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준의 게임 히스토리] 소규모 유통사에서 유럽 최대의 게임사로, 유비소프트

1986년 제 13회 멕시코 월드컵과 역사상 가장 큰 원자력 사고인 체르노빌 사태 그리고 86 아시안 게임이 한국에서 개최된 해. 프랑스의 조그만 도시 모르비앙에서 아버지의 가게를 물려받은 다섯 형제가 해외 게임을 수입해 판매하는 소규모 유통사를 창립했다. 그 회사의 이름은 유비소프트. 독일, 일본, 한국 심지어 중국에까지 전세계 각국에 약 9천 여명의 직원을 거느리며 유럽 최대의 게임사로 군림하고 있는 유비소프트의 시작이었다.

유비소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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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쌔신크리드, 마이트앤매직, 파크라이, 레이맨, 저스트댄스, 레인보우식스, 페르시아의 왕자 등 유비소프트가 지닌 프랜차이즈 시리즈는 매 게임마다 올해의 게임상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전세계 게이머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애플의 이사였던 ‘트립 호킨스’가 창립한 ‘일렉트로닉 아츠’(EA)나 한때 세계 최고의 게임회사로 불리던 아타리의 경영진이었던 ‘엘런 밀러’가 만든 액티비전과 달리 유비소프트는 IT업계와 큰 인연이 없던 소규모 게임 유통사로 시작됐다.

수 많은 하드웨어들이 경쟁을 벌이던 시기를 지나 PC와 게임기가 거대 회사들의 규격아래 통일되던 1980년대 후반. 길모트가의 다섯 형제는 하드웨어의 규격이 일정해짐에 따라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 높아질 것을 꿰뚫어 보고 본격적으로 해외 게임을 프랑스에 유통하는 퍼블리싱 사업에 뛰어들었다.

단순히 수익을 내는 것을 넘어 더 영향력 있는 작품을 유통하기 위해 노력한 그들은, 심시티를 개발한 EA, 시드마이어의 문명을 개발한 ‘마이크로소프트’, 미스터리 하우스, 킹스퀘스트의 개발사 ‘시에라 소프트’ 등 당대 최고의 게임사들과 계약을 성사시키며 점차 회사의 규모를 늘려나갔다.

회사를 창립한지 불과 7년만인 1993년. 유비소프트는 이미 미국, 영국 등에 지사를 지닌 프랑스 최대의 게임 유통 업체로 성장했고, 이를 바탕으로 전세계 각국에 게임 스튜디오를 창립하며 게임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레이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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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유비소프트를 있게 한 게임이자 공식 마스코트 ‘레이맨’이 개발된 때가 바로 이 시기다. 1995년 그래픽 아티스트 미셸 앙셀에 의해 개발된 ‘레이맨’은 수려한 그래픽과 함께 등장하는 익살스러운 캐릭터, 오묘한 난이도를 지닌 뛰어난 맵 구성을 통해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유럽의 마리오’로 불릴 정도로 큰 흥행을 거뒀다.

이후 1996년 주식 상장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거둔 유비소프트는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캐나다, 모로코, 스페인 그리고 중국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게임 스튜디오를 설립해 전세계에 자신들의 네트워크 환경을 구축했다. 한국에 유비소프트 지사가 설립된 것도 바로 이때로 2002년 한국 지사 설립과 인트라게임즈, 블루인터렉티브 등의 유통사가 함께 다수의 프랜차이즈 게임을 꾸준히 한글화를 통해 선보여 국내 게이머들에게 큰 사랑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엄청난 성장을 거듭한 유비소프트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거둔 막대한 수익만큼의 투자를 진행해 미래에 대한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바로 게임사들의 적극적인 인수와 합병을 통해 유명 게임시리즈를 자신들의 산하로 두기 시작한 것이다. 2000년 유명 밀리터리 소설의 작가 톰클랜시가 창립한 게임 개발사 레드스톰을 인수하고 톰클랜시 소설의 게임판권을 따낸 것을 비롯해 수 많은 명작 시리즈를 지닌 ‘THQ’, 미스트, 페르시아의 왕자의 개발판권을 지닌 ‘러닝 컴퍼니’의 게임지부를 거액에 인수하는 등 역량강화를 위한 아낌없는 투자를 계속했다.

유비소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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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적극적인 인수는 곧 전세계에 퍼져있는 자신들의 게임 스튜디오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형제들이 창립한 회사인 만큼 유비소프트는 다른 게임사들 보다 계약관계보다는 끈끈한 유대감을 중요시하는 풍토가 있었고, 이 같은 분위기는 외부에서 영입된 수 많은 게임개발자들이 자연스럽게 스튜디오에서 역량을 펼칠 수 있게 됨으로써 큰 시너지 효과로 나타났다.

특히, 망해가는 회사를 떠안아 기업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덩치 키우기’ 식의 계약이 아닌 게임판권을 지닌 스튜디오만을 인수하여 자신들의 영향권에 두거나, 게임 시리즈의 판권 계약 혹은 게임 개발권을 사들여 자사의 스튜디오에서 개발을 진행하는 등의 ‘알짜’ 계약을 이어갔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이를 통해 유비소프트는 전세계 수 십개의 개발 스튜디오를 지니고도 게임 개발에 대한 모든 권한을 본사에 집중시킬 수 있었고, 거대한 조직을 지닌 게임사에서 흔히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인 프랜차이즈 게임의 이미지 훼손과 수준 이하의 게임 출시 등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수 많은 프랜차이즈를 거느리고도 계속해서 참신한 신작을 선보이는 유비소프트의 힘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지난 2008~2009년 1억 2천만 유로(한화 약 1,504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전세계의 내로라하는 게임사 중에서도 눈부신 성장을 기록한 유비소프트. 하지만 콘솔, PC분야의 엄청난 성공에 비해 유독 온라인 분야에서는 재미를 보지 못했다.

유비소프트는 2000년대부터 자체 스튜디오를 통해 ‘우루: 에이지 오브 비욘드 미스트’, ‘매트릭스 온라인’의 개발을 진행했으며, 유럽 및 중국 등지에 유명 MMORPG 에버퀘스트의 서비스를 진행했지만, 그다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특히, 자사의 스튜디오에서 맡은 온라인게임 프로젝트 중 대다수가 개발 중단되기도 하는 등 온라인게임 시장을 사실상 포기하는 단계에 이르기도 했다.

유비소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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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소프트의 게임 다운로드 서비스 플랫폼(ESD) ‘유플레이’ 역시 이와 비슷한 모습이다. 지난 2009년 어쌔신크리드2의 출시와 함께 본격적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유플레이’는 유비소프트에서 출시한 게임과 연동을 통해 게임 콘텐츠를 다운받고, 각종 추가 업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업계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오프라인에서는 게임을 즐길 수 없는 불편한 게임 플레이 환경을 조성했으며, 스팀, 오리진 등의 다른 회사의 ‘ESD’와 연동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아 게이머들이 피해를 보기도 했다. 더욱이 느린 네트워크 환경과 불안한 클라우드 서비스 환경으로 동기화가 삭제되어 세이브 파일이 없어지는 등의 각종 버그도 ‘유플레이’의 악평에 일조했다.

특히, 지난 2012 한 보안전문가에 의해 해킹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한차례 홍력을 치르기도 하는 등 ‘유플레이’는 EA의 ESD 오리진과 끝없이 비교되며, 유비소프트의 안티를 형성하는데 많은 공(?)을 세웠다. 비록 계속된 개선작업과 업데이트를 통해 불편함이 많이 개선되었음에도 말이다.

이처럼 유비소프트는 소규모 유통사부터 거대 게임사로 성장하기 까지 끝없이 자신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좋은 게임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게임에 대한 열정과 미래에 대한 끊임없는 투자 그리고 보여주기 식이 아닌 오로지 성장을 위한 기업의 확장까지. 어찌 보면 하나의 산업이 가야할 정석을 걷고 있는 유비소프트의 모습이 극심한 성장통에 시달리고 있는 지금의 국내 게임사들에게도 꼭 필요한 요소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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