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대 이승훈 교수 “‘게임 과몰입’에서 벗어난 이후를 다룬 의학 논문이 있었는가?”
“의료계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보면 12개월 이상 게임을 한 이용자들이 ‘게임 과몰입’에서 벗어났을 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실존적인 비교대조군이 하나도 없었어요. 일방적으로 유리한 결론만 내린게 아닐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안양대학교 이승훈 교수가 2024 국내 게임산업 전망 신년 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23일 오피지지에서 진행된 신년 토론회에서는 안양대학교 이승훈 교수, 수퍼트리 최성원 대표, 법무법인 태평양 강태욱 변호사가 발제자로 나서 국내 게임 산업의 정책, 산업, 기술 분야의 현황을 돌아보고, 2024년에 대해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했다.
이번 토론회에서 정책 부문 발제자로 나선 안양대학교 이승훈 교수는 ‘게임이용장애 국가별 정책 동향’에 대해 각 국가는 ‘게임 과몰입’에 어떠한 입장을 가졌고, 국내에서는 어떤 부분에 대해 더 생각해 봐야 하는지 고민해 볼 만한 메시지를 던졌다.
2019년 WHO(국제보건기구)에서 ‘게임 과몰입(게임 중독)’을 질병코드 ICD-11으로 등재했다. 해당 기관이 정의한 ‘게임 과몰입’이란 지속성, 빈도, 통제 가능성을 기준으로 해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하는 행위가 12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는 구체적인 수치, 예를 들어 ‘내성’이나 ‘금단 현상’ 등의 중독의 핵심 증상에 대한 판단 기준을 비롯해 의학적이나 병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 이 교수는 ‘게임 과몰입’을 정의하는 기준이 지나치게 모호해, 환경에 의한 일시적인 변화나 관련 직종 등으로 끊임없이 게임을 접하게 되는 경우도 중독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게임 과몰입’이 모호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만큼 WHO의 결정에 반대 입장을 가진 국가도 많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 캐나다, 호주, 유럽 등 모두 9곳이 반대 성명을 공동 발표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이 교수는 미국에 집중했다. 미국은 ‘게임 과몰입’에 대한 자율규제에 힘을 실어주어, 정부 차원의 대책을 세우기보단 민간 단체나 기업 등이 자체적으로 다양한 예방 치료 프로그램 등 다양한 해결 방안을 자체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이 교수는 미국에서는 게임 기업이 먼저 민간 단체에게 프로그램을 역으로 제안하는 경우도 많고, 관심도가 높아 활발한 자율규제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이를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물론 게임 과몰입’ 질병코드 등재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을 가진 국가도 있다. 이 교수는 대표적인 예로 중국을 꼽았다. 중국은 국가 특성상 정부 측에서 도전이나 저항 개념이 강하다는 이유로 게임 산업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중국의 강한 청소년 게임 통제가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는지는 알 수 없다. 이 교수는 엄격한 청소년 게임 시간 통제 이후 학업 성취나 건강 증진에 대한 긍정적인 지표 변화를 찾아볼 수 없고, 도리어 부모님의 계정으로 우회하거나 게임에 더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게 됐다고 말했다. 반발 심리를 잡지 못했고, 실질적인 정책 효과는 없다는 것.
‘게임 과몰입’에 대한 쟁점과 게임 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기본적으로 ‘게임 과몰입’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을 가진 의료계, 언론에서는 지극히 부정적이거나 후속 연구가 필요한 의견을 많이 내고 있다.
‘게임을 하면 뇌의 구조가 변한다.’, ‘게임을 하면 뇌 기능이 저하된다’ 등의 주장이 존재하지만, 이후 연구한 대상자가 ‘게임 과몰입’에서 벗어났을 때 정상대조군과 비교해 ‘정상적인’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추가적인 근거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이 교수는 책 집필을 위해 ‘게임 과몰입’과 관련된 다양한 논문을 찾아봤지만, ‘어떻게 게임 과몰입을 치료했는지’, ‘게임 과몰입에서 벗어난 이후에는 어떤 변화가 나타났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며 일방적으로 유리한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게임업계를 비롯해 ‘게임 과몰입’에 대한 찬성 입장을 가진 단체들은 더 큰 목소리를 내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게임 과몰입’을 주장하는 측에서 편향적인 자료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 만큼, 자체적으로 자료를 조사하고 데이터를 마련해 사실에 기반한 주장을 뚜렷하게 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안양대학교 이승훈 교수는 “‘게임 과몰입’은 질병이라기보단 사회적 외부 요인에 대한 현상에 가깝다. 특히 교육열이 강한 한국 특성상 게임 외에 의미 있는 여가 활동을 찾기가 어렵고, 또래 집단과 교류할 수 있는 하나의 중심 콘텐츠기 때문이다.”
이어서 “게임의 부정적인 면만 바라보느라 불안감 및 고립감 완화, 문제 해결 능력과 협업 능력 강화 등 긍정적인 면을 등한시하는 것이 안타깝다. 게임 업계를 비롯한 다양한 단체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