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게임을 너프한다?” 기묘한 디메이크의 세계
이미 발표한 작품을 현대 기술과 감성에 맞추어 다시 만드는 것을 흔히 '리메이크'라 부른다. 한 작품의 메시지와 감성을 그대로 새로운 방식으로 재가공하여 선보이는 '리메이크'는 영화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이었지만, 현재는 게임, TV 프로그램, 음악, 패션 등 다양한 곳에서 사용되는 범용적인 기법으로 자리를 잡았다.
여기에 시스템이나 기타 요소를 건드리는 것이 아닌 최신 게임과 유사한 수준의 게임 그래픽 및 인터페이스(UI)의 해상도를 높여 출시하는 '리마스터' 등 과거에 등장한 게임을 요즘의 눈높이에 맞추어 출시하는 것은 이제 게임 시장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하나의 트랜드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이러한 트랜드에 역행하듯 최신 게임을 오히려 과거 90~2000년대 출시된 게임기에서 즐길 수 있도록 해상도와 시스템을 낮추는 이른바 ‘디메이크’(demake)가 최근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 새로운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디메이크'는 최신 게임을 이전의 플랫폼 혹은 과거 2000년대 초에 등장한 3D 게임 초창기 그래픽이나 예전 플레이 스타일로 낮추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게임의 초창기 버전을 다시 출시하는 ‘클래식’과는 또 다른 개념으로, 완전히 게임을 새롭게 너프 시키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색다른 즐거움을 제공한다.
모든 개발사가 더 화려한 그래픽과 더 참신한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대에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행위로 보이지만, 디메이크는 개발자들에게 새로운 도전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하나의 독특한 트랜드로 자리 잡는 중이다.
‘디메이크’는 “지금 출시되는 게임이 과거에 등장했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최근 게임의 그래픽은 더 화려해지고, 시스템도 복잡해지고 있지만, 게임의 본질인 재미와 동떨어지고 있다는 비판에서 시작해 단순한 그래픽과 시스템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주었던 과거의 모습을 최신 게임에 담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구시대 게임기의 한정된 용량으로 몇십 기가바이트(GB) 이상의 게임의 시스템과 콘텐츠를 구현해야 하므로 정교한 구성과 프로그래밍이 필요해 개발자들의 도전 욕구를 불러일으킨다는 것도 ‘디메이크’를 진행하는 이유로 꼽힌다.
더욱이 플레이스테이션1(PS1), 슈퍼닌텐도, 닌텐도64 등의 게임기를 기준으로 개발되는 만큼 ‘레트로’ 게임 스타일을 선호하는 게이머들에게도 색다른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것도 디메이크가 활발히 이뤄지는 원인 중 하나다.
실제로 등장한 작품도 다수 존재한다. 현재 개발 과정이 공개된 ‘블러드본 PSX’는 프롬소프트의 유명 액션 게임 블러드본을 소재로 2017년 처음 디메이크 작업이 진행된 이후 현재까지 꾸준히 챕터를 하나씩 구현해 가며, 게임을 선보이고 있다.
PS1을 기반으로 제작 중인 ‘블러드본 PSX’는 복잡한 맵을 대거 수정해 보스전 및 중요 챕터를 중심으로 원작의 액션과 무기, 플레이를 선보였으며, 무엇보다 PS1 특유의 투박하고, 거친 그래픽을 그대로 게임에 적용해 큰 주목을 받았다.
아울러 ZA/UM에서 지난 2019년 발매한 RPG '디스코엘리시움'의 경우 닌텐도 게임보이 버전으로 디메이크되어 마치 ‘포켓몬 골드/실버’를 보는 듯한 캐릭터 디자인과 그래픽으로 새롭게 재창조 되었다.
특히, 원작의 대화 및 NPC와의 상호작용도 그대로 구현되었고, 무엇보다 게임의 사운드가 4비트 곡으로 리믹스되어 진짜 90년대 게임을 플레이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기도 하다.
여기에 지난 5월 발매된 ‘바이오하자드 빌리지’의 경우 영상이 공개된 이후 하루 만에 모 유튜버가 PS1 버전으로 디메이크 한 영상을 공개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해당 영상은 낮은 폴리곤 그래픽과 프레임으로 최신 게임과 비교하기도 힘든 퀄리티이지만, PS1 특유의 뭉개짐 현상이 캐릭터 얼굴과 배경에 적용되어 마을 사람들의 외모와 마을의 배경이 더욱 기괴하게 그려져 본편보다 공포 요소가 더욱 강화되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물론, 현재 디메이크로 공개된 게임의 대부분은 개발 중인 작품이며, 심지어는 이미지만 있는 작품도 더러 있어 아직은 하나의 대세 장르로 자리 잡았다기보다 하나의 작은 유흥거리에 불과하다. 더욱이 실제로 판매 중인 게임을 제3자가 재창조한다는 점에서 이 디메이크 작품을 수익화하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도 이 디메이크가 해외 개발자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진행되고, 점차 인기를 얻어가는 이유는 사랑하는 캐릭터를 재해석하고 기술적 한계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는 것을 즐기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PS1 그래픽으로 구현되어 예상치 못한 공포를 선사해 스팀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OK/NORMAL’이나, ‘파라토픽’(Paratopic) 등 작품은 이 디메이크의 영향을 받아 개발되었을 정도로 개발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과연 시대를 역행하며 오히려 새로움을 주고 있는 이 디메이크가 앞으로 게임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앞으로의 모습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