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 만에 쓰러지는 게 보스? 김 팍 샌다!” 너무 쉬운 최종 보스들
게임에서 최종보스는 가장 중요한 존재 중 하나다. 이용자가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실력을 시험하는 마지막 관문이자, 게임의 서사를 완성하는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부분의 최종보스전은 강력한 공격 패턴과 다양한 기믹으로 이용자들을 몰아붙이며, 성취감과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가끔 김이 팍 샐 정도로 허무하게 끝나는 최종보스전도 존재한다.
기어박스 소프트웨어 FPS ‘보더랜드’의 최종 보스, ‘디스트로이어’가 그렇다. ‘디스트로이어’는 거대한 외눈에 촉수가 달린 것 같은 기괴한 생김새로 동료의 복부를 꿰뚫으며 등장한다. 최종보스에 걸맞은 웅장한 등장이다. 하지만 막상 전투가 시작되면 위압적인 모습은 싹 사라지고 거대한 샌드백만 남는다. FPS 게임인데 보스가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총 쏘는 게임에서 대상이 움직이지 않으면 상대를 저격하는 건 식은 죽 먹기다. 보스가 멀리서 촉수로 가시를 쏘며 공격하긴 하지만, 각 촉수의 관절 부분을 공격하면 촉수가 끊어지면서 훨씬 편안하게 공격이 가능해진다. 이외에도 가끔 강력한 넉백 공격을 하고 눈에서 레이저를 쏘기도 하지만 필드에 널린 엄폐물 뒤에 숨으면 공격을 맞을 일도 없다. 명색이 최종보스전인데 벽 뒤에 숨어 총알 몇 번 쏴주면 끝난다.
보더랜드 2 DLC ‘해머록 경의 대사냥 대회’에 나오는 메인 악역인 ‘나카야마 교수’는 한술 더 뜬다. 이쪽은 보스전에서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나카야마 교수’는 나름 보스랍시고 보스 전용 체력바와 함께 당당하게 등장한다. 그렇게 등장한 교수는 주인공에게 연설을 시작하는데, 중간에 중심을 잃고 계단에서 굴러 목이 꺾여 사망한다. 계단에서 구를 때마다 체력바가 팍팍 줄어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실소가 절로 나온다. 교수에 대한 공략이 ‘총알 아까우니까 총 쏘지 말고 가만히 죽게 내버려 둬라’일 정도니 말 다했다.
고전 플랫포머 액션 게임 ‘록맨 3’의 최종 보스인 ‘감마’도 허무한 보스전으로 알려져 있다. 감마는 거대한 로봇의 상반신 형태를 띤 보스로 약점이 아니면 대미지를 잘 입지 않아 어려워 보이지만, 사실 제대로 된 약점만 찾으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쉽다.
전투는 두 단계로 진행된다. 1차 형태의 ‘감마’는 ‘섀도 블레이드’나 ‘하드 너클’이 약점으로, 공격을 하다보면 감마가 2차 형태로 변신한다. 그러나 야심차게 모습도 바꾼 것 치고는 너무 약하다. 발판 위로 올라가서 ‘탑 스핀’ 한 번 사용하면 ‘감마’의 체력이 확 깎이면서 그대로 파괴된다. 말 그대로 한 방에 죽는다. 최종보스다운 위압감이나 전투의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어 상당히 허무하다.
1인칭 파쿠르 액션 게임 ‘다잉 라이트’의 밍밍한 최종 보스전도 있다. 다잉 라이트의 최종 보스는 ‘카디르 라이스 술레이만(라이스)’으로 테러, 약탈, 납치 등 악명을 떨치며 사병조직 ‘라이스’의 두목다운 면모를 보였지만 정작 그와 함께하는 보스전은 버튼 누르기로 끝난다. 일명 QTE(Quick Time Event)로, 시네마틱 컷씬 중간에 타이밍 맞춰 버튼만 몇 번 눌러주면 된다.
QTE가 나쁜 시스템은 아니지만, 최종보스전에서 긴장감 넘치는 결투를 기대하고 온 이용자들에게 버튼 클릭 몇 번으로 넘어가는 결말은 맥이 빠질 수밖에 없다. 지금도 직접 조작을 원한다는 이용자의 리뷰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아케이드 액션 게임 ‘천지를 먹다 2 적벽대전’의 숨겨진 최종보스 조조 역시 허무한 최종 보스의 한 축을 담당한다. 이용자는 마지막 스테이지에서 여포를 쓰러뜨린 후 단 15초(아시아판 기준) 안에 조조를 잡아야 유비군의 천하통일 엔딩을 볼 수 있다. (실패하면 삼국정립 엔딩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시간제한이 있기 때문인지 조조는 매우 약하다. 앞서 등장했던 보스인 여포의 체력이 600이 넘는데, 조조의 체력은 고작 104에 불과하다. 폭탄을 던져 견제하긴 하지만 폭탄 자체에 대미지는 없고,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잠시 눕게 만드는 정도라 침착하게 대처하기만 해도 손쉽게 처치할 수 있다. 앞서 강력한 공격력과 긴 리치, 일반 몬스터까지 대동해 이용자에게 극강의 난도를 선사한 여포에 완전히 묻혔다는 평이다.
최종보스전이 너무 어려워도 문제가 되겠지만, 너무 쉬워도 허무함만 남기기 마련이다. 난도를 조절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긴장감과 성취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적당히 매운’ 최종보스전이 더욱 많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