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귀환'으로 마무리된 2023 롤드컵
10월부터 시작되어 약 6주간 숨 가쁜 일정 속에 진행된 2023 리그오브레전드 월드챔피언십(이하 2023 롤드컵)이 T1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이번 대회는 '황제의 귀환'으로 끝을 맺은 모양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T1의 롤드컵 우승. 그리고 2013년 혜성같이 등장해 롤드컵 최연소 우승(18세)을 차지한 '페이커' 이상혁이 10년이 지나 다시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역대 롤드컵 최연장자(27세) 우승과 최다 우승(4회)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으니 말이다.
T1이 이번 롤드컵에서 걸어온 길은 그야말로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사실 LCK 2번 시드로 롤드컵에 진출한 T1의 우승을 예상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정규 시즌 후반 급작스러운 부진으로 겨우 5할 승률을 맞췄고, 지난해부터 꾸준히 결승전에는 진출했지만, 모든 대회에서 준우승에 머무는 등 과거 정상을 차지했던 T1의 모습과 사뭇 달랐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T1은 롤드컵 첫 경기부터 '표식' 홍창현을 앞세운 북미의 '팀 리퀴드'에게 시종일관 밀리며 이변의 주인공이 될뻔했고, 2경기 젠지에게 패배하며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남은 경기를 모두 승리로 장식하며 8강에 합류한 T1은 이때부터 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젠지와 KT가 탈락하며, LCK 마지막 희망으로 남은 T1은 8강에서 만난 중국 LPL 2번 시드 LNG를 상대로 모두의 예상을 뒤엎은 3:0 완승을 기록하며, 상승세를 탔다.
그리고 4강에서 만난 팀은 LPL 최강 징동 게이밍. '카나비' 서준혁과 '룰러' 박재혁을 앞세운 징동 게이밍은 국내 모든 대회와 국제대회를 우승하는 '골든로드'를 노리는 롤드컵 유력 우승 후보 1순위였다.
징동을 만난 T1은 1세트부터 변칙적인 챔피언을 내세우는 이른바 ‘T1 서커스’에 성공하며, 승리를 거뒀고, 3~4세트를 승리하며, 3:1로 징동 게이밍을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3세트 패배가 가까워진 순간 ‘페이커’의 아지르가 ‘룰러’의 바루스를 궁극기로 끌어올리는 장면은 이 경기의 백미로 10년 동안 최정상의 위치에 서 있던 ‘페이커’의 진가를 다시 한번 보여준 순간이었다.
그리고 결승에서 T1은 웨이보 게이밍을 만나 3:0 완승을 거두며, 7년 만의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해 DRX의 ‘미라클런’에게 밀려 결승에서 좌절했던 아픔을 모두 씻어내는 승리였다.
이번 우승으로 T1은 새로운 기록을 다수 세웠다. 먼저 T1 우승의 주역인 ‘페이커’는 LOL 프로리그 최초 롤드컵 4회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했고, 최연소 우승과 최연장자 우승이라는 두 가지 기록을 모두 보유한 선수가 되었다.
여기에 “롤드컵 다전제 경기에서 LPL에게 패배하지 않는다”라는 T1의 기록 또한 유지됐고, LPL 4팀을 롤드컵에서 모두 만나 꺾어버리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으며, 9년 동안 이어진 개최국 우승 징크스를 깨기도 했다.
극찬을 넘어 숭배에 가까운 중국 팬들의 ‘페이커’ 인기도 이슈였다. 징동을 꺾은 4강 이후 ‘페이커’에 대해 "LPL 최초의 적이자 최후의 적 ", "당신이 있기에 이 경기를 ‘전설에 도전하라’라고 부를 수 있다"라는 극찬의 댓글이 다수 달렸다.
여기에 결승에 승리한 이후 LPL의 중계진이 “웨이보도 정말 최선을 다했지만, 바다를 건널 수 없는 나비와 같으니 누가 탓할 수 있을까?”,“불현듯 뒤를 돌아보면 페이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확고한 그의 그림자는 산과 같다”라는 시에 가까운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LCK 대표로 출전한 젠지와 KT도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먼저 LCK 1번 시드로 롤드컵에 진출한 젠지는 8강까지 전승을 이어가며, 그 어느 때보다 우승에 근접한 모습이었으나, 빌리빌리 게이밍에게 패배하며, 롤드컵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상대 전력은 우위에 있었으나, 이른바 ‘럼자오자레’(럼블, 자르반, 오리아나, 자야, 레나타)라는 이번 대회 1티어 챔피언을 모두 상대에게 쥐여주는 아쉬운 벤픽 속에 당한 패배였다. 이 경기의 패배로 젠지는 첫 번째 롤드컵 패배가 탈락으로 이어졌으며, 2023 롤드컵 결승전이 LPL 팀 간의 대결 혹은 한중 대결로 펼쳐지게 되어 많은 이슈를 불러일으켰다.
오랜만에 롤드컵 무대에 오른 KT에게 이번 대회는 ‘험난함’ 그 자체였다. 첫 경기부터 몇 번의 대전 추첨 끝에 중국의 강호 비리비리 게이밍을 만난 KT는 두 번째 경기에서는 ‘디플러스 기아’를 만나는 내전까지 치렀다.
8강 대전은 더욱 기막혔다. 롤도사 ‘베릴’ 조건희의 추첨으로 진행된 8강 진출전에서 KT는 디플러스 기아와의 내전이 또다시 성사됐고, 이 경기에서 승리해도 중국 최강 징동 게이밍을 만나는 대진을 받게됐다.
디플러스 기아를 상대로 승리하며 8강에 진출한 KT는 징동을 상대로 1세트 승리를 따내며, 만만찮은 패기를 보여주었지만, 저격픽도 통하지 않는 상대의 막강한 전력에 결국 3:1로 패배하며, 롤드컵의 여정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