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을 기다린 플레비퀘스트, 단점을 덮어주는 특별한 개성
9년전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에서 전략 게임을 즐기는 마니아들을 설레게 했던 인디 게임 아미앤스트레테지 : 십자군이 드디어 약속을 지켰다.
오랜 기간 익숙해진 아미앤스트레테지: 십자군이라는 이름 대신 플레비퀘스트라는 생소한 제목으로 변경되긴 했지만, 오래 전 많은 이들을 반하게 만들었던 개성적인 그래픽과 게임성은 초창기의 반짝거림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반가운 마음이 들게 한다.
달랑 2명의 개발자로 시작한 인디 게임이 엄청난 여정을 극복하고 9년만에 결과물을 내놓았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이긴 하지만, 기획안만을 보고 선뜻 펀딩에 참여하고, 오랜 기간 기다려준 후원자들의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서는 기대에 걸맞는 게임성을 갖춰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출시 초기인 만큼 스팀 평가에 참여한 사람들이 많지는 않지만, 매우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단점을 충분히 덮고도 남을 만큼 플레비 퀘스트만의 독특한 개성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이 게임은 더 크루세이즈라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유럽 십자군 전쟁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다만, 개발진은 게임을 시작할 때 나오는 문구를 통해서 역사적인 사실은 신경쓰지 않은 허구의 이야기임을 강조하고 있다.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캐주얼한 전략 시뮬레이션을 표방하는 게임인 만큼, 사실적인 고증에 대한 부담 없이 게임을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장르에서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크루세이더즈 킹즈와 흡사한 스타일의 맵 화면 때문에 비슷한 게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플레이를 해보면 순한맛 크루세이더즈 킹즈라는 표현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전략을 단순화시켜서, 전략 게임을 한번도 즐겨보지 않은 이들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쉽고 편하다.
그래픽도 사실적인 것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 쫀득쫀득한 젤리처럼 생긴 인물들이 등장해 특유의 귀여움을 더하고 있으며, 게임 내내 “왕위를 계승하고 있습니다” “역시 이베이에서 구매한 지도로 진품을 찾는 것은 무리였나?” 등 요즘 세대들이 빵 터질만한 패러디 대사, 이른바 도그드립(?)들이 쏟아져 나와 웃음을 자아낸다. 크루세이더 킹즈를 생각하고 구입한 사람이라면 너무 깊이가 없어서 “이게 무슨 전략 게임이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실제로 게임을 시작하면 장수들을 고용하고, 부대를 육성해 다른 나라들과 영토 전쟁을 즐기는 전형적인 전략 시뮬레이션 플레이를 즐길 수 있다. 장수별로 한 턴에 한번의 행동만 할 수 있으며, 영토가 확대될수록 고용할 수 있는 장수 인원이 늘어난다.
장수들은 영토내 불만 세력을 진압하거나, 모스크에서 책 정리를 통한 연구기술 획득과 시샤 제작을 통한 자원 획득, 적과의 전쟁 등의 행동을 할 수 있으며, 전투를 통해 경험치를 쌓아 등급을 올리면 최대 5부대까지 이끌고 전투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전투는 지형지물 상관없이 모든 부대로 일렬로 늘어서 싸우는 단순한 형태다. 앞에는 근접 보병이 적의 공격을 막아내고, 후방에서 기병이나 궁병들이 지원 사격을 하는 형태이며, 도시를 공격할 경우 공성탑을 동원해 높은 곳에서 후방을 공격할 수 있다. 기병의 돌진 같은 특수 기술이나 부가 능력치를 올려주는 훈장 등이 약간의 변수를 만들 수도 있기는 하나, 대부분 부대 등급과 규모에 따라 시작부터 승패가 갈린다.
특히, 장수의 위치에 상관없이 아군 영토 어디든 바로 파견을 할 수 있으며, 적이 아군 영토를 침공해도 한턴의 준비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에, 위급한 상황에서도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돈이 없을 때는 샤일록 대부업에서 현금을 바로 땡겨주고, 병력이 없을 때는 여관에서 돈을 지불하면 한방에 만땅으로 채울 수 있다. 어차피 한 전쟁터에는 한명의 장수만 파견할 수 있기 때문에, 동시에 대군이 몰려와서 수적으로 밀리는 상황 자체가 발생하지 않으니, 다른 국가와 전쟁이 벌어져도 느긋하게 플레이를 할 수 있다.
이것만으로는 게임이 너무 단순하니, 외교와 종교라는 변수도 존재한다. 다른 국가와 친밀도를 올리면 교역과 군사동맹을 맺을 수 있으며, 거대 종교에 상납금(?)을 제대로 바치지 않으면 같은 종교를 믿는 국가들의 집단 견제를 받을 수도 있다. 외교는 자신의 영토에서 나지 않는 특산물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며, 특정 국가의 특수 병과를 획득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 외에도 연구 모드에서 탐험가를 해금하면 친숙한(?) 인디와 라라를 만나 각종 자원을 획득할 수도 있으며, 유랑 장수 영입, 책 정리, 시샤 제작 등 여러 행동들이 미니게임화 되어 있어서, 단순 반복의 지루함을 덜고 있다.
이렇듯 전략을 최대한 단순화시키고, 개성적인 그래픽을 더해 매력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전략 게임으로써의 완성도를 보자면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초반에는 장수가 부족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고, 후반부로 갈수록 콘텐츠가 부족해 할게 없다. 영지를 발전시키는 개념이 없어, 자원을 모으고, 장수와 병력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전부이며, 전투 시스템의 한계로 인해 한 전쟁터에는 한명의 장수만 파견할 수 있어서 여러 병력을 한꺼번에 동원하는 전략적 재미도 부족하다.
그나마 전략적인 재미를 선사해주는 것이 외교와 종교인데, 이 역시 깊이가 많이 부족하다. 게임의 특성상 길이 연결되어 있는 인접 도시만 공격할 수 있기 때문에, 적국의 여러 동맹 국가가 동시에 쳐들어오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소금, 말, 목재 같은 필수 자원 획득을 위한 교역 때문에 외교를 신경써야 하긴 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강대국의 콧수염을 잡아 뜯는다고 해도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여러 왕국에 영향을 주는 종교의 영향이 클 것처럼 보이지만, 외교와 마찬가지 이유로 관계가 틀어진다고 특별한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주변국가에 해당 종교가 있다면 조금 귀찮아질 뿐이지, 교단 전체가 움직여서 압박을 가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정 귀찮게 하면 상납금을 올리거나, 이교도 포로를 조금 바치면 금방 관계가 회복된다. 외교 역시 사이가 안좋은 곳이 있더라도 돈으로 모든게 해결된다(행복을 돈으로 살 수 없다면 잔고가 부족...).
이렇듯 전략 시뮬레이션을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도록 캐주얼하게 만들다보니, 포장지를 벗기고 전략의 깊이만 놓고 보자면 1992년에 출시된 삼국지3와 비슷한 수준이다. 단순함이 주는 매력도 분명히 있긴 하지만, 토탈워 시리즈나 크루세이더 킹즈 같은 게임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많은 아쉬움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다만, 이전에 등장했던 국산 게임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개성이 단점을 모두 덮고도 남는다. 국내에서 이런 비주류 장르를 시도했다는 것 자체가 높게 평가할만한 일이며, 플레비퀘스트만의 독특한 그래픽은 어디에 내놓아도 튀어보일만큼 개성적이고 매력적이다. 국산 게임은 천편일률적이라는 비판을 들었을 때 드디어 보여줄만한 게임이 등장한 느낌이다. 다만,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듯이 게임의 깊이 부분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더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점에서 희망도 느껴진다. 이것을 더욱 발전시켜 국내 인디 게임을 대표할만한 세계적인 시리즈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설마 다음 작품도 9년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