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준의 게임 히스토리] 그리운 옛날… 국내 패키지 게임의 전성기 90년대

얼마 전 MBC의 간판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방영된 ‘토요일토요일은가수다’(토토가)의 여운이 이어지고 있다. 90년대 당시 가요프로그램의 메인을 장식했던 내로라 하는 가수들이 총출동해 당시 히트곡들을 선보인 토토가 덕에 각종 음원순위 차트에는 과거의 히트곡들이 다시 상위권에 오르는 등 그야말로 엄청난 후폭풍에 휩싸여 있다.

창세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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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가’가 이처럼 큰 화제가 된 이유 중 하나는 반복적인 후크송과 걸그룹 위주의 현재 가요계의 분위기에 싫증을 느끼는 대중이 늘어난 탓도 있지만, 90년대 히트곡들이 과거의 추억과 향수를 되살려 주는 촉매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젊은 ‘X세대’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놀이터와 학원이 공존하며, TV에서 방영해 주는 만화를 보며 꿈을 키우던 ‘그때 그 시절’을 말이다.

2014년 문화 콘텐츠 수출 1위에 빛나는 게임 산업 역시 90년대부터 그 초석을 닦기 시작했다. 컴퓨터도 흔히 않았던 시절, 당시 게이머들이라면 누구나 용돈을 모아 용산이나 게임매장으로 달려간 경험이 있을 만큼 90년대는 패키지 게임이 전성기를 이루던 시대였다. 특히, 액션, RPG 리듬액션, 레이싱, 대전격투에 이르기까지 지금도 명작으로 회자되는 국산 패키지게임이 무수히 등장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격동의 90년대 청춘을 보낸 게이머들의 ‘그 때 그 시절’에는 과연 어떤 게임이 있었을까?

90년대 국내 패키지게임의 전성기는 1992년 소프트액션 출시한 ‘폭스레인저’로부터 시작된다. ‘폭스레인저’는 외산 게임이 점령한 90년대에 무려 1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리며, 최초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뒀으며, 한국에도 게임을 개발하는 회사가 있음을 널리 알린 기념비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특수코드를 삽입해 지금까지 이어지는 불법복제와의 전쟁을 시작한 게임으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1992년은 여러모로 게임산업에 의미가 있던 해였다. 수많은 명작 게임들을 개발 및 유통한 제우미디어가 창립되었으며, 게임에 여성을 끌어들이는 것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막고야의 ‘세균전’, 패밀리 프로덕션의 액션게임 '복수무정' 역시 같은 해 출시 됐다. 1년에 1~2개 보기도 힘들었던 국산 게임들이 다수의 작품으로 게이머들게 다가온 것이다.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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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조금씩 성장을 이어가던 국내 게임산업은 1994년 큰 변화를 겪는다. 바로 당시 블록버스터라고 할 수 있는 RPG 장르에서 국내 게임으로는 최초의 성공을 거둔 ‘어스토니시아 스토리’가 출시된 것.

손노리에서 개발한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는 국산 RPG 게임으로는 처음 1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언어의 장벽 때문에 일부 마니아들의 전유물로 알려졌던 RPG의 대중화를 이끈 작품이기도 했다. 특히, 액션 혹은 아케이드에 머물러 있던 국내 게임산업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으며, 투자사와 개발사, 퍼블리셔가 함께하는 지금의 게임 개발 구조의 기틀을 잡았다는 점에서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는 여러 모로 큰 의미를 남긴 게임으로 남았다.

달려라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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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에서 방영한 게임 방송 ‘달려라 코바’가 방영된 것도 이때였다. 시청자들과 전화통화로 게임을 진행하는 ‘달려라 코바’는 총 12종에 달하는 다양한 게임을 전화 버튼을 눌러 진행되는 독특한 플레이로 전화가 마비될 정도로 많은 어린이들이 몰려들어 방송 출연이 ‘하늘의 별따기’일 정도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달려라 코바’가 황금 시간대로 불리는 6시~7시에 진행됐다는 것으로,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게임 방송이 ‘그 때 그 시절'에는 엄청난 인기를 얻었던 셈이다.

창세기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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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995년 국산 패키지 산업에 큰 족적을 남긴 시리즈가 등장한다. 바로 소프트맥스의 ‘창세기전’이 출시된 것. 20대가 넘은 게이머들에게 지금도 많은 이들의 명작으로 회자되는 창세기전은 일본의 SRPG 방식의 게임 플레이와 함께 당대 최고의 만화가였던 ‘김진’ 작가를 통해 만들어진 매력적인 캐릭터, 조합을 통해 구성할 수 있는 마법 시스템 등 블록버스터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 정도의 게임이었다.

당시 만연한 불법복제 덕에 엄청난 흥행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CD-ROM에 ‘3만장 돌파 기념’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을 만큼 많은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다. 특히, 1996년 등장한 창세기전2에서는 거대한 세계관과 ‘흑태자’라는 국내 게임의 전후무후한 캐릭터를 탄생시키며, 7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국내에 판타지 열풍을 불러일으키는 등의 족적을 남기기도 했다.

이후 성장을 거듭하던 국내 게임 산업은 1997년 워크래프트의 출시 이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이른바 RTS 게임이 중심 장르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HQ team에서 개발한 임진록이 그 대표적인 예.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임진록은 조선과 일본군 과의 전투와 함께 탱크, 비행기 등의 상상력 넘치는 유닛이 등장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임진록은 무려 3개 이상의 게임잡지에서 번들로 제공될 만큼 큰 인기를 얻었으며, 이후 ‘조선의 반격’이라는 후속작을 낼 정도로 많은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1998년 이후 국내 패키지 게임 산업은 급격히 추락하기 시작한다. 바로 IMF 사태가 한국 경제에 큰 폭풍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굴지의 기업들도 무너지는 IMF 사태에 이제 막 성장을 이루고 있던 패키지 게임 산업은 하루아침에 줄 도산을 맞게 되었으며, 몇몇 유명 게임 개발사를 제외한 나머지 게임 개발사들은 자취를 감췄다. 와레즈 등의 불법복제를 통한 수익 약화라는 고질병을 앓고 있던 패키지 게임 시장이 치명타를 맞게 된 것이다.

화이트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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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게임사들은 보다 높은 수익과 안정적인 서비스를 이어갈 수 있는 온라인게임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90년대 패키지게임 시장은 그렇게 서서히 끝나갔다. 이후 2000년대 들어 소프트맥스의 ‘마그나카르타’, 손노리의 ‘악튜러스’가 출시됐지만, 이미 온라인으로 재편된 국내 게임산업의 방향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리고 2001년. 마지막 블록버스터 게임 ‘화이트데이’의 출시를 끝으로 국내 패키지 시장의 시대는 그 화려한 막을 내리고 말았다.

위에서 언급한 게임 이외에도 90년대 국내 패키지 게임 시장에는 장르로 형태도 다양한 수많은 게임들이 등장했다. 비록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불편하고 단점도 많았지만, 게이머들은 이 게임을 통해 웃고 즐기며 자신만의 추억을 쌓아 나갔다. 언제 어디서나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된 지금과 당시 디스크를 바꿔가며 게임을 설치하던 90년대. 몸은 편해 졌지만, 마음은 오히려 그 때를 향하고 있는 것은 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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