켜고 구경만 하는 게임, 무한정 죽는 게임.. 극과 극으로 나뉜 게임 성향

신승원 sw@gamedonga.co.kr

‘세븐나이츠 키우기’, ‘버섯커 키우기’, ‘P의 거짓’, ‘엘든 링’...

최근 흥행한 게임들을 살펴보고 있으면, 한 가지 독특한 현상이 눈에 띈다. 켜고 구경만 하는 ‘방치형’ 게임과 어려운 난도로 무한정 죽어가며 즐기는 ‘소울라이크’ 게임이 동시에 흥행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최근 DLC도 출시한 엘든 링
최근 DLC도 출시한 엘든 링

이용자들의 수요에 맞춰 체격이 작은 인디 게임사들마저 ‘데블위딘 삿갓’, ‘V.E.D.A’ 같은 소울라이크 게임과 ‘부메랑RPG’, ‘정복소녀 키우기’ 등의 방치형 게임을 쉴 틈 없이 쏟아내고 있다. 구글플레이 인기 순위만 살펴도 날마다 새로운 모바일 방치형 게임이 앞다투어 등장하는 걸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이런 현상에 대해 “‘시간’과 ‘체력’, ‘돈’이라는 한정된 자원 투자했을 때 최고의 만족도를 얻을 수 있는 게임을 선호하는 현상이 심화되면서, 이용자들의 게임 성향도 양방향으로 갈라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2023년 한국 임금근로자의 연간 근로시간은 1,874시간으로, 다른 국가에 비해 월등히 길다. 독일, 네덜란드나 덴마크의 근로시간은 1,400시간 미만이고, 한국 다음으로 긴 미국의 근로시간도 1,810시간에 그친다.

그만큼 여가 시간도 짧다. 2023년 요일 평균 여가시간은 4.1시간이다. 하루 24시간 중 여가시간이 차지하는 비율, 즉 여가시간비율이 약 17.9%가 되는 것이고, 이는 OECD 33개국 중 28위에 위치할 정도로 적은 수치다.

부족한 여가시간
부족한 여가시간

여가 시간도 부족한데 최근 경기 침체가 이어지며 여가생활에 들어가는 비용까지 최대한 절약하려는 움직임이 겹치다 보니, 게임을 한 번 하더라도 내가 투자한 시간 혹은 돈에 비해 더 큰 만족도, 일명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가 높은 게임을 원하게 되는 것이다.

방치형 게임은 이용자가 특별한 조작을 하지 않아도 재화가 자동으로 쌓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용자는 쌓인 재화를 어디에 투자할지 결정한 뒤 버튼만 몇 번 누르면 된다. 게임의 구조도 단순해서, 돈을 투자한 만큼의 변화도 즉각적으로 나타난다. 장비의 옵션이나 등급이 변하고, 대미지 수치가 확연하게 커지는 식이다.

이에 게임에 큰 에너지와 시간을 쏟기 힘든 이용자에게는 방치형 게임이 ‘번거롭지 않게’ 돈만 대충 투자하면, ‘성장하는 재미’를 즉각적으로 반영해 주는 ‘가심비’ 좋은 선택지로 다가온다.

방치형 게임 성공 사례인 세븐나이츠 키우기
방치형 게임 성공 사례인 세븐나이츠 키우기

반면, 소울라이크 게임은 다른 게임에 비해 더 많은 컨트롤을 필요로 하고, 어려운 난도를 깨기 위해 ‘도전하고 조작하는 시간’을 방치형 대비 많이 소모하지만, 보스에 도전할 때의 ‘몰입감’과 어려운 난도를 깼을 때의 ‘성취감’은 다른 장르의 게임보다 높다.

소울라이크는 대부분 패키지로 판매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 번 구매했을 때 추가적인 지불이 불필요하다는 점에서 먼 시각으로 봤을 때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도 괜찮다.

5개월 만에 누적 이용자 700만을 달성한 소울라이크 P의 거짓
5개월 만에 누적 이용자 700만을 달성한 소울라이크 P의 거짓

이렇다 보니 두 장르 사이에서 걸친 장르의 게임들이 비교적 이용자들에게 어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게임을 쉽게 즐기고 싶은 이용자에게 방치형보다 ‘쉽고 즉각적인 성장’을, 흥미진진한 액션과 조작을 원하는 이용자들에게 소울라이크보다 더 큰 ‘액션과 성취감’을 제공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커피 프랜차이즈’에 비유하면 더 이해하기 쉽겠다.

저렴한 가격으로 메뉴를 파는 ‘A 프랜차이즈’와 고급 원두로 비싼 메뉴를 파는 ‘C 프랜차이즈’, A보다는 비싼 대신 질은 좋지만 C보다는 저렴한 원두를 쓰는 ‘B 프랜차이즈’가 있을 때의 상황을 상상해 보면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맛보다는 저렴하게 커피를 즐기고 싶은 이용자는 A 프랜차이즈로, 질 좋은 커피를 선호하는 이용자는 C 프랜차이즈를 선호하는 일이 많을 것이다. 맛과 가격 둘 다 크게 따지지 않는 이용자도 ‘맛 신경 안 쓰니까 B보다 싼 A에서 마시자, 이왕 고급스럽게 즐기려는 거 B 마실 바에 더 투자해서 C로 가자’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B 프랜차이즈’도 시그니처 메뉴(독특한 게임의 핵심 재미) 등으로 손님을 끌어모을 수 있지만, A나 C프랜차이즈만큼 보편적인 카페 선택 기준(게임 선택 기준)을 공략하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한정된 자원으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이용자들의 당연한 욕구다.”, “아직까지는 방치형과 소울라이크가 이용자에게 어필하기 좋은 매력 포인트를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게임 취향의 양극화는 언제든지 게임업계의 흐름, 이용자의 환경 등으로 변화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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