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럴 거면 배트맨 다시 살려내요 ‘고담나이트’
역대 히어로 게임 중 가장 높은 인기를 자랑하는 ‘배트맨 아캄 시리즈’를 탄생시킨 워너브라더스가 ‘배트맨이 없는 고담’이라는 독특한 소재의 신작을 공개했다.
지난 10월 출시된 워너브라더스 게임즈의 신작 ‘고담나이트’가 그 주인공이다. 이 게임은 배트맨이 사라진 고담이 배경이라는 독특한 소재의 오픈월드 액션 RPG다.
이 게임은 1대 로빈인 ‘나이트폴’, 2대 로빈이었지만, 조커에게 사망했다가 다시 살아난 ‘레드후드’(제이슨 토드). 3대 로빈인 ‘팀 드레이크’와 배트맨의 숨은 조력자 고든 경감의 딸 ‘배트걸’(바라라 고든) 등 사이드킥 4인방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4명의 캐릭터는 ‘라즈 알굴’과의 싸움 끝에 최후의 수단으로 배트 케이브를 폭발시키며, 사망한 ‘배트맨’의 유지를 이어 고담시의 혼란과 맞서 싸우며, 이 과정에서 다양한 빌런과 최종 흑막인 ‘올빼미 법정’과 대결하게 된다.
게임의 진행은 오픈월드 스타일의 액션 RPG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는 모습이다. 도시 곳곳에서 행패를 부리는 범죄자들을 처단하며, 단서를 수집하고, 인질극, 강도, 방화 등의 다양한 형태의 범죄 미션을 해결하며,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다.
‘고담나이트’는 미션과 전투에 따라 경험치가 주어지며, 레벨이 상승할수록 새로운 능력을 해금하여 더욱 강력한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특히, 캐릭터 레벨에 따라 적들의 레벨도 함께 높아지기 때문에 스킬 선택이 상당히 중요하게 다가온다.
여기에 완벽한 시스템이 갖춰진 베트 케이브가 파괴됐다는 컨셉에 맞추어 미션과 전투를 진행하거나, 맵을 돌아다니면서 획득한 재료를 통해 무기와 방어구 등을 제작하는 장비 제작 시스템도 등장한다.
모든 것이 완벽했던 배트맨과 달리 아직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미숙한 배트 패밀리가 주인공이라는 설정을 ‘무기와 장비를 제작하며 성장하는’ 콘텐츠로 풀어낸 셈이다.
전투는 ‘아캄 시리즈’에서 선보인 ‘프리플로우’를 살짝 변형시킨 느낌이다. 이 게임은 다수의 적을 상대로 자연스러운 타격 액션을 펼칠 수 있는 ‘프리플로우’ 시스템과 함께 별도의 콤보와 원거리 무기가 더해져 액션 플레이의 다양성을 꾀했다.
여기에 어둠 속이나 천장에 숨어 급습하거나, 적을 붙잡아 던지는 것은 물론, 불리할 때 연막탄으로 빠르게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등 다양한 액션 플레이가 등장한다.
다만 액션 플레이의 경우 완성도가 높았던 아캄 시리즈와 비교해 공격 흐름이 끊기거나, 효과가 밋밋해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으며, 이용자의 실력보다 장비만 강화하면 더 유리하게 진행할 수 있어 상당히 아쉬웠다.
‘고담나이트’의 흐름은 크게 메인 미션과 부가 미션으로 나뉜다. 이 부가 미션은 고담시 곳곳에서 등장하는데, 실제 뉴욕시와 크기가 비슷하다는 고담 지역을 게임 속에 비슷한 비율로 등장시킨 만큼 맵이 상당히 넓어 오토바이를 통한 이동 수단이 별도로 등장할 정도다.
실제로 건물을 오가는 로프 액션으로 이동하는 것보다 오토바이로 이동하는 것이 훨씬 빠르며, 길만 있으면 어디서나 오토바이를 소환할 수 있어 훨씬 유용하게 사용된다.
이처럼 ‘고담나이트’는 많은 호평을 받았던 ‘배트맨 아캄 시리즈’의 시스템을 중심으로, 장비 제작부터 다양한 육성 시스템 그리고 4명의 주인공을 번갈아 가며 플레이하는 다양한 재미 요소를 도입한 작품이다.
분명히 상당히 많은 콘텐츠를 지니고 있고, 즐길거리도 많은 게임이지만, 정작 ‘고담나이트’를 플레이할수록 본 기자가 느낀 감정은 “흥미롭다”보다 “무언가 어긋났다”라는 느낌이었다.
많은 이들에게 비난받은 PC 최적화 문제나 콘솔 30프레임 고정 등의 그래픽 부분은 제쳐 두더라도 무려 7년 동안 만든 게임임에도 전반적인 콘텐츠가 엉성하다.
이러한 요소가 가장 두드러진 것이 바로 생기 없는 고담시의 풍경이다. 분명 방대한 맵과 다양한 즐길거리가 존재하지만, 바로 옆에서 총을 쏘고 사람을 때려잡으며, 화염병을 던지는 상황에서도 시민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매일 추격전이 벌어지고, 경찰차가 불타는 와중에도 시민들의 움직임에는 큰 변화가 없어 도시에 생기가 없다는 느낌이 강하다. 오픈월드 장르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살아 움직이는 세계를 체험하는 재미”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셈이다.
캐릭터의 특색이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처음 ‘고담나이트’에 4명의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이들의 특성을 활용한 다양한 기믹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정작 게임에서는 고유 스킬과 전투 스타일만 조금 다를 뿐 큰 차이가 없었다.
실제로 배트걸로 게임을 플레이하나, 나이트윙으로 플레이하나 대사만 조금 바뀔 뿐 게임 플레이에 변화가 없고, 레벨과 스킬도 모두 공유하기 때문에 캐릭터를 변경하지 않아도 엔딩까지 볼 수 있어 “이럴 거면 캐릭터를 뭐하러 4명으로 나눠놨지?”라는 의문이 들 정도다.
여기에 4명의 캐릭터가 가진 매력도 그다지 잘 조명되지 않는다. ‘DC 공인 최고의 엉덩이’를 가진 나이트윙의 체형도 밋밋하고, 조커에게 죽었다 살아난 여파로 광기에 가까운 범죄자 혐오를 가진 ‘레드 후드’가 근육질 바보처럼 등장하는 등 원작 코믹스에서 드러난 캐릭터의 매력이 전혀 두드러지지 않는다.
심지어 번역도 어색해서 몇몇 캐릭터의 대사나 세계관 설명 및 설정이 제대로 표기되지 않는데다 무슨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동료들을 ‘가.르.치.려’ 드는 듯한 배트걸의 대사도 묘하게 거슬린다.(조커에게 총을 맞아 하반신 불구가 됐음에도 범죄와 싸우던 캐릭터에 걸크러쉬는 왜 넣은 건지?)
이처럼 ‘고담나이트’는 과감히 배트맨을 제외하고 4명의 캐릭터를 내세워 새로운 판을 짜기 위해 방대한 맵과 이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콘텐츠를 다수 선보였으나, 엉성한 액션과 생기 없는 도시의 분위기 그리고 캐릭터 4인의 특성이나 색채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느낌이다.
뭔가 차린 건 많지만, 정작 먹을만한 건 없는 뷔페에 온 듯한 게임. 플레이블 캐릭터가 4명이나 되지만, 게임을 하면 할수록 배트맨이 더 그리워지는 아이러니한 게임. ‘고담나이트’를 플레이한 본 기자의 소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