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건담 말고 다 만드는 게임. 건담 브레이커4
이제 아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겠지만, 한 때 오락실을 다니는 세대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던 만화가 있다. 자신이 직접 만든 로봇에 탑승해서, 다른 이들과 실시간 네트워크 대전을 펼치는 DP(데인저 플래닛)라는 상상 속의 게임을 즐기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브레이크 에이지다.
1992년도에 처음 시작된 만화이다보니, 2007년 정도에는 이런 게임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미안하게도 세상은 아직 인간의 상상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당시 연재 중에 전뇌전기 버추얼 온이라는 게임이 출시돼, 브레이크 에이지의 현실판이라면서 많은 이들이 설렜던 기억이 있는데, 로봇 게임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수준에서 머물러 있으니 말이다.
아직 DP 같은 놀라운 수준의 체감형 게임기는 아쉽게도 아직 나오고 있지는 않지만, 비슷한 요소들은 실제로 구현되고 있기는 하다. DP 로봇 캐릭터를 담는 데이터 디스크는 버추어 파이터, 철권의 캐릭터 카드 개념으로 구현되어 있고, VR도 조금씩 진화하면서 하프라이프 알릭스 같은 명작들이 탄생하고 있다.
이번에 반다이남코에서 출시한 신작도 어느 정도 DP에 가까워지고 있는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자신만의 건담을 조립해서 다른 이들과 실시간 네트워크 대전을 즐길 수 있는 게임 ‘건담 브레이커4’가 그 주인공이다.
건담 브레이커4는 게임뿐만 아니라 각종 프라모델을 출시하고 있는 반다이남코의 특기를 잘 살린 게임으로, 단순히 다양한 종류의 건담이 등장하는 액션 게임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프라모델 부품을 조립해서 자신만의 건담을 만드는 것이 핵심인 게임이다. 4라는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게임 시리즈로, 엄청나게 많은 팬들을 가진 인기 게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름 마니아층이 형성되어 있긴 하다.
게임을 시작하면 오락실 분위기의 로비가 등장하며, 메뉴화면에서 자신만의 로봇을 조립한 후, 기기에 접속해서 싱글 미션 혹은 다른 이들과의 네트워크 대전을 즐길 수 있다. 처음에는 가진 부품이 적기 때문에 만들 수 있는 것이 한정적이지만, 각종 미션을 클리어하면서 여러 부품을 수급하게 되면, 더 다양한 형태의 로봇을 만들 수 있다. 실제 건담 프라모델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환호를 보낼만한 제품들이 가득하며, 게임 중에도 적들이 등장할 때 프라모델 박스 형태로 등장했다가, 로봇으로 변신하는 기믹을 선보여 웃음을 자아낸다.
제목에 건담이 들어가는 만큼, 게임에 등장하는 부품들 역시 대부분 건담 위주이지만, 여기에 인간의 상상력이라는 양념을 뿌리면 생각지도 못한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건담에 자크 부품을 붙이는 것은 기본이고, 정상적인 사이즈의 건담 부품에 SD 디자인의 SD건담 부품을 붙여서 비정상적인 비율의 건담을 만들어내는 식이다. 또한, 반다이 프라모델 중에 슈퍼히미나라고 MS걸 건프라라는 제품이 있는데, 미소녀에 건담을 결합했다는 컨셉으로 등장했다보니, 얼굴은 미소녀 그대로다. 그렇다보니, 건탱크에 슈퍼히미나의 얼굴만 붙이거나, 반대로 슈퍼히미나에 건담 부품을 붙이는 등 별 해괴한 디자인이 다 등장하고 있다. 건담 게임이지만 건담말고 다 만드는 게임이라는 말이 나올만 하다.
열심히 머리를 굴려서 자신만의 건담을 만들어낸 후에는 스토리 모드 등 싱글 플레이 혹은, 다른 이들과의 네트워크 대전을 즐길 수 있다. 워낙 괴상한 세팅이 많다보니, 외형만 보고는 상대의 전략을 파악하기 힘들며, 특히 양손에 근접 무기와 원거리 무기를 다르게 세팅할 수 있다보니, 어떤 무기를 세팅하는가에 따라 다른 액션을 즐길 수 있다.
프라모델 조립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해봤을 양손 바주카로 싸울 수도 있고, 한 손에는 도끼, 한손에는 채찍을 들고 싸우는 형태도 만들 수 있다. 무기를 어떻게 세팅하는가에 따라 색다른 콤보 공격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어떤 장비를 착용하는가에 따라 새로운 스킬을 쓸 수 있게 되기도 한다. 화면을 꽉 채우는 거대한 크기의 유니콘 건담이나, 사이코 건담 등과 싸우면 나름 박진감을 느낄 수 있다.
전투뿐만 아니라 많은 프라모델 마니아들이 도전하고 싶긴 하지만, 어려움을 느끼는 디오라마를 즐길 수 있는 것도 이 게임의 강점이다. 각종 프라모델을 원하는 배경에 원하는 자세로 세워둘 수 있으며, 여기에 각종 폭발 효과 등 특수 효과도 넣을 수 있어, 애니메이션 속 명장면을 스스로 만들어볼 수 있다. 프라모델을 좋아하지만, 집에서 현실적인 어려움(돈, 공간, 시간 등등) 때문에 시도하기 어려웠던 사람이라면, 이 게임 하나만 구입하면 소원 성취를 할 수 있다.
다만, 게임적인 측면에서 전체적인 완성도를 평가하자면 다소 아쉬운 편이긴 하다. 시작부터 썰렁한 로비 화면이 기대감을 떨어트리며, 전투 맵 역시 밋밋해서 언리얼 엔진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무기에 따라 다양한 액션을 즐길 수 있긴 하지만, 타격감이 너무 빈약해서, 생긴 것만 로봇인 간단한 캐주얼 액션 게임을 즐기는 듯한 느낌이 든다.
결국 이 게임을 구입하려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알고 선택을 해야 한다. 건담이 나오는 액션 게임을 즐기고 싶다면 많은 부분에서 실망감을 느끼게 될 수 있지만, 다양한 형태의 건담을 만들어보고, 멋진 디오라마 연출을 해보고 싶다면 이보다 나은 게임을 찾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