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뚫린 중국 판호 장벽. 이번에는 통할까?
지난해 말 중국발 깜짝 소식이 국내 게임업계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오랜 기간 외자 판호 발급을 중단하고 있었던 중국국가신문출판서가 지난 12월 28일 45개 게임에 대한 외자 판호 승인 목록을 공개했고, 다수의 한국 게임이 목록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이번에 외자 판호를 획득한 게임은 넥슨의 '메이플스토리M'(冒险岛:枫之传说)를 필두로, 넷마블의 '제2의 나라: 크로스월드', 'A3: 스틸 얼라이브', 카밤의 '샵 타이탄' 스마일게이트의 '로스트아크'와 '에픽세븐' 및 엔픽셀의 '그랑사가' 등 무려 7종이다.
한국 게임이 중국 외자 판호를 획득한 것은 2021년 6월 '검은사막 모바일' 이후 18개월만이다. 그동안 ‘이터널 리턴 모바일’, ‘스톤에이지’ IP 게임 등이 판호를 획득하긴 했으나, 중국 개발사가 IP를 활용해 만든 게임이라 외자 판호가 아닌 내자 판호를 획득했다.
중국은 그동안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을 막기 위한다는 이유로, 8세 미만 중국 청소년의 게임 플레이 시간을 금,토,일 단 3일 중 1시간만 허용했으며, 내자 판호도 2~3개월에 한번 허가할 정도로 강도 높은 게임 규제를 펼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오랜만에 외자 판호가 발급되고, 한국 게임까지 다수 포함된 것이 규제 완화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소식 덕분에 국내 게임업계 주가가 크게 요동치고 있다. 넷마블 등 이번에 판호를 획득한 게임사뿐만 아니라, 조이시티, 데브시스터즈 등 중국 진출 기대감이 큰 게임주들이 전반적으로 상승을 기록하고 있다. 판호로 인해 막혀 있던 중국 시장이 열리게 되면, 큰 폭의 매출 상승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판호 획득이 중국 시장에서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실제로 지난해 4월에 중국에 정식 출시된 펄어비스의 ‘검은사막 모바일’의 경우 중국 이용자들이 선호하는 신규 캐릭터 오공을 선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실패를 거둔 바 있다.
출시된지 5년이나 지난 게임이긴 하나, 다른 중국 게임 대비 여전히 최상급 그래픽이라는 점, 중국 최대 퍼블리셔인 텐센트가 참여했다는 점 때문에 많은 기대를 모았으나, ‘원신’ 등 자국 게임의 발전 덕분에 빠르게 올라간 중국 게이머들의 눈높이는 예상보다 많이 높았다.
중국 게이머들이 대만 등을 통해 ‘검은사막 모바일’을 미리 플레이해봤기 때문에, 신작임에도 불구하고 신선한 느낌이 부족했으며, 요즘 트렌드를 반영하지 못한 비즈니스 모델, 초반 서버 불안 등도 약점이 됐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는 이번에 판호를 획득한 게임들에도 적용되는 약점이다. ‘메이플스토리M’ 등 7종 모두 출시된지 2년이 넘는 중고 신인들이며, 대만을 비롯해 아시아권 시장에 이미 진출했기 때문에 중국 게이머들이 이미 플레이 경험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리니지M’ 등 오랜 서비스 기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최상위 매출을 자랑하는 모바일 게임들도 있긴 하지만, 순식간에 유행이 바뀌는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2년은 강산이 바뀔만큼 긴 시간이다. ‘메이플스토리M’과 지브리가 작화에 참여한 ‘제2의 나라 크로스월드’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신규 IP이기 때문에, 중국내 팬층이 두터운 것도 아니다.
또한 현재 중국 RPG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게임이 ‘원신’이라는 점도 불안 요소다.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원신’은 국내 시장에서도 다른 게임을 제치고 최상위권 매출을 기록 중이다. 안방에서도 이기기 힘들었던 ‘원신’이 버티고 있는 적진에서 성과를 낸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중국이 오랜만에 한국 게임에 판호를 내준 것이, 중국 게임 시장이 예전과 달리 한국 게임에 휘둘리지 않을만큼 성장했다는 자신감 때문이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다만, 현재의 상황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그동안은 중국의 방해로 링 위로 올라가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이제 링 위에 올라 정면 대결을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중국 게임 시장이 닫혀 있었기 때문에, 현재 중국 게이머들이 열광하는 콘텐츠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힘들었지만, 판호를 획득하고 정식 서비스되는 게임이 늘어나면 더 많은 데이터를 쌓을 수 있게 되고, 그것이 누적되면 결국 성공하는 게임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이번에 판호를 획득한 게임들도 정식 서비스 시작 전까지 ‘검은사막 모바일’의 실패를 보고 배운 것을 반영할 수 있다면, 더욱 성공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이고, 이들의 경험이 다음에 판호를 획득하는 게임들에게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게 된다.
특히, 중국에서도 오랜 기간 판호 발급이 안되면서 신규 PC온라인 게임이 많이 부족한 상황인 만큼, 현재 스팀에서도 대세 게임인 ‘로스트아크’의 흥행 여부가 중국 내 PC온라인 게임 상황을 분석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으며, 글로벌 IP를 활용한 ‘제2의 나라:크로스 월드’와 서브컬쳐 게임 ‘에픽세븐’ 등도 많은 정보를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판호 획득 전부터 많은 준비를 했지만, 판호 획득 후 정식 서비스까지 거의 1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검은사막 모바일’의 경우를 봤을 때 이번에 판호를 획득한 게임들도 빨라야 연말 정도에 출시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7개뿐이긴 하지만 몇 년 전 기억만 가지고 맨땅에 헤딩해야 했었던 ‘검은사막 모바일’때와는 분명 다르다. 남은 기간 동안 얼마만큼 중국 시장을 분석해서 그들에게 최적화된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 노력이 중국 게이머들에게 먹힐 수 있을지 결과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