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질병의 시대 ③] 게임, 국내 질병코드 등재 후 어떤 일이 생길까

< 지난 5월2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 72차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 총회에서 게임이용장애가 포함된 ICD-11(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게임의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도 지난 2016년에 이미 게임중독의 질병코드화 계획을 포함한 '정신건강 종합대책'을 발표했고, 보건복지부 장관 또한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WHO가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를 최종 확정하면 받아들이겠다'고 밝힌 만큼 게임업계는 사면초가에 몰려있는 상황이다. 다가온 게임 질병의 시대, 국내 게임산업계는 어떻게 대응해야하고 사회적 합의는 어떻게 이뤄져야할까. 본지에서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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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로고
WHO 로고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 72차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 총회의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인 ICD-11.

게임이용 장애는 이 ICD-11에 질병코드 '6C51'로 등록되어 있으며, 6C51에서는 '개인, 가족 사회, 교육, 직업 또는 기타 중요한 기능 영역에서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정도로 심각하고, 이러한 게임 행동 양식이 최소 12개월 동안 분명하게 나타나는 경우'로 게임 질병을 정의하고 있다.

WHO ICD-11 소개
WHO ICD-11 소개

WHO는 현재 194개의 회원국들에게 2022년 1월부터 효력이 발생하도록 하고 있지만, 한국은 이 ICD-11를 그대로 적용하지 않고 KCD(Korean Standard Classification of Diseases, 한국표준질병)라는 독자 기준에 따라 적용 여부를 정하고 있다.

이 KCD는 5년에 한 번씩 개정되며, WHO의 코드 발효가 오는 2022년이기 때문에 국내는 3년 뒤인 2025년에 적용될 것으로 예측된다. 그동안 단 한 번도 특정 질병 코드가 적용되지 않은 사례가 없었고, 보건복지부 측에서도 이미 이 코드를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밝힌만큼 2025년에는 정식으로 KCD에 게임이용 장애가 등록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 게임=질병 낙인으로 인한 '게임세' 가능성>
국내 질병코드 등재 후 가장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사항은 바로 '게임세'다. 게임이 '사회에 해악이 되는 질병'으로 규정된 만큼 합당한 부담금을 부과해야한다는 논리다.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게임 이용장애가 질병으로 인정될 경우 합법적인 게임물에도 부담금관리법 제3조 및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법 제2조 및 제14조의2 법 개정을 통해 예방, 치유와 센터 운영 등을 이유로 부담금, 수수료 등이 부과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 6월 25일에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공대위는 '중독세 부가' 가능성과 관련된 자문변호사의 답변을 공개했는데, 이 답변서에 따르면 현행 부담금관리 기본법 및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법상 카지노업, 경마, 경륜·경정, 복권 등의 사행산업 또는 사행성 게임물 서비스 등의 불법사행산업으로 인한 중독 및 도박 문제의 예방·치유와 센터의 운영을 위해 관련 사업자의 연간 순매출액의 0.5% 이하 범위에서 부담금을 부과·징수할 수 있다고 되어있다.

게임 규제 법안
게임 규제 법안

실제로 이같은 가능성은 지난 2013년부터 꾸준히 '게임세'를 징수하려는 정부의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에 새누리당 비례대표였던 손인춘 의원이 게임 매출의 1%를 부담금으로 징수하는 법안을 발의한바 있으며, 같은 당 신의진 의원 또한 게임을 마약과 같은 선상에 놓고 치유센터 설립을 골자로 한 게임중독법을 발의해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공대위 위정현 위원장
공대위 위정현 위원장

공대위 위정현 위원장은 "당시에는 법안들이 근거가 없어 통과되지 못했으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가 등록된다면 부담금과 수수료 등을 포함한 통칭 게임세 징수법이 부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게임세는 여러가지 파생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 국내 게임사들에게만 세금을 거두는 역차별 이슈 ▶ 모바일 게임 심의 부활 및 징수 이슈 ▶ 전문성 없는 치료센터 이슈 등으로, 게임업계에서는 이같은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공대위를 중심으로 관계부처, 의료계, 게임계 등이 참여하는 중립적인 민관협의체를 구성하여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 게임하면 정신병자? 사회적 낙인효과 '심각할 것'>
WHO에서는 '게임' 자체를 중독물로 보고 있지 않고, 게임코드를 '12개월 이상 장애가 생길 경우'에 한정했지만 국내 실정은 그렇지 않다. WHO가 질병코드를 발급하기 전부터 관계부처에서는 게임의 질병화를 공식화하고 있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지난 2013년에 황우여 전 새누리당 대표는 게임을 술, 도박, 마약과 함께 4대 중독물질로 규정하면서 게임에 대한 대대적인 규제의 필요성을 어필한 바 있고, 보건복지부는 '게임중독'과 관련된 지하철 광고를 단행해 게임업계 및 문화체육관광부와 갈등을 야기해왔다.

보건복지부 게임중독 광고
보건복지부 게임중독 광고

이처럼 '게임중독'에 대한 근거가 없었을 때부터 '게임=정신병 낙인'을 찍어온 보건복지부 등에서 WHO의 질병 코드가 효력을 발휘하게 되면 본격적으로 게임에 대한 재제와 함께 사회적 낙인효과를 가중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대대적으로 게임중독 광고를 재개하고, '게임의 해악성' 알리기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게임업계에서는 특히 '정신병'이라는 부분에서 낙인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강경석 한국콘텐츠진흥원 게임본부장은 지난 6월28일에 열린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긴급토론회'에서 "만약 국내에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가 도입되면 10대 청소년 중 많은 수가 게임장애 판정을 받고 정신질환자라는 꼬리표를 달게 될 것."이라며 "이러한 꼬리표는 향후 대학 진학이나 취업 시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발표했다.

특히 강 국장은 "정신질환과 관련해 편견이 강한 우리나라의 경우 얼마나 사회에서 수용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최승우 한국게임산업협회 정책국장은 게임 질병화의 오용성이나 부작용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최 국장은 이 간담회에서 "게임이 질병화되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게임을 원인으로 돌리거나, 게임이용장애를 이유로 병역 등 사회적 의무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오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 게임 경쟁력 급감..경제적 손실 엄청나>
국내 게임업계의 위축과 한국 게임의 글로벌 경쟁력 약화도 주요 변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게임업계의 규모는 연 13조~14조원 수준이며, 지난해 우리나라의 전체 콘텐츠 수출액 중 게임은 75억 달러로 전체의 56.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방탄소년단(BTS) 등 K팝으로 대표되는 음악(6.8%)보다 8배 이상 큰 수치로, 이번 게임의 질병 코드화가 국내 콘텐츠 산업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현재 국내에는 청소년의 특정 이용시간을 제한하는 셧다운제가 운영되고 있으며, 이번 질병 코드화로 인해 각종 규제가 덧붙여질 경우 게임 산업 전반의 침체와 함께 한국 콘텐츠 산업 자체가 경쟁력을 잃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근조
근조

그 근거로 지난해 12월 한국콘텐츠진흥원에 제출한 '게임 과몰입 정책 변화에 따른 게임 산업의 경제적 효과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질병코드 도입으로 2023년부터 2025년까지 3년간 발생하는 게임산업의 경제적 위축 효과가 약 1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이 보고서에서는 "일반적으로 질병코드화 되는 질병이 특정 산업의 소비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경우 해당 산업의 소비가 큰 폭으로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며 "실제 미국 담배 산업의 경우 1980년 발효된 흡연중독 질병코드화 이후 미국 담배 수요가 지속적으로 감소한 사례가 있다."고 분석했다.

게임= 중독물이라는 인식과 함께 다양한 경고 문구나 광고제한 등의 규제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보고서에서는 게임 실행 시 게임 과몰입과 관련된 경고 문구 표시, 청소년 이용 매체에서 게임 광고 제한 등의 형태로 정책이 시행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우수한 인재들이 게임업계를 기피하는 것도 중대한 피해요소가 될 전망이다. 게임의 사회적 낙인과 함께 우수한 인재 유출이 본격화되고, 이것이 게임업계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는 계산이다. 실제로 이 보고서에서는 게임산업 종사자 수는 질병코드화가 시행되지 않는 경우 2025년 3만7천673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정됐으나 질병코드화가 시행될 경우 절반 정도인 2만8천949명으로 급감할 것으로 예상했다.

< 게임 다음의 표적 논란.. 과잉 의료화 가능성도 제기>
콘텐츠 전문가들은 이러한 정부의 콘텐츠 규제 정책이 본격화되고, 게임이 그 시작점에 불과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게임의 질병화 다음으로 보건복지부의 타겟이 스마트폰과 동영상이 될 것이라는 주장으로, 게임은 예비 단계에 불과했으며 IT업계에서 더 큰 영향력을 가진 스마트폰과 동영상이 다음 타겟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위정현 공대위 위원장은 지난 6월 25일에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게임 다음에는 인터넷 동영상이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그는 "스마트폰의 사용시간이 게임 이용시간보다 훨씬 더 많다. 하지만 스마트폰 과몰입을 질병코드에 도입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들을 포함해 국민 전체가 쓰고 있기 때문."이라고 발언한 후 "게임 다음은 동영상이 표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게임과학포럼 이경민 교수
게임과학포럼 이경민 교수

또 하나 게임의 질병화 이후 의사들의 과잉 의료화에 대한 우려도 더욱 깊어지고 있다. 편리성에 의해 질병코드에 대한 과용이나 의료진의 상업주의에 의한 질병코드의 남용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대학교 인지과학연구소 소속의 이경민 교수는 "아이가 부모와의 갈등, 학업의 압박 등 사회적으로 원인이 있는 것을 '게임중독 때문'이라고 진단해버리면 부모는 가정에서의 책임이 회피되고 의사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어 서로 편해질 수 있다."며 "과잉 의료화를 경계해야한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없이 의료가 장사의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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