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용자 보호한다는데... 해외 규제 유명무실? 국내 게임만 부담?
최근 정부가 게임 이용자 권익 보호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공개했다.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 규제와 국내 대리인 제도 시행, 게임 사기 수사 인력 대폭 확대 등이 그 일부다. 하지만 게임업계에서는 이런 제도가 정말로 게임 이용자 보호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실효성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 30일 정부는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 토론회: 상생의 디지털, 국민 권익 보호’을 열고, 게임이용자 권익을 높이는 게임생태계 조성과 관련된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토론회 내용에 따르면 다음 달 22일부터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이는 이용자가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정부는 아이템 전담 모니터링단 설치를 통해 확률정보 미표시, 거짓확률 표시 등 법 위반 사례를 철저히 단속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먹튀’를 없애기 위한 대책도 나왔다. 온라인게임·모바일게임 표준약관의 개정을 통해, 게임사들은 게임 서비스 종료 이후에도 최소 30일 이상 환불을 전담하는 창구를 운영해야 한다. 추가로 ‘해외게임사 국내 대리인’ 제도를 도입해 해외게임사들도 국내게임사와 동일한 이용자 보호의무를 가진다.
이외에도 게임 아이템 소액사기를 근절하기 위해 전국 150개 경찰서에 수사 인력 200여 명으로 구성된 수사 전담 인력을 지정해 게임 사기 처리 기간을 단축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발표다.
언뜻 보면 이용자들이 환영할 만한 내용이다. 그렇다면 게임업계에서는 왜 우려와 의문을 표하고 있는 것일까?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는 이미 자율적으로 잘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내 게임사는 자율규제안을 통해 확률형 아이템의 정보를 공개해 왔다.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가 발표한 자율규제 미준수 게임물 리스트에 따르면 지난 12월 확률 공개 미준수 국내 게임은 고작 한 곳, 나머지 12개는 모두 해외 게임이었다.
12월만 국내 게임이 자율규제를 잘 지킨 것이 아니라 지난 11월, 10월, 9월은 확률 공개를 미준수한 국내 게임이 아예 없었다. 이미 내부에서 자정 작용이 완료된 사항이라는 뜻.
이런 상황에 정부가 나서서 ‘규제’를 시도하니 게임사들의 심적 부담은 커지고, 이용자들은 ‘원래 너무 안 지켰으니 정부가 나서서 규제를 하는 것’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생기게 됐다.
심지어 ‘어떻게’ 확률을 공개해야 하는지에 대한 안내도 미흡한 상황이다. 원래 문화체육관광부는 1월 중에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 해설서를 배포하기로 했으나, 추가적인 게임업계의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공개가 미뤄졌다.
당장 3월 22일부터 정보공개 의무가 부여되는데 세세한 가이드라인은 없고, 혼란만 가중되는 상황인 것. 게임사 입장에서는 이미 공개하고 있던 확률을 아직 공개되지도 않은 양식에 맞게 어떻게 더 손을 대야 하는지 답답할 따름이다.
그렇다고 정작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에 미흡했던 해외 게임사들을 적절하게 규제했냐고 묻는다면 이것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정부에서 해외 게임사가 국내 게임사와 똑같은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해외 게임사 국내 대리인 지정’ 의무를 부여하지만, 몇몇 허점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국내 대리인 제도란 국내에 주소 또는 영업장이 없는 ‘일정 규모 사업자’를 대상으로, 국내에 책임자를 지정해 국내 상황에 대한 책임과 규제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여기서 문제는 일정 규모 사업자에게만 의무가 부여된다는 사실이다. 규모가 있는 해외 게임사가 작은 법인을 내 국내에 게임을 선보이면 해당 제도상으로는 막을 명분이 없다. 악의적인 책임 회피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또, 국내에 대리인을 지정했다고 해도 신고된 대리인과 사무실이 일치하거나, 확실히 책임을 질 수 있는 인물인지 등에 대해 모니터링 여부와 같은 후속조치에 대한 언급도 부족하다고 분석된다.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은 브리핑에서 “국내 대리인제도는 기본적으로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법이 개정되는 사이 벌어지는 일에는 어떻게 대처하고 방지할지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국내 게임사에게는 ‘규제’를, 해외 게임에게는 ‘허점’을 내보여 해외 게임사들의 국내 수출만 장려하는 역차별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정부가 발표한 내용에 국내 게임사를 향한 규제만 존재하고, 이렇다 할 진흥책이 없었던 것도 원인으로 파악된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현재 국내 게임업계는 긍정적인 상황이 아니다. 구글플레이만 켜 봐도 매출 10위 중 절반이 해외 게임인 데다가(모바일인덱스 통계 / 지난 5일 기준) 2023년 상반기 국내 게임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0.9%나 줄었다.(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산업 동향분석 보고서 기준)”라고 말했다.
이어서 관계자는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진흥책 대신 규제안만 발표하니 국내 게임업계가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국내 게임업계가 기를 펴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해외 게임이 더 많이 시장에 자리 잡을 것으로 분석되고, ‘국내 대리인 제도’가 근본적으로 확실한 방지책이 될 수 없는 만큼 (허점을 이용해 들어온 해외 게임사에게) 이용자들이 도리어 더 큰 피해를 입지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라고 의견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