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드컵] '페이커의 의문'에서 시작해 ‘증명’으로 끝난 '2024 롤드컵'
“더 이상 증명할 것이 없어졌다.”
6주간 숨 가쁜 일정을 소화한 ‘2024 리그오브레전드 월드챔피언십’(이하 2024 롤드컵)이 지난 3일(한국 시각) T1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LCK 팬들에게는 많은 것을 남긴 대회였다. LCK 3팀의 동반 16강 진출. T1의 젠지전 10연패의 종식. 그 어떤 LPL 팀보다 간절히 우승을 원했던 BLG(빌리빌리 게이밍)가 결승에서 보여준 엄청난 경기력. 그리고 모든 결승 경기를 캐리하며 또다시 자신을 증명한 '페이커' 이상혁의 실력 등 그야말로 두고두고 이야기될 요소가 숱하게 등장해 팬들을 열광시켰다.
[LCK 4번 시드 T1의 우승]
사실 이번 롤드컵 시작 전 T1의 우승을 점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LCK 서머 정규 시즌 잇따른 부진으로 11승 6패를 기록하며 4위에 오른 T1은 플레이오프에서도 한화생명에게 패배하며,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다. 설상가상 롤드컵 진출전에서도 가장 낮은 4번 시드로 진출. 역대 가장 낮은 순위로 롤드컵에 나섰다.
여기에 스위스 스테이지가 열린 첫 경기서 TES에게 패배하여 이러한 우려는 현실이 되는 듯했고, 페이커의 경기력에 대한 많은 설왕설래가 오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경기에서 T1은 언제나 그랬듯 정규 시즌과는 다른 ‘명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3번째 경기에서 만난 LPL 1번 시드인 'BLG'를 잡아낸 것을 시작으로 T1의 경기력은 날이 갈수록 상승했고, 4강에서는 ‘숙적’ 젠지를 3:1로 꺾으며, 젠지전 10연패의 사슬을 드디어 끊어냈다.
그리고 결승에서 다시 만난 BLG를 ‘패승패승승’이라는 극적인 스코어로 T1은 롤드컵 5회 우승이라는 금자탑과 함께 같은 로스터로 3년 연속 결승에 진출하여 2회 우승을 달성하는 신기록을 세우며, ‘2년 연속 롤드컵 우승’이라는 기쁨을 맞이했다.
[또다시 자신을 증명한 페이커]
이번 결승전의 키워드는 ‘페이커의 증명’이었다. 4강 젠지와의 경기를 앞두고 공개된 영상에서 ‘Prove it’(증명하라)라는 대사로 전 세계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페이커’ 이상혁은 BLG와의 결승전에서 홀로 팀을 구해내는 ‘1인 캐리’에 가까운 엄청난 실력으로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2세트 3명의 챔피언의 공격을 홀로 받아내고, 살아 돌아간 기막힌 플레이를 시작으로, 4세트 불리한 팀의 혈을 뚫어준 솔로킬. 5세트 ‘구마유시’ 이민형의 ‘자야’가 사망하는 대형 사고 속에서도 과감한 점멸로 ‘나이트’ 줘딩의 아리를 잡아내고 3:5 한타에서 승리하는 모습까지. ‘페이커’ 이상혁은 견줄 사람이 없었던 2014년도 전성기 못지않은 실력으로 돌아와 늦은 새벽에 경기를 시청하던 팬들의 잠을 달아나게 했다.
이번 우승으로 페이커가 가진 기존 기록도 새롭게 경신됐다. 먼저 롤드컵 역사상 최초로 통산 500킬 고지에 올라섰고, 롤드컵 최초 100경기 출장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특히, 결승전 뛰어난 경기력으로 8년 만에 다시 ‘결승 MVP’에 선정되면서 역대 최고령 롤드컵 우승, 최고령 결승 MVP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다.
[한국 팬들에게 박수받은 BLG의 경기력]
BLG의 경기력도 한국 LCK 팬들의 박수를 받을 만했다. 사실 이번 대회 초반 BLG는 스위스 스테이지에서 무려 2패를 당하며, 패자조에서 16강에 진출해 LPL 1번 시드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16강에서 한화생명을 대파하면서 다시 경기력을 되찾았다.
결승에서 BLG는 치밀한 벤픽과 동선 설계. 그리고 뛰어난 경기력까지 역대 롤드컵 결승에 오른 LPL 팀 중 가장 위협적인 실력을 보여줬고, 우승을 차지하기 충분할 정도의 실력을 보여줬다.
더욱이 어려운 자국 LPL의 상황과 리그의 부흥을 위해 반드시 우승을 차지하겠다는 BLG 선수단의 각오가 경기에 반영되어 결승 1, 3세트를 따내 우승 직전까지 다가서기도 했으며, 불리한 와중에도 T1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역습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비록 ‘페이커’ 이상혁의 ‘자연재해 급’ 플레이 속에 결국 2:3 패배를 맞이했지만, BLG 선수단은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도 T1에 대한 존중을 보내주었고, 이들의 분투는 LCK와 LPL 팬들 모두에게 많은 박수를 받았다.
[아쉬운 DK와 또다시 롤드컵 악연 이어간 젠지]
T1의 우승에 가려진 LCK 팀들의 성적도 관심을 끌었다. 먼저 ‘DK’(디플러스 기아)의 경우 먼저 2승 고지를 선점했으나, LPL 팀들과의 연전에서 계속되는 자충수로 결국 3패를 기록. LCK 팀 중 가장 먼저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젠지 역시 이번에도 롤드컵과 인연이 없었다. 젠지는 이번 롤드컵에서 파워랭킹 1위에 오르며, 가장 유력한 우승팀으로 손꼽혔고, 전승으로 스위스 스테이지를 통과하며, ‘롤드컵 악연’을 끊어내는 듯했다.
하지만 쉬운 대진으로 보였던 북미의 마지막 생존자 ‘플라이 퀘스트’와의 16강 경기에서 상대의 낭만 넘치는 플레이에 당황하여 패배 직전까지 가기도 했고, 결국 3:2 진땀승을 기록했으며, 4강에서는 10번의 대결에서 승리한 T1을 롤드컵이라는 대형 무대에서 꺾지 못하며, 결국 롤드컵의 여정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