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버린 그래픽카드 가격에 놀란 게이머들. 스팀덱에 눈이 가네
가상화폐 채굴로 인해 비정상적인 가격을 자랑했던 RTX30 시리즈를 피해 신형 그래픽 카드 RTX40 시리즈를 기다려온 전 세계 게이머들의 실망이 커지고 있다. 이전 세대보다 비싸질 것이라는 예상이 많긴 했지만, 실제로 공개된 가격은 예상을 뛰어넘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전 RTX30 시절과 달리 가상 화폐의 시세 폭락으로 인해 가상 화폐 채굴업자들의 영향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현상으로 환율이 급등하면서, 실제 투자해야 할 금액은 가상화폐 문제로 그래픽 카드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폭등했던 시기와 별 차이 없는 수준이다.
엔비디아 공식 발표에 따르면 국내 기준 RTX4090 제품의 가격은 263만원에서 시작된다. 현재 말도 안되게 올라버린 환율 때문이기도 하지만, 해외 가격도 4080 12GB 모델이 899달러, 16GB 모델은 1199달러, 4090 모델은 1599달러로 책정됐다. 이전보다 최소 200 달러 이상 인상된 가격이다. 극소수를 위한 초고가형 모델인 4090은 논외로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4080 가격의 급등은 실제 게이머들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이렇다보니 지난 7월 밸브가 깜짝 발표한 신형 기기 '스팀덱'이 게이머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스팀덱은 자신의 스팀 라이브러리에 담겨 있는 게임들을 활용할 수 있는 휴대용 게임기로, 1280*800 해상도를 지원하는 7인치 터치스크린과 아날로그 스틱 2개, 정사각형 트랙패드 등으로 구성됐으며, 크기는 298㎜×117㎜×49㎜, 무게는 약 669g, 배터리 용량은 40Wh다. CPU는 ZEN2 4코어/8쓰레드 2.4~3.5GHz, GPU는 8 RDNA 2Cus, 1.0~1.6Ghz, 램 16GB이며, HD 햅틱, 블루투스 5.0도 지원한다.
휴대용 게임기라고는 하지만 스팀OS 기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사실상 PC나 다름없으며, 최상급 부품을 장착한 최고급 PC와 성능비교를 할 수준은 아니지만, 최신 게임들도 무리없이 돌리는 준수한 성능을 자랑한다. 실제로 최신 게임인 엘든링, 마블 스파이더맨을 스팀덱에서 쾌적하게 즐기는 영상이 해외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전용 독에 끼우면 완벽한 PC로 활용할 수도 있으며, 주변 기기도 이전에 PC에서 사용하던 것을 그대로 사용하면 된다.
콘솔 게임기로 최신 게임을 즐기는 경우에는 각종 모드나 언어 패치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어 PC를 선호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스팀덱은 사실상 휴대용 PC이기 때문에 이점이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스팀에서 지원하는 다양한 모드를 자유롭게 설치할 수 있으며, 대부분의 PC소프트웨어는 물론, 심지어 다른 게임 스토어도 설치할 수 있다.
더욱 매력적인 것은 가격이다. 처음 출시됐을 때는 64GB 모델이 589,000원, 256GB 모델이 789,000원, 512GB 모델이 989,000원이라서 휴대용 게임기치고는 비싸다는 반응이 많았지만, PC라고 생각을 바꾸면 꽤 경쟁력있는 가격이 된다.
그래픽 카드 가격만으로 100~200만 원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인데, 최신 게임을 무리없이 돌릴 수 있고, 게다가 집에서는 PC로 사용하다가 밖에서는 휴대용 게임기로도 활용할 수 있는 최신 PC를 그래픽 카드 하나 가격보다 싼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전 세계적인 물량 부족으로 국내에는 배송이 되지 않고 있지만, 실제 국내 예약 구매자들의 말에 따르면 각 모델별로 사전예약 대기 번호가 3만 번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스팀덱 만큼은 아니지만 로지텍이 텐센트와 손을 잡고 선보인 휴대용 게임기 로지텍G클라우드도 주목을 받고 있다.
CPU는 2.3GHz의 옥타코어 프로세서인 퀄컴 스냅드래곤 720G(SD720G), RAM은 LPDDR4X 4GB, 저장 장치는 64GB UFS 스토리지가 장착되어 있고, 스테레오 스피커, 스테레오 마이크, 3.5mm 잭, 블루투스 5.1, USB-C 3.1, 2x2 MIMO 듀얼밴드 와이파이(IEEE 802.11a/b/g/n/ac), 2셀 리튬 폴리머 배터리(12시간 이상), 마이크로SD 확장 슬롯을 제공한다.
운영체제가 안드로이드11이기 때문에 스팀덱처럼 PC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XBOX클라우드, 지포스 나우를 지원하기 때문에 여기서도 최신 PC 게임을 즐길 수 있다. 가격은 350 달러(한화 약 49만 원) 선이지만 예약 구매 시 50 달러 할인이 된다. 국내 출시 및 가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스팀덱이 주목받기 이전에도 미쳐버린 그래픽 카드 가격 때문에 다른 대안을 찾는 소비자의 움직임이 많았다는 점이다. 과거에 게이밍노트북은 휴대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무겁고, 데스크탑 PC보다는 성능이 떨어지는데, 가격은 비싸서 누가 총들고 협박해야 사는 제품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RTX30 시리즈의 비정상적인 가격 폭등으로 인해 데스크탑 PC의 가격 부담이 커지자 오히려 가성비 제품이 되면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글로벌 게이밍 노트북 출하량은 연평균 7%의 성장률을 보이며 오는 2025년 3,370만대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최근 몇 년간 그래픽 카드 가격 문제로 PC 구입이 어려워지기는 했으나, 현재 많은 콘솔 독점 게임들이 PC로 영역을 넓히면서, 결국 PC가 게임 시장의 중심으로 자리잡는 그림이 연출될 것으로 예측됐다. 하지만, 이렇게 PC 부품 가격이 하늘을 뚫고 올라가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게임은 스팀덱 등 다른 대안을 찾고, 정작 데스크탑 PC는 업무용 기기로만 남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