강화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2011년에 발생한 만삭 의사부인 사망사건 역시 폭력적인 게임 때문이라는 보도가 줄줄이 이어졌다. 부부싸움으로 인한 우발적인 범행이었지만, 남편이 평소 게임을 즐겨 했기 때문에 부부싸움이 잦았다는 발표가 나자, 이 역시 만만하고, 관심도 많이 받는 게임탓으로 몰고 간 것이다. 남편이 주로 즐겼다는 폭력적인 게임이라는게 제목이 세틀러이고, 정착지를 건설해 자원을 생산하고, 영토를 늘려가는 게임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이런 무리수를 던지지 않았을테지만, 속보가 아쉬운 언론들은 검색이라는 간단한 작업 조차 하지 않았다.

2012년에 발생한 나주 7살 여아 성폭행 사건은 더 기가 막히다. 집에서 자고 있던 7살 여아를 납치해 성폭행한 사건으로, 그 시간에 엄마는 PC방에 있었으며, 범인은 같은 PC방을 즐겨 다녔던 사람이라고 한다. 순식간에 그 엄마는 딸이 성폭행 당하는 것도 모르고, 게임만 정신없이 하는 게임폐인 엄마로 낙인이 찍혀버렸다. 사실은 집에 컴퓨터가 없어 아이들의 숙제를 돕기 위해 자주 PC방을 가야했던 것 뿐이었지만, PC방=게임이라고 생각하는 기성세대들은 이 같은 진실을 외면했다.

물론, 이런 사건 외에 정말 게임 과몰입이 걱정되는 사건들도 있다. 최근 발생한 웹보드 게임 서비스사 50대 남성 방화 시도 사건이나, 대구 PC방 칼부림 사건 등은 분명 치료가 필요한 상태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이런 사건들은 개인의 특수한 상황이지, 게임으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겪는 일반적인 상황으로 확대해석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신의진
신의진

조직폭력배 영화를 본 사람들이 모두 조직폭력배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모두 게임 과몰입 현상을 겪는 것도 아니며, 이런 극단적인 사건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게임탓으로 돌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던 사람들이 게임으로 인해 이런 사건을 저지른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

그로 인해, 갑자기 PC방의 전원을 내리더니, 아이들이 게임 때문에 폭력적으로 변했다는 MBC의 황당무계한 실험이 나오기도 했으며, 최근 많은 이들에게 슬픔을 안긴 임병장 총기난사 사건을 게임과 연결시키려는 황진하 국방위원장의 무리수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사실 아이들이 먹고 있던 것을 뺏기만 해도 똑 같은 반응이 나오기 마련이며, 현재 군대 있는 사람 중에서 FPS 게임을 한번도 안 해본 사람을 찾는 것이 더 힘들 것이다.

감기 걸렸을 때 무좀약을 처방하면 병이 낫지 않듯, 병의 원인을 분석해 제대로 된 약을 처방해야 하건만 현재 기성세대들은 그런 과정들을 모조리 생략하고 눈에 보이는 결과만 가지고 모든 현상을 게임탓으로 몰아가는 중이다.

지금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청소년 강제 셧다운제 정책의 경우 게임으로 인해 부모님과 다투던 청소년의 자살 사건이 시발점이 됐지만, 2014년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에서 발표한 청소년자살충동 이유 조사를 보면 39.2%가 성적, 진학, 16.9%가 가정불화, 16.7%가 경제적 어려움이었다고 한다. 이것만 봐도 부모님의 성적과 진학에 대한 압박이 게임과몰입으로 인한 위험보다 청소년들의 정신적 건강상태에 더욱 위험이 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요점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상처의 표면만 덮으면 안이 곪듯, 근본적인 원인을 찾지 않고 게임탓만 하다가는 더욱 큰 상처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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