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C가 열고, 마블이 장악했다! 슈퍼 히어로 게임의 세대교체
특별한 힘, 혹은 그에 상응하는 엄청난 자본으로 사람들을 구하고 적과 싸우는 슈퍼 히어로. 슈퍼 히어로는 많은 이들의 동경의 대상이자 좋은 이야기 소재다.
그중에서도 특히 슈퍼 히어로를 기반으로 매력적인 만화와 영화, 게임 등을 만들며 명실상부 ‘최고’라고 인정받는 두 명가가 있는데, 바로 DC와 마블이다. 아무리 히어로물에 관심이 없는 이용자라도 배트맨, 슈퍼맨부터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등의 이름은 한 번쯤 들어보지 않았겠는가?
그런 두 명가를 자세히 살펴봤더니, 제법 흥미로운 구조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영화와 게임과 같은 산업을 DC에서 선두로 개척하고, 마블에서 정점을 찍는 형태가 반복됐던 것.
바로 영화 산업을 예시로 들어보자면, 슈퍼 히어로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건 팀버튼 감독의 ‘배트맨(1986년)’이다. 참고로 ‘배트맨’은 DC 측의 IP(지식 재산)이다.
당시 ‘배트맨’은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다는 느낌이 강했던 히어로 영화를, 진지하고 어두운 분위기로 제작하며 ‘다크 히어로물’의 세계로 인도했다. 결과적으로 성인층에게도 슈퍼 히어로 영화의 매력을 전달하게 됐고, 박스 오피스 1위는 물론, 월드와이드 4억 1천만 달러 돌파 등 온갖 흥행 기록을 갈아 끼웠다.
하지만 슈퍼 히어로 영화의 전성기를 이룩한 건 누구냐 묻는다면 ‘마블’이라는 대답이 더 많이 나오는 상황이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마블 스튜디오가 제작한 영화, 드라마 등의 세계관)가 너무 강력했다.
MCU는 각자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던 영웅들을 한 스크린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팬들의 니즈를 확실하게 충족시켜줬고, 다른 할리우드 제작사들에게도 ‘세계관의 중요성’은 물론, 슈퍼 히어로에 대한 인식을 단단하게 심어주며, 2010년대를 슈퍼 히어로 영화의 전성기로 이끌었다. 특히 2012년 개봉한 ‘어벤져스’는 당시 한국에서 ‘마블민국’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 정도로 흥행했으니 말 다했다.
마블의 흥행에 DC에서도 뒤늦게 DCEU(DC 익스텐디드 유니버스)를 발표하며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수어사이드 스쿼드’ 등을 선보였으나, 급하게 준비한 탓인지 어정쩡한 스토리와 연출로 마블에 비해 초라한 성적표를 받고 말았다. 마블과의 세계관 싸움에서 진 셈이다.
앞서 언급했던 영화처럼 게임 산업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졌다. 슈퍼 히어로 게임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포문을 연 건 2009년 출시된 ‘배트맨 아캄 어사일럼(이하 아캄 어사일럼)’이다.
물론 ‘아캄 어사일럼’ 이전에도 슈퍼 히어로 게임은 있었지만, 여러모로 부진한 성과를 냈다. 보통 기반 영화의 개봉 시기에 맞춰 게임이 출시되어야 하니 개발 기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했고, 슈퍼 히어로 IP의 이름값에 의존해 부족했던 게임성은 다른 대형 IP 게임을 이기기 어려웠던 것.
하지만 ‘아캄 어사일럼’은 만화 원작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영화 개봉일에 맞춰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어 충분한 개발 기간을 뒀고, IP에 대한 이해도도 충만해 배트맨의 특성을 충분히 활용한 액션, 잡입, 퍼즐 시스템을 선보였다.
때문에 게임은 원작을 좋아했던 팬들은 물론, 평범한 게이머의 마음까지 저격할 수 있었고, ‘폴아웃3’, ‘언차티드2’등의 쟁쟁한 게임들을 넘어 당당하게 많은 매체에서 GOTY로 선정됐다. ‘슈퍼 히어로 게임’이 어엿한 하나의 장르로 당당하게 자리잡은 순간이었다.
그렇게 계속 승승장구 하는 줄만 알았지만, 이후 2015년 출시된 ‘배트맨 아캄 나이트(이하 아캄 나이트)’가 혹평을 받으면서 기세가 한풀 꺾이고 말았다.
‘아캄 나이트’는 발매 전부터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당시 6월 23일 발매가 예정되어 있던 게임의 한국 PC 버전은 출시 하루 전 갑작스럽게 7월 17일로 발매일이 밀렸다. 여기에 더해, 이후 겨우 출시된 PC 버전은 그래픽 효과 누락, 심각한 최적화, 버그 등의 문제점이 창궐했고 게임을 제대로 즐기기도 전에 실망하는 이용자들이 속출했다.
게임성 자체도 스토리는 물론 번역의 퀄리티, 미흡한 보스전 등으로 수없는 혹평을 받으며 ‘뜨거운 쓰레기(Hot Garbage)’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치고 올라온 것이 바로 ‘마블 스파이더맨’이다. 2018년 출시된 이 게임은 뉴욕을 생생하게 구현한 배경을 웹 스윙을 통해 이동하면서, 스파이더맨이 가진 매력을 극대화했다는 점에서 엄청난 호평을 받았다.
‘마블 스파이더맨’은 발매 3일 만에 전 세계 판매량 330만 장을 돌파하며 심상치 않은 상승세를 보이더니, 2018년 11월 900만 장, 2019년 7월부로 1320만 장을 넘으며 결국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슈퍼 히어로 장르 게임’ 타이틀을 쥐는 것까지 성공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마블은 지난 20일 후속작 ‘마블 스파이더맨 2’를 선보이며 슈퍼히어로 게임 세대교체 굳히기에 들어갔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마블 스파이더맨 2’는 2명의 주인공을 내세워 플레이 캐릭터를 전환해 즐기는 재미를 더했고, 1편의 아쉬웠던 짧은 플레이 타임을 해튼, 퀸즈, 브루클린 등 다양한 배경 확대로 보완했다.
게임은 출시 후 24시간 동안 약 250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역대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중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많은 판매량’이라는 업적을 자랑하게 됐다.
때문에 이제 판매량은 물론, 이용자들의 평가 등을 고려하면 배트맨 아캄 시리즈를 넘어 스파이더맨이 완벽하게 슈퍼 히어로 게임의 세대교체를 이루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히어로 영화 흥행은 마블이 앞섰지만, 게임은 배트맨 아캄 시리즈가 워낙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어 DC가 우세하다는 평이 많았다. ‘영화는 마블, 게임은 DC’라는 농담도 만연했다.”, “하지만 최근 마블 스파이더맨이 PS 최다 판매량 갱신은 물론, 탄탄한 게임성으로, 게임 산업에 있어 배트맨의 자리를 스파이더맨이 물려받게 되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