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게임관련 정부지원사업, 성적좋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다

"게임 정부지원사업이요? 하하 거길 왜 들어갑니까. 너무 까다로워서 안하고 말지요."

어느 한 중견 게임업체와의 저녁자리. 견실한 실적을 내고 있는 이 회사 임원에게 정부지원사업에 응모하지 않겠냐고 물어보니 '그런 건 하는 게 아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상해서 다른 업체들에게도 전화를 돌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실력있고 견실하다고 알려진 업체들은 대부분 정부지원사업과 관련되어 긍정적인 메시지를 던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피했다.

매년 게임 진흥과 관련된 정부 예산은 늘어만 가는데, 이렇듯 우수한 게임업체들은 정부지원사업을 기피하는 현상. 국내의 게임 정부지원사업이 무언가 잘 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현상이었다.

현재 국내에는 많은 진흥 기관이 있으며, 게임 관련 예산 역시 매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경기콘텐츠진흥원, SBA와 같은 진흥기관부터 대구, 광주, 부산 등 지자체에서도 상당히 많은 지원 예산을 할애하고 있는 것. 하지만 '만족할 만한' 성과를 만들어냈다는 얘기는 좀처럼 들려오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이유는 명확했다.

"쓸데없이 요청하는 게 너무 많습니다. 저도 한 번 해봤는데 문서 만드느라 며칠 밤을 샜어요. 참 짜증나더라구요. 그 동안에 해외 바이어들 한두 군데 더 만나고 말지..."

게임업체들은 대부분 입을 모아 말했다. '게임사업 외적으로 주문하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 그리고 '일정 연장이 안되어 고퀄리티 제품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 '돈을 과도하게 묶어놔야 하는 것' 이 세가지가 가장 큰 문제라고.

실제로 정부지원사업에 응모한 게임업체들을 조사해보니, 진흥기관에서 요구하는 문서는 게임업체가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제대로 정부지원금을 썼는지 확인하는 내용부터 대부분의 검증 과정을 세밀하게 기록해야하다보니 아예 인력을 한 명 붙여야 하는 수준이었다.

개발 좀 수월하게 해보려고 응모했건만 개발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작업들이 더 많은 지원사업. 게다가 매년 문서 작업량은 늘어만 갔고, 그렇게 정부지원사업이 까탈스럽다고 소문이 나면서 실력있는 회사들은 대부분 기피하는 모습을 보이게 됐다는 것이다.

빡빡한 일정도 문제였다. 보통 게임산업은 다른 산업군과 다르게 게임의 담금질에 대한 시간이 충분히 주어져야 하는데, 정부사업의 경우 기간에 대한 유예가 전혀 없었다. 때문에 사업 담당자들이 '기한을 못지키면 돈을 다 토해내야 한다'고 압박하기 마련이었고, 지원 업체의 경우 퀄리티는 어떻든 출시 일정을 만드는데 주력하다 보니 경쟁력 있는 게임 개발이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또한 일부 사업 담당자들이 개발사들에게 '매주 진행상황을 검사를 맡으라는 둥' 더 세게 압박을 가하면서 더 큰 불협화음을 야기하는 것도 현재의 큰 문제점으로 파악됐다.

자금 부분 역시 문제였다. 지원금을 지원해준다고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자금을 별도의 통장에 묶어놔야하는 경우도 많았다. 1억 원을 지원하는 지원사업인데 별도의 자사 부담금 5천만 원을 미리 통장에 묶어놔야 한다는지 해서, 오히려 개발사 자금난을 야기하는 경우가 있었다. 여기에 보증보험 등도 개발사 부담을 가중하는 요소로 지적됐다.

특히 직접 인건비 지원이 아니라 마케팅 등 간접 지원으로 바뀐 것이 게임업체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가 많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실력있는 게임 개발사들은 정부지원 사업을 찾는 게 아니라 민간 자금이나 투자를 찾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었다. VC들이나 퍼블리셔 위주로 찾아나가고, 정부지원사업은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거나 문서 작업에 특화된 업체들 위주로 응모가 몰리다 보니 오히려 더 성과가 나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물론 지원기관 측의 의견도 일리는 있었다. 매년 지원사업을 진행하면서 생겨난 여러 문제점을 보완하려다 보니 조금씩 업체에 요구하는 것들이 늘어날 수 밖에 없었다는 것. 소중한 세금을 낭비하지 않기 위한 방책을 추가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10여년 넘게 조금씩 규칙을 추가하다보니 현재처럼 문서의 요구량도 늘어나고 자금 운용 규칙도 복잡해질 수 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지원금 누출을 위한 방비책 추가'나 책임면피성 보완책 보다 제대로 업계를 지원하기 위해 '게임 개발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 구축'이 최선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양질의 개발사들이 정말로 혜택을 보고 글로벌 시장에서 강점을 가질 수 있도록 국내의 진흥 기관들이 지원사업 정책을 근본부터 뜯어고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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