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세계는 한 편의 게임이 될 것"
"과거에 '세계는 한 권의 책이 될 것'이라는 말이 있었고, '세계는 한 편의 영화가 될 것'이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세계는 한 편의 게임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금일(23일) 서울한국인터넷기업협회 엔(&)스페이스에서 열린 '제7차 굿 인터넷 클럽 50'의 발제자로 나선 진중권 동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의 말이다. 진중권 교수는 '게임과 인터넷'을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에서 '게이미피케이션'을 주요 내용으로 삼아 발제를 진행했다.
게이미피케이션(이하 게임화)은 게임이 아닌 분야에 대한 지식 전달, 행동 및 관심유도 혹은 마케팅 등에 게임의 메커니즘, 사고방식과 같은 게임의 요소를 접목 시키는 것을 말한다.
진중권 교수는 "토트신이 문자를 발명해 파라오에게 문자의 사용을 권했으나 기억을 문자로 기록할 경우 인간들의 머리(기억력)이 나빠질 우려가 있어 이를 거부한 파라오의 이야기처럼 새로운 매체에 대한 불신이 무려 2,500년 전 문자에서 만화와 TV를 거쳐 오늘날 게임으로 옮겨졌을 뿐"이라며 "게임을 불신하는 이들이 미처 보지 못했으나, 우리가 그것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게임은 21세기 문화 전체의 패러다임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진 교수는 이어 "후이징하가 일찍이 '호모루덴스'에서 정치, 경제, 종교, 예술 등 인간의 문화가 근본적으로 '놀이'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으며, 클릭 한번으로 근로 모드와 오락 모드를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디지털 시대에 놀이와 노동이 얼마나 근접했는지는 오락용이자 동시에 훈련용인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를 보면 알 수 있다"라며 "게임이 아닌 영역에 게임의 전략과 사고를 적용하는 게임화는 일반적 변화의 부분적인 양상에 불과하다. 진정한 의미의 게임화는 게임 전략의 의식적인 활용이 아니라 일상에서 일어나는 게임 논리의 무의식적 활용에 있는지도 모른다고"말했다.
그의 이야기처럼 현재 우리 시대에는 다양한 문화 현상의 바탕에 현실을 놀이와 중첩시키려는 대중의 욕망이 반영되고 있다. 과거에는 스타를 데뷔시켜 결과만 보여주면 끝이었을 것에 불과했던 오디션에 서바이벌 게임 형식의 포멧을 도입한 슈퍼스타 K 등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정치권에서 유권자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이미 게임의 논리를 적용시키고 있으며, 촛불집회 등이 보여주는 것처럼 유권자들 스스로 거대한 MMORPG 같은 정치적 행동을 조직하기도 한다. 경제계에서도 소비자의 충성을 끌어내기 위해 멤버십 등급을 도입하는 등 게임의 전략을 동원하고 있음은 설명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게임화가 의식되지 않은 채 우리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것이다.
진 교수는 이어 "과거 장인의 산물에 불과했던 회화가 르네상스 시대에 예술의 반열에 오르고 오락에 불과했던 영화가 하나의 새로운 예술장르로 인정 받은 것처럼, 게임 역시 머지않아 오락과 스포츠의 면모를 가진 예술 장르로 여겨질 것"이라며 "사진과 영화라는 복제매체가 시각문화를 주도해 왔다면, 21세기에는 컴퓨터 게임이 시각문화를 지배할 것이다. 20세기의 예술이 사진과 영화의 논리를 받아 들여야 한 것처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려는 기존 세대와 달리 적극적으로 서사를 직접 창조하고 달려들어 조작하려드는 21세기에는 모든 예술이 어떤 식으로든 게임의 논리를 제 안에 받아들이도록 요구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 교수의 발표 이후에는 건국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하지현 교수와 블루클라우드의 정상권 본부장이 참여한 좌담도 이어졌다. 진행은 에디토이 김국현 대표가 맡았다.
좌담회에서는 게임화는 물론 우리 게임 산업 전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으며, 특히 사회의 부정적인 시각으로 곤경에 처한 게임 산업의 현황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기능성 게임을 주로 개발하는 블루클라우드의 정상권 본부장은 "해외의 경우 부모와 아이가 함께 즐기는 문화가 잘 발달되어 있고, 게임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콘솔의 경우 방이 아니라 거실에 위치한다. 즉, 부모가 함께 즐기고 놀아주는 분위기인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부모가 자녀를 통제하려고만 한다"라며 부모의 역할을 꼬집었다.
정 본부장은 이어 "사회의 부정적인 시각 정부의 압박 등에서도 다른 산업보다 많은 해외 매출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 마치 나라의 도움 없이 전투에서 연이어 승리했던 이순신에 견줄 만하다"라며 "과연 게임이 문제인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현 교수는 "과거 비행 청소년의 문제가 상당했으나, 최근에는 문제가 있는 아이들과 어울려 비행을 저지를 시간에 게임을 즐기기에 게임이 일종의 방파제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라며 "게임은 이미 과거 농구나 축구를 하면서 뛰놀던 놀이 문화가 됐다.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핵심이다"라고 말했다.
하 교수는 이어 "과거 문제로 삼아 관리하려고 했던 게임을 즐기던 아이들은 이미 성인이 됐고, 게임을 직접 즐기던 세대들이 부모가 됐다. 이제는 여가부 등이 관리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이미 모 게임의 경우 오후 3시와 9시에 접속자 수가 피크를 기록하는 등 확실한 관리 체계 아래에서 게임을 잘 즐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게임 업계도 이러한 팩트를 기준으로 이야기를 펼쳐 자기주장을 해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진중권 교수는 "굳이 게임이 자기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서 예술을 추구하거나 할 필요는 없다. 게임을 보고 평가하는 비평의 문화가 있어야 한다"라며 "수동적인 게임에 대한 자세보다 아이들에게 직접 게임을 개발할 수 있는 간단한 코딩 교육 등을 실시해 적극적으로 게임에 다가가고 비평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인식 전환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한편 진 교수는 이날 게임업계가 중독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공세를 펼쳐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예전의 동성애 문제도 기독교, 철학자, 의학자 등으로 그 이권에 따라 흐름이 흘러갔다. 의학자들의 경우로 예를 들면 병으로 인정 받아야 이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라며 "현재 게임의 경우도 부모가 부모 역할을 해야 하는데 맞벌이 등으로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상황 등 큰 문제를 모두 뜯어 고칠 수 없어, 쉬운 게임을 두고 이러한 상황이 진행되는 것이다. 게임업계는 적극적으로 공세를 펼쳐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