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반일 감정에.. 일본 콘솔 게임업계 '어이할꼬'
"일단 최대한 노출을 피하고 있습니다. 한일 관계가 조금이라도 개선되기를 바랄 뿐이죠."
다년간 국내에서 콘솔 게임을 판매중인 한 일본 게임사 직원은 용산에서 만나 근황을 묻자 최근 한국에 부는 반일감정에 '분위기가 최악'이라며 쥐죽은 듯 몸을 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한일 관계가 개선될때까지 기자간담회나 별도의 이슈를 만들지 않고 조용히 지켜볼 것이라며, 다른 일본 콘솔 게임업계 지사들 또한 대부분 상황이 비슷하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국내에 게임을 출시 중인 일본 게임사들이 반일 감정에 이은 불매운동의 불똥이 튈지 몰라 각종 행사를 취소하며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본 정부의 보복성 무역제재 조치에 의해 자신들이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일례로 세가퍼블리싱코리아는 지난 7월19일로 예정되었던 '신작 및 신유통 설명회'를 열흘 전에 전격 취소한 바 있다. 한일 간에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손실이 더 클 것 같다며 결단을 내린 것.
이 설명회에서 세가퍼블리싱코리아는 인기 액션 게임 시리즈인 '용과같이'의 최신작과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레트로 복각 게임기 '메가드라이브 미니'를 대대적으로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국내에서 당분간 홍보 활동을 자제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코나미도 상황은 비슷하다. 코나미와 협력 관계에 있는 국내 유통사 유니아나는 전통의 인기 축구 게임 '위닝일레븐'을 베이스로 e스포츠 대회를 활발히 열어오며 이후에도 다양한 홍보 행사를 가지고자 했지만 한국 제반 상황을 감안해 홍보를 잠정 중단했다.
일본계 게임사면서 국내 상장한 SNK의 경우에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반일 분위기로 인해 좋은 실적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반토막이 난 상황이다.
이처럼 일본계 게임사들 뿐만 아니라 게임 유통 쪽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서울 용산의 두꺼비 상가나 한우리 등 전문 콘솔 게임기 매장은 일본 무역 파장이 생기기 전에 비해 눈에 띄게 활기가 줄은 모습이다. 용산의 '로키죠' 아이디를 쓰는 조항찬님은 "콘솔 게임 매니아분들은 비교적 반일감정에 둔감한 측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10~15% 정도 손님이 줄은 것으로 체감된다."고 설명했다.
일본 콘솔 게임을 취급하는 전국 마트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연초만 해도 활발하게 진행됐던 닌텐도 '포켓몬' 등 활발한 고객 체험행사 등은 다 사라졌고 마트 자체의 정기 할인행사 외엔 콘솔 게임 쪽도 한산한 분위기다. 당장 오는 9월 20일에 신작 스위치를 출시할 계획인 닌텐도 또한 별다른 움직임 없이 조용히 제품만 공개하는데 그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분위기가 한일 관계 개선 전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일본에 대한 애정이 강한 매니아들이지만 정세에 따라 구입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일고 있다는 것.
국내 콘솔 게임 전문가로 알려진 윤장원 동명대 디지털 미디어 공학부 교수는 "일본 제품을 구입하면 비난하는 분위기에 편승해 SNS에서 일본 게임을 구입하는 매니아들을 비난하는 일도 잦아지고 있다."며 "한일 갈등이 무역과 안보를 넘어 게임을 비롯해 각종 민간 문화의 교류까지 단절시키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양 정부에서 적절한 해결책을 조속히 찾아내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