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준 기자의 놈놈놈] 쉔무3와 킥스타터 편

20세기의 마지막 해였던 1999년은 한 세기를 마무리한다는 점 이외에도 여러모로 기념비적인 해로 기억에 남아있다. 이제는 언급조차 뜸해진 이름인 노스트라다무스가 지구의 멸망이 다가올 것이라고 예언대로 전세계적으로 종말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기도 했고, 개그콘서트가 처음으로 방송을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세기말의 기운을 받은 것인지 프로야구팀 한화 이글스가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게임 쪽에도 나름대로 의의를 지니고 있는 해이기도 한데, 한때 국민게임으로 불리기도 했던 포트리스2가 출시된 년도이기도 하며, 스타리그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프로게이머 코리아 오픈이 막을 올린 것이 1999년이다.

1999년에는 게임사에 이름을 남긴 게임들이 두루두루 출시되기도 했다. 세가가 출시했던 쉔무는 그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족적을 남긴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버추어파이터 시리즈의 아버지라 불리는 스즈키 유가 기획한 이 작품은 700억 원이라는 방대한 개발비와 F.R.E.E. 장르를 주창하면서 많은 이들의 기대를 남기기도 했다.

조영준 기자(이하 편드는 놈): 뜬금 없이 쉔무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뭔가요. 16년이나 된 게임인데요.
조광민 기자(이하 말리는 놈): 얼마전 막을 내린 E3 2015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게임이니 언급하는 것도 무리는 없어 보이네요. 이 이야기 때문에 전세계 게임업계가 한동안 들썩거리기도 했구요.

김한준 기자(이하 까는 놈): 반갑다 아니다를 떠나서 나는 이번 E3 2015에서 쉔무3 소식이 가장 놀랍더라. 솔직히 파이널판타지7 리메이크는 ‘스퀘어에닉스가 돈 떨어지면 언젠가는 하겠거니…’ 하고 확신을 하고 있던 상황이라 놀라울 건 없었는데, 쉔무3가 E3 현장에서 언급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거든.

편드는 놈: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요?
까는 놈: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살아서 네 앞에 오면 안 놀랄 거 같아? 난 이 게임 시리즈가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진 줄 알았거든. 이제 와서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시리즈의 명맥이 이어질 것이라는 징후도 없었으니 놀랄 수 밖에 없지.

쉔무3
쉔무3

말리는 놈: 게임의 출시 소식도 아니고, 단순히 킥스타터 모금으로 게임을 개발하겠다는 소식을 알린 것에 불과하지만 반응은 뜨거웠어요.
편드는 놈: 200만 달러를 모금하겠다고 이야기 했는데 반나절만에 모금액을 달성했어요. 역대 가장 빠른 비디오게임 크라우드 펀딩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라갔다고 하네요.

까는 놈: 뭐. 기네스 북 소식은 관심 없어. 소니도, 스즈키 유도 관심 없을걸? 애초에 기네스북에 이름 올리려고 킥스타터 시작한다고 알린 것도 아닐테고. 나는 사실 쉔무3 킥스타터 관련 소식이 그다지 반갑지만은 않다.

편드는 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고 있는데… 또 반골 기질 드러냅니까? 남들 좋아하면 괜히 싫어하고…

까는 놈: 아니. 애초에 쉔무라는 작품이 긴 세월을 돌아서 개발을 재개한다는 소식만으로 이렇게 화재가 될만한 작품인지도 모르겠고, 애초에 킥스타터에 어울리는 작품인지도 모르겠어. 근거도 취지도 빈약하다고 밖에는 안 느껴져.

말리는 놈: 쉔무 정도면 게임사에 족적 하나는 뚜렷하게 남긴 게임 아닌가요? 화제가 되는 것도 당연하다고 보입니다.

까는 놈: 족적이라는 건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야. 그 족적이 어디에 남았냐가 중요한 것이지. 헐리우드 길거리에 남은 족적과, 동네 빌라 주차장 시멘트 양생하는 곳에 남은 족적의 가치는 분명히 다르다고. 사실 쉔무의 족적은 게임사의 빛나는 페이지보다는 어두운 페이지에 뚜렷하게 남아 있어.
편드는 놈: 오픈월드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다양한 모션캡쳐를 통한 사실적인 동작을 구현한 게임인데요? 거기에 NPC들은 모두 각자의 목소리를 지니고 있고, 게임 내의 시간이 실시간으로 흐른다는 점도 인상적이었어요.

까는 놈: 그런 것을 개발하는데 700억 원이나 썼지. 그런 점 자체를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이 게임은 그 당시 기준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실망을 안겨줬던 게임이야. 물론 좋아하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애초에 세가가 주장한 F.R.E.E.라는 장르에서 기대되는 자유도는 예상보다 낮은 수준이었어. 그냥 마을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고, 거기에 서브 퀘스트가 당시 기준으로는 다양하게 등장하는 정도?

게다가 판매량 자체가 나빴던 것은 개발비가 말도 안 되게 많이 들어가는 바람에 제작비 회수도 못 해서 드림캐스트의 종말을 알린 게임인데. 1999년에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종말은 세계의 종말이 아니라 드림캐스트의 종말이었다고.

쉔무3가 어떤 형태로 나올 것인지는 모르지만, 과거의 모습으로 비춰본다면 신작을 크게 기대할만한 게임은 아니야. 쉔무의 완성형을 즐기려면 그냥 ‘용과 같이’를 하는 게 나을 껄? 액션 비중을 높여서 그렇지 쉔무의 틀 위에서 완성된 게임이니까.

말리는 놈: 게임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큰 의미는 없을 것 같네요. 쉔무 1, 2는 이미 오래 전에 나온 게임이고, 쉔무3은 아직 나오지도 않은 게임이니까요. 어떤 형태로 나올 것인지도 모를 일이구요. 게임 자체의 이야기보다는 킥스타터 형태로 대작 게임의 개발이 착수된다는 사례 자체가 화제가 되는 게 맞다고 봅니다.

편드는 놈: 소규모 게임에만 적용되는 이미지가 강한 킥스타터의 이미지가 달라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대작 게임을 만드는 이들에겐 개발비를 충당할 수 있는 새로운 루트가 열리는 것일 수도 있겠죠.

까는 놈: 난 킥스타터 형태로 개발이 언급된다는 것 자체에도 부정적이야. 이렇게 말하면 또 매사에 부정적이라고 말하겠지만…
편드는 놈: 늘 부정적입니다.
말리는 놈: 언제나 부정적이에요.

까는 놈: E3 2015는 발표를 하는 자리지 후원을 요구하는 자리가 아니라고. 실제로 이 소식을 접한 이들 중에 적지 않은 수가 E3 2015 현장에 구걸하러 왔냐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아. 게다가 킥스타터로 모금된 금액과는 별개로 소니와 공동으로 게임을 개발한다며? 그럴거면 킥스타터 모금을 뭐하러 해.

편드는 놈: 애초에 쉔무3라고 공개된 영상이 최근 게임에 비하면 품질이 좋은 편이 아니긴 했어요. 그런데 그런 걸 보고도 사람들이 투자를 한다는 건 그 정도로 이 게임이 마무리 되기를 바라는 이들이 많다는 거 아닐까요?

까는 놈: 이런 식의 킥스타터 모금이 문제가 되는 건 대형 개발사들이 자기들의 리스크를 줄이는 형태로 킥스타터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야. 게임 어정쩡하게 만들어놓고 ‘펀딩이 충분히 안 되서 그랬다’라고 말할 수 있는 여지도 생길 수 있고. 이번 쉔무3 킥스타터도 200만 달러 모금이 됐음에도 ‘이 금액으로는 기본 스토리 밖에 못 만든다’라고 말을 하잖아.

쉔무3
쉔무3

모양새도 영 좋지 않았어. 마치 소니와 쉔무3 개발을 논의하던 중에 쉔무3가 아직도 이 정도 시장가치는 가지고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킥스타터 현장 펀딩을 시작한 걸로 보여. ‘봐라! 이 정도 모이지 않느냐! 안심하고 우리에게 투자해라!’ 라는 식으로 말이야. 애초에 소니하고 공동으로 개발을 하는데 킥스타터 모금을 할 이유가 없잖아.

말리는 놈: 뭐 현장에서 간 보는 용도로 킥스타터를 공개했다는 것은 억측으로 보이기도 합니다만… 개발사들이 악용할 여지가 있다는 의견은 공감이 가네요.

까는 놈: 킥스타터의 문제는 투자자들에게 어떤 결과가 돌아올 것이라는 건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투자가 이뤄진다는 거야. 기껏 투자 했더니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물이 나오는 사례가 좀 많아야지. ‘공수표를 남발한다’고 하는데 킥스타터를 통해 대작을 만드는 것, 특히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형태의 게임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공수표 남발일 뿐이야.

편드는 놈: 이번 사례를 통해 그런 예상을 하는 건 좀 과한 면이 있어요. 애초에 쉔무3 개발은 팬 서비스 측면이 강하다고 보입니다. 그리고 쉔무3에 관심이 없으면 펀딩을 안 하면 그만이기도 해요. 결과물이 나오면 완성도에 대한 비판은 그때 가서 하면 될 일이구요.

까는 놈: 투자 사례가 좋지 않게 끝나면 해당 산업군의 투자 심리가 위축되는 경향은 얼마든지 있는데… 과연 그게 쉔무3의 킥스타터 펀딩이라는 그들만의 리그라고 해서, 쉔무3만의 사례로 끝날까? 가뜩이나 킥스타터로 대변되는 크라우드 펀딩에 대한 비관론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사례가 더해지면 소규모 개발자들도 킥스타터를 통한 자금 확보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

말리는 놈: 뚜껑은 열어봐야 아는 것이니 벌써부터 왈가왈부 할 필요는 없습니다. 진정하세요.

까는 놈: 네가 그렇게 말하면 우리가 꼭 화나서 싸운 것처럼 보이잖아. 뭐… 광민이 말처럼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쉔무 1, 2가 기대에 못 미치는 모습이었고, 킥스타터를 통해 개발되는 게임들의 완성도가 실망스러운 사례도 왕왕 나오고 있으니 괜히 불안하네.

편드는 놈: 이러니 저러니 해도 선배도 쉔무3에 기대를 아예 안 하는 건 아닌 거 같네요.
까는 놈: 당연하지. 내 10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게임이었는데… 게이머들도 추억을 먹고 사는 존재야. 그 추억이 더럽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건 당연한 거 아니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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