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게임백과사전] 북미 최대 게임쇼 'E3' 폐지...역사 속으로
지난 12월 12일 게임 업계에 충격적인 소식이 하나 전해졌습니다. 세계 3대 게임 전시회 중 하나로 꼽혔던 E3(Electronic Entertainment Expo)가 폐지를 선언한 것입니다.
E3를 주최하는 미국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 협회(ESA)는 엑스(구 트위터)를 통해 “E3는 20년이 넘는 시간 매년 더 크게 열렸지만, 이제는 작별을 고할 시간이 왔다. 추억에 감사하다. GGWP(Good Game Well Played, 좋은 게임이었고, 좋은 플레이였다.)”라고 E3가 역사 속으로 사라짐을 알렸죠.
20년이 넘는 시간 게이머들과 함께해 온 행사이기에 E3의 폐지에 게이머들도 다양한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코로나19에 죽었던 E3에 이제야 사망 선고가 내려진 것이라는 냉정한 반응부터 인터넷도 발전하지 않은 어린 시절 잡지를 찾아가며 E3 정보를 습득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E3는 1988년 처음 개최된 유럽의 게임쇼 ECTS(European Computer Trade Show)보다 다소 늦은 1995년 처음 열렸습니다. 1995년부터 2006년까지 일렉트로닉 엔터테인먼트 엑스포로라는 이름으로 열렸고, 중간인 2007년과 2008년에는 전시자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 규모를 줄인 E3 미디어 및 비즈니스 서밋이 이라는 이름으로 개최됐습니다.
E3는 산업 종사자들에게 공개된 성격의 행사였으나 일반 참관객이나 블로거들이 방문하면서 행사가 커졌고 ESA는 이를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다만 이 결정은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2007년 E3 관람객은 1만여 명 2008년 E3 관람객을 5000여 명으로 줄었습니다. 결국 ESA는 2009년에 다시 일렉트로닉 엔터테인먼트 엑스포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우리가 아는 E3로 다시 열렸습니다.
그리고 산업 종사자를 위한 행사 성격이 강한 E3는 많은 관람객이 찾는 게임스컴이나 지스타, 도쿄게임쇼 등과 달리 B2B에 중점을 둔 행사였습니다. 2017년 이후 후반기에는 일반 관람객이 1만여 명 이상 참가하며 어느 정도 B2C 행사의 모습을 보였으나, 행사의 본질 자체는 컨퍼런스나 행사장 뒤에서 진행되는 시연과 이야기 등에 집중된 B2B 행사였죠.
게다가 B2C 개념이 크게 없었던 시절에는 전시관 입장 비용이 우리 돈으로 100만 원을 훌쩍 넘어설 정도였으니, 일반 관람객이 쉽게 참관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로 게임 업계 퍼블리셔나 개발사의 관계자, 세계 각국의 미디어, 인플루언서들이 참가했습니다.
E3는 세계 최대 게임 시장 중 하나인 미국 본토에서 열린 대형 게임쇼인 만큼 세계 최대 시장을 두고 펼치는 게임사들의 경쟁을 직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먼저 공개되는 게임이나 콘솔 기기 등이 대거 발표되는 자리이기도 했죠. 이런 모습들이 E3를 세계 최대 게임쇼의 반열에 오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실제로 세가의 새턴, 닌텐도 DS, 닌텐도 Wii,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플레이스테이션2,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 원 등 전 세계를 사로잡았던 주요 콘솔 기기들이 최초로 공개된 곳도 E3입니다. 2013년에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4와 MS의 엑스박스 원이 발표되며 당시 양사가 상반된 정책을 들고 와 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중고 정책 등이 대표적 이었죠.
콘솔 기기뿐만이 아닙니다. 게임 시장 역대를 대표할만한 다양한 게임도 E3를 통해 공개되며 이름을 알렸습니다. 스타크래프트의 초기 버전, 파이널 판타지 7, 툼레이더, 언리얼,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 등 역대급 명작은 물론,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의 게임들이 E3를 통해 최초로 공개되며 이용자들의 관심을 샀습니다.
또한, 국내 기업들도 E3에 참여해 글로벌 공략을 위한 발판으로 삼았습니다. ‘킹덤언더파이어’의 판타그램이나 국산 휴대용 게임기 GP32의 게임파크 등 추억의 이름들부터 웹젠, 스마일게이트 등 다양한 회사들이 E3를 경험했습니다.
이처럼 최고 수준의 게임 전시를 보여준 E3였지만, E3는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습니다. 그 원인으로는 많은 것이 지목됩니다.
과도한 경쟁과 참가 비용 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E3는 매년 상반기 진행되는 행사인 만큼 시연보다는 게임의 공개 등에 더 초점이 맞춰진 행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의 뒤에서 진행되는 시연 등을 위해 개발자들이 엄청난 크런치 속에 매년 E3 시연 버전을 만들어내 불만이 컸다고 합니다.
게다가 E3 행사는 특정 분야 경쟁 기업끼리 부스를 맞대고 있게 전시관을 구성할 정도로 과도한 경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덕분에 막대한 자금이 투입됐죠. 관람객으로서는 즐거울 수 있겠지만 참가 기업으로선 쉽지 않았겠지요.
여기에 대형 퍼블리셔들이 이탈이 가속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2019년 소니입니다. 2019년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 불참을 선언했습니다. 무려 24년 만에 첫 불참으로 적지 않은 의미를 전한 것이죠. 같은 해에는 EA도 E3의 불참을 선언합니다.
E3의 위기는 코로나19를 통해 정점을 찍습니다. 2020년 행사는 취소 2021년 온라인으로만 진행됐죠.하지만, 이미 대형 퍼블리셔들이 자사의 쇼케이스를 별도로 진행하며 충분한 경험을 쌓았고, E3를 제외하고도 게임들이 노출될 채널이 엄청나게 많아습니다. 게다가 더 게임 어워드의 진행자 제프 케일 리가 2020년부터 시작한 ‘서머 게임 페스트’가 E3의 빈자리를 자연스럽게 메웠고, 어느덧 24년 행사까 약속했죠.
ESA는 최근 몇년간 E3 준비하면서 행사를 게임스컴처럼 팬과 미디어, 그리고 영향력 있는 축제로 탈바꿈할 계획을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코로나19가 없었다면, 새로운 E3를 만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어찌 됐든 이제 E3는 추억 속에 남아있는 게임 전시회가 됐습니다. 20년을 넘게 함께 해온 E3가 사라지지만, 아직 전 세계에는 다양한 게임쇼와 축제들이 남아 있습니다. 한 시대의 종말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과 같습니다. E3가 없는 새로운 게임 시장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