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게임백과사전] 헌법 소원까지 진행된 게임 사전 심의, 왜 난리인가?
최근 게임 등급 심의가 계속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G식백과 김성회 유튜버가 추진한 헌법소원은 21만명을 돌파하면서 사상 최대 인원을 기록했고, 김성회 유튜버는 이것 때문에 국정감사에도 참석했네요.
지난 몇 년간 계속 사전 심의를 담당하고 있는 게임물관리위원회가 개선되어야 한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계속 있었지만, 이제는 참다 못해 게임물관리위원회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웹툰, 영화 등의 콘텐츠와 비교했을 때 범죄, 폭력, 음란, 도박 등 여러 가지 기준이 너무 엄격해서, 게임의 창의성을 저해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실제로, 영화는 1996년에 사전심의 제도가 폐지됐고, 심의를 담당하고 있는 영상물등급위원회는 등급 분류만 합니다.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 등급을 변경조치할 수 있지만, 게임물관리위원회처럼 국내 서비스를 아예 막지는 못합니다. 미국 등 해외 국가들도 자발적인 심의등급이기 때문에 강제성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게임물관리위원회 같은 형태의 사전 심의 제도는 중국, 베트남 등 공산 국가만 운영 중이네요.
사실, 지나친 폭력이나 음란물들에서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게임물관리위원회가 계속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그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 때문입니다. 지난 사례들을 보면 예상을 깨고 국내 정식발매가 허가된 사례도 있고, 억울하다고 느껴질만한 사례도 꽤 있어서, 기준이 왔다갔다 한다는 느낌이 있긴 합니다.
논란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지난 2011년 니노쿠니 사태 때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레벨5와 스튜디오 지브리가 만나서 주인공 올리버가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이세계 니노쿠니를 모험하는 이야기를 다룬 이 게임은 애니메이션을 연상케 하는 매려적인 그래픽과 스토리로 아이들에게 추천할만한 게임으로 기대를 모았습니다만, 정작 국내 발매는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을 받았습니다. 일본에서는 전체이용가를 받은 게임인데도 말입니다.
이유는 게임 속에 등장하는 미니게임으로, 블랙잭, 슬롯 머신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전체적인 게임 내용과 상관없이, 도박 요소가 있다는 것만으로 청소년들은 즐기면 안되는 게임으로 낙인이 찍힌 것입니다. 일본에서 국민 게임이라 불릴 정도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드래곤퀘스트7, 드래곤퀘스트11도 같은 이유로 전체 이용가가 아닌 15세 이용가를 받았습니다. 그나마 시간이 좀 흘러서 기준이 좀 완화됐나봐요.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이 아니었다는 것에 감사해야할 상황이네요.
폭력성이나 선정성 측면은 꽤 너그러운 편이긴 합니다만, 이것도 좀 왔다갔다 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습니다. 2005년에는 일본 성인 게임 전문 회사인 밍크가 개발한 5종의 게임, 프린세스 나이츠, 미션 오브 머더, 덴저엔젤 이상진화, 아르카나, 미타마가 무삭제 버전으로 청소년이용불가 등급을 받아 국내 정식 출시됐습니다. 이 회사의 유명 작품인 야근병동 같은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야한 게임만 전문으로 만드는 회사에서 야릇한 사진으로 가득 채워서 만든 성인용 게임이 국내 정식 발매됐다는 것이 엄청난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물론 야한 장면이 가득하긴 하지만, 직접적인 성행위 묘사는 없었으니, 통과됐겠지요.
반면에 최근에는 사회적으로 성상품화 논란이 커지고 있다보니, 다시 선정성에 대한 기준이 높아지는 분위기입니다. 블루아카이브는 15세 이용가 등급으로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선정성을 이유로 청소년이용불가 등급으로 상향 조정됐고, 마찬가지로 15세 등급이었던 브라운더스트2 역시 청소년이용불가 등급으로 상향 조정됐습니다. 게임 내용 자체는 청소년들이 즐겨도 무방한 수준이나, 일부 선정성이 느껴지는 일러스트들이 문제가 됐다고 하네요. 대체적으로 선정적인 것은 크게 문제삼는 편은 아니나, 미성년자로 보일 수 있는 캐릭터의 선정성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느낌입니다.
GTA 시리즈가 국내 정식 발매가 된 것도 엄청난 화제가 됐습니다. 아무래도 액션 위주의 게임은 사람 형태로 등장하는 적들을 죽이는 것이 일반적일 수 밖에 없지만, GTA는 범죄, 매춘 등의 행위가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고, 심지어 민간인도 죽일 수 있는 것 때문에 해외에서도 논란이 된 게임이었으니까요. 심지어, GTA 시리즈보다 더 막장이라는 평가를 받아 미국에서도 논란이 됐던 포스탈 시리즈도 국내에 청소년이용불가 등급을 받아 정식 발매된 적이 있습니다.
다만, 사람을 고문하고 살해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맨헌트 시리즈와 척추를 뽑는 페이털리티로 유명한 모탈 컴뱃 시리즈는 등급 거부 당했습니다. 맨헌트는 게임 목적 자체가 불손하고, 모탈 컴뱃은 싸우는 행위 자체는 문제가 없으나, 승패가 결정된 뒤에 상대의 신체를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된 것 같습니다. 사실 게임전문가 입장에서도 저 게임들은 등급 거부 하는게 맞아보입니다.
오락가락 심의의 끝판왕은 최근에 논란이 됐던 뉴 단간론파 V3가 끝판왕일 것 같습니다. 이전 시리즈는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으로 국내 정식 발매됐지만, 이번 작품은 게임 내용이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범죄를 부추길 수 있다는 이유로 등급 거부를 당했으니까요.
아무리 등급위원이 달라졌다고는 하나, 확실한 기준이 없이 상황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으니, 이를 기다리던 팬들도, 게임을 출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유통사도 입장이 곤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듯 게임물관리위원회에서 현재까지 진행한 등급 심사 결과들을 보면 바다이야기 사태라는 사회적인 문제 때문에 탄생한 조직의 특성상 사행성에 매우 민감한 편이고, 반대로 폭력이나 선정성 측면에서는 청소년이용불가 등급으로만 신청하면 다른 나라에 비해 꽤 너그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다만, 전체적으로 여론에 매우 민감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보니, 당시 사회적인 분위기에 영향을 많이 받고, 유명한 게임의 경우에는 비교적 납득할 수 있는 등급 심사 결과가 나오지만 유명하지 않은 게임의 경우에는 누가 봐도 대충 보고 심사한 듯한 결과가 나오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호주에서 폭력성 때문에 판매금지를 당했던 림월드는 국내에서 무난하게 15세 이용등급을 받았고, SM 요소 때문에 스팀에서도 19세 이용가로 안내하고 있는 여성향 스토리 게임 금지된 숲의 밤은 15세 이용가 등급을 받았습니다.
적은 인원이 한번에 많은 게임을 심사하다보니, 제대로 플레이해보지 못하고 게임사가 제공한 서류와 영상만을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아서 생기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정해진 시간만 보면 되는 영화와 달리 오랜 시간 플레이해야 하는 게임을 모두 플레이해보고 등급을 결정할 수는 없겠지만, 등급을 결정하는 심사위원들이 지금보다는 더 전문적일 필요가 있어 보이네요.
개인적으로 한 아이의 아빠입장에서 봤을 때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보긴 합니다. 스팀만 보더라도 미성년자도 스스로 출생년도만 바꿔서 입력하면 아무런 제약없이 성인 게임을 쉽게 구매할 수 있으니까요. 다만, 그 기준이 왔다갔다 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진짜 없어지게 될지, 아니면 제대로 된 모습으로 개선되는 모습을 보여줄지 관심이 집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