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게임백과사전] 3D 격투 게임의 양대 산맥. 철권 시리즈의 역사
3D 격투 게임 장르를 대표하는 인기 게임 ‘철권’시리즈의 최신작 ‘철권8’이 최근 발매됐습니다.
라이벌인 ‘버추어 파이터’ 시리즈가 5편 이후 후속작 소식이 없다보니, 이제는 홀로 3D 격투 게임 장르를 이끌고 있네요. 원래 첫 작품 때만 하더라도 ‘버추어 파이터’의 아류작 소리를 들으면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버추어 파이터’를 제치고 독보적인 인기 게임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실제로 이 시리즈의 출발이 된 철권1은 당시 남코가 오락실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세가의 버추어 파이터를 상대하기 위해 좀 더 저렴한 가격의 격투 게임을 만들겠다는 구상으로 탄생한 게임입니다.
당시 버추어파이터는 기판과 전용 캐비닛을 세트로 판매했기 때문에 오락실 업주들에게 상당한 부담이 됐습니다. 이를 보고 남코가 소니에서 개발 중이던 플레이스테이션 기판을 베이스로 만든 시스템 11 기판을 활용해 만든 철권1을 저렴한 가격으로 오락실에 공급한 것이죠. 철권1은 기판도 버추어파이터 가격의 절반이고, 기판만 구입하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캐비닛에 장착할 수 있기 때문에 오락실 주인 입장에서는 압도적으로 가성비 좋은 게임이었습니다.
물론, 가격만 싸다고 인기 게임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당시 한발 앞서가는 모습을 보였던 버추어파이터 시리즈가 더욱 더 깔끔하고 실감나는 그래픽으로 업그레이드 된 버추어파이터2를 철권1보다 1개월 먼저 발매했기 때문에, 그래픽만 보면 당연히 밀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극복하게 만들어준 것은 버추어파이터와 다른 감성입니다. 주먹이 얼굴만할 정도로 과장된 B급 감성의 그래픽이 투박한 느낌을 줬지만, 오히려 과장된 이팩트와 ‘붕권’으로 대표되는 쉬운 기술 덕분에 버추어파이터의 어려운 난도에 지친 이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은 것이죠. 당시에는 게임 정보가 빠르게 공유되던 시기가 아니다보니, 캐릭터 10단 콤보만 알고 있어도 오락실에서 고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 철권 시리즈의 강점이 된 것은 철권1에 사용된 시스템11 기판입니다. 원래부터 플레이스테이션 기판을 베이스로 만든 기판이기 때문에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완벽이식이 된 것이죠. 이전까지 오락실 게임들은 가정용 콘솔 게임기로 이식이 상당히 힘들었고, 된다고 하더라도 상당부분 다운그레이드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철권 플레이스테이션 버전은 아케이드 버전과 동일한 퀄리티는 기본이고, 캐릭터별 엔딩 추가, 중간 보스 및 최종 보스 플레이어블 캐릭터 추가 등 더 많은 콘텐츠가 추가되면서 초월이식이라는 단어를 대중화시켰습니다.
1편에 비해 그래픽을 대대적으로 업그레이드시킨 철권2는 20명이 넘는 캐릭터를 앞세워 많은 인기를 얻으면서, 아류작으로 출발했던 철권 시리즈를 버추어파이터와 경쟁하는 구도로 올려줬습니다. B급 감성이 강했던 그래픽은 드디어 버추어파이터2와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왔고, 경쟁작에 비해 많은 캐릭터들이 다양한 공방의 재미를 줬습니다. 캐릭터가 많다보니 “모르면 맞아야지” 하는 기술들이 많았고, 카운터 공격이 매우 강력해 풍신이나 붕권 한방에 빈사 상태가 될 정도로 밸런스가 엉망이긴 했지만, 그래도 콤보 공격을 하나 아는 것 차이가 커서 초보자들도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게임이었네요.
특히, 플레이스테이션 버전은 플레이스테이션 최초로 100만장 판매를 달성한 게임이 됐으며, 각종 콤보를 연습할 수 있는 프랙티스 모드가 최초로 도입돼 많은 이들이 철권 시리즈에 입문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습니다. 아, 시리즈 최초로 한국 캐릭터 백두산이 추가됐다는 것도 매력적인 부분입니다.
철권3는 엄청난 인기를 얻으면서 버추어파이터 시리즈를 추월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경쟁작 버추어파이터3가 엄청난 그래픽으로 주목을 받긴 했지만, 이전과 많이 달라진 게임 플레이와 엄청나게 비쌌던 기판 가격 때문에 대중화되지 못하면서, 그 빈자리를 철권3가 채운 것이죠.
특히, 1, 2편을 이끌어갔던 캐릭터들에 이어, 카자마 진, 에디 골드 등 새로운 얼굴들이 다수 등장해서 성공적으로 자리잡았으며, 횡이동과 낙법, 잡기 풀기 개선 등 3D 게임다운 면모가 더욱 강화되면서 철권7가 나오기 전까지 시리즈 최고의 흥행작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철권 시리즈가 3D 격투 게임 최강자가 될 수 있었던 기본 뼈대가 이때 완성됐다고 보면 됩니다. 가정용 역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완벽한 이식은 물론이고, 가정용만의 오리지널 모드인 테켄 포스, 테켄 볼 등이 추가되면서 극찬을 받았습니다.
철권3 이후에 발매된 철권 태그 토너먼트는 더욱 더 발전한 그래픽과 30명이 넘는 캐릭터, 그리고 시리즈 최초로 2:2 태그 매치를 앞세워 철권3의 인기를 계속 이어갔습니다. 특히 이후 등장한 철권4가 기대만큼 인기를 얻지 못하다보니, 철권 태그 토너먼트가 다시 주목받으면서 더욱 더 오랜 기간 인기를 끌었네요. 지금도 지방 오락실이나 문방구, 찜질방 등에 가면 철권 태그 토너먼트가 돌아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철권 태그 토너먼트까지 승승장구하던 철권 시리즈는 철권4가 발매되면서 잠시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버추어파이터에 비해 한 수 아래로 평가받았던 그래픽을 대폭 업그레이드했고, 벽맵 등 새로운 요소를 다수 추가했지만, 지금까지 흥행 덕분에 자신감을 얻은 남코가 아케이드 기판 가격을 대대적으로 올리면서 오락실 보급이 많이 안됐기 때문입니다.
게임 플레이도 캐릭터 수가 많이 줄었고, 이전까지 철권 시리즈를 대표했던 풍신류를 약하게 만들면서, 시원 시원한 공중콤보 때문에 철권 시리즈를 즐기던 많은 팬들이 이탈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경쟁작이었던 버추어 파이터4가 부진했던 3편과 달리 상당히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등장해 그쪽으로 갈아타는 이들도 많았고, 다시 철권 태그 토너먼트로 돌아가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철권4의 실패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다시 등장한 철권5는 철권4와 철권 태그 토너먼트의 장점을 융합시켜서 다시 부활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쉽게도 오락실 시장이 침체기였기 때문에 철권 태그 토너먼트 때와 같은 열기를 재현하지는 못했지만, 가정용으로는 600만장 이상 판매고를 올리면서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특히 PSP로 등장한 철권5 다크 리저렉션은 당시 많은 관심을 모았던 PSP의 인기에 힘입어 PSP 필수 타이틀로 자리잡았습니다. 출시 전에는 사양이 낮은 휴대용 게임기로 격투 게임의 맛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많았었는데, 발매되고 나니 완벽한 게임 플레이를 즐길 수 있어서 많은 이들을 감탄하게 만들었죠. 당시 십자키로는 조작이 다소 불편하긴 했는데, 십자키 위해 붙일 수 있는 가이드를 장착하면 기술이 상당히 자연스럽게 나가서, 당시 거의 모든 PSP에 가이드가 붙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었습니다. 새로운 3D 격투 게임으로 등장한 데드 오어 얼라이브와의 신경전이죠. 남코가 데드 오어 얼라이브를 아류작이라고 비하하자, 원래부터 독설로 유명해서 ‘이빨까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총괄 프로듀서 이타가키 토모노부가 인터뷰에서 가장 싫어하는 게임 5개를 철권1, 2, 3, 4, 5로 꼽은 것입니다.
사실 이타가키 토모노부가 데드 오어 얼라이브3 발매 당시 “버추어파이터는 낡았고, 철권은 쓰레기다”라는 발언을 하면서 광역 도발을 했기 때문에, 남코가 데드오어얼라이브를 공격한 것이긴 합니다. 다만, 철권 시리즈는 싫어하지만 하라다 카즈히로 프로듀서는 존경한다는 입장을 밝혀서, 큰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았습니다. 이 당시 하라다 카즈히로 프로듀서는 이 발언 때문에 철권이 더 유명해지겠다고 생각했다고 하네요.
철권6는 철권5의 시스템을 기본으로, 바운드, 바닥 붕괴, 레이지 등 새로운 시스템이 다수 추가돼 많은 관심을 모았습니다. 철권5에서 시도됐던 철권넷이 본격화되면서 캐릭터 커스터마이징과 본격적인 e스포츠 리그가 시작된 것도 기억이 남습니다. 당시 오락실 시장 자체가 침체되어 있었고, 당시 기판의 비싼 가격이 이슈가 되면서 오락실 불매 운동이 일어나는 등 대중화되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쉬운 부분입니다.
가정용은 PS2와 PS3의 과도기에 등장했던 철권5와 달리 완전 PS3용으로 등장하면서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그래픽을 선보였으며, 시리즈 최초로 XBOX360으로 발매되기도 했습니다.
그 뒤에 이어 등장한 철권 태그 토너먼트2는 전작의 인기 때문에 많은 기대를 모았으나, 이 역시 발매 초기 비싼 기판 가격 때문에 불매 운동이 일어나면서 철권4 수준으로 폭망했습니다. 게임 플레이 면에서도 태그 콤보가 매우 복잡해지면서,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져서 호불호가 심하게 갈린 측면도 있네요.
철권 태그 토너먼트2의 실패 이후 등장한 철권7은 언리얼 엔진4를 활용한 역대 최고 수준의 그래픽과 위기 상황에서 한번에 역전을 노릴 수 있는 레이지 아츠 시스템 등 새로운 요소들이 다수 추가되면서 역대급 흥행을 거뒀습니다.
특히, 콘솔판 뿐만 아니라 PC판이 시리즈 최초로 발매되면서, 온라인 매치가 활성화되다보니, 판매량 1000만장을 돌파하면서 철권 시리즈 흥행 기록을 다시 썼습니다. 국내 오락실이 사실상 멸종 단계에 접어들고 있어서 이전처럼 오락실 버전 위주였다면 이 역시 조용히 묻혔을테지만, PC판 덕분에 집에서도 철권7을 손쉽게 즐길 수 있게 되다보니, 시리즈 중 가장 대중화된 게임이 될 수 있었던 것이죠. 다만, 대중화되면서 초보자들도 많이 유입됐는데, 시리즈를 죽 즐겨온 고인물들의 양민 학살, 불리할 때 패전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한 랜선 뽑기 등 여러 가지 문제점 때문에 초보자가 진입하기 최악의 격투 게임으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다른 선수가 테켄 갓 오메가 등급에 오르면 무릎 선수가 귀신 같이 알고 나타나서 다시 등급을 떨어트리는 것을 감명 깊게 봤네요. 어린 시절 무릎 선수를 보고 철권 프로게이머가 된 선수들이, 40대에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역인 무릎 선수에게 박살나고 있다는 것이 흥미진진합니다.
이번에 발매된 최신작 철권8은 시리즈 30주년 기념작이자 아예 오락실판 발매 없이 가정용으로만 발매되는 최초의 작품입니다. 시리즈 중 전작 발매 이후 가장 오랜 개발 기간을 가진 게임답게 새로운 요소들이 다수 추가됐으며, 차세대 게임기로 등장하는 만큼, 더욱 더 업그레이된 그래픽으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철권7으로 너무 오랜 기간 버티고 있었다보니, 고인물들만 남아서 게임이 정체되고 있다는 반응이 많았던 만큼, 이번 신작으로 신규 이용자가 대폭 늘어나서 다시 격투 게임 전성기가 오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