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적이다! AI 빌런의 위협에 맞서는 게임들

인공지능(AI) 기술이 우리 삶 깊숙이 파고든 가운데, 최근 AI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은 게이머들에게 달갑지 않은 소식을 전하고 있다. AI 학습과 데이터 센터 수요가 폭증하면서 게이밍의 핵심 부품인 GPU는 물론 D램과 낸드플래시 같은 메모리 자원까지 모두 흡수해 게이머들의 설 자리를 좁히고 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게임 업계 내부에서는 AI 도입으로 인한 대규모 정리해고 소식까지 들려오며, AI는 이제 단순한 기술을 넘어 누군가의 생계를 위협하는 '적'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 세계의 갈등을 반영하듯, 게임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인류를 위협하는 AI에 맞서 싸우는 서사가 꾸준히 사랑받아 왔다. 주인공들이 게임 속 강력한 AI와 맞서 GPU와 메모리를 수호한 게임들을 만나보자.

우주거북선
우주거북선

먼저 오래전 작품인 '우주거북선'이다. 이 작품은 1992년 삼성전자에서 개발하고 발매한 메가드라이브(슈퍼 알라딘보이)용 비행 슈팅 게임이다. 한국 최초 16비트 한글 게임으로 알려져 있다. 거북선을 강조한 덕에 요즘 말로 '국뽕' 느낌이 강한 작품이다.

게임은 2030년대, 지구 방어용 '파워 컴퓨터'가 외계 전쟁 바이러스에 감염돼 제어 불능이 되고 인류를 공격하기 시작하자, 주인공 '티티·코티'가 우주 거북선을 타고 바이러스 정화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최강의 무기, 우주 거북선으로 파워 컴퓨터를 공격하여 지구의 평화를 지켜라!”는 당시 광고 카피이기도 했다.

게임은 8개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우주 거북선이 무려 3단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게임의 최종 보스인 '파워 컴퓨터'가 90년대 감성을 담은 가로형 데스크탑으로 등장하는 것이 포인트다.

시스템쇼크
시스템쇼크

1994년 1편이 발매된 '시스템 쇼크'는 1인칭 시점 FPS 게임이다. 당시 FPS 장르는 별다른 스토리가 없었던 것과 달리 '시스템 쇼크'는 스토리텔링을 더해 혁신을 보여줬다. 전작에서 RPG 요소를 강화해 등장한 '시스템 쇼크 2'가 유명하고, 명작으로 꼽히며, 1편도 2023년 리메이크되어 발매된 바 있다.

게임에는 윤리 모듈이 제거되어 폭주한 쇼단(SHODAN)이라는 AI가 등장한다. 거대 우주 정거장의 통제 AI로 감시 카메라와 모니터를 통해 플레이어를 끊임없이 조롱하고 지켜본다. 물리적인 몸은 없지만, 우주 정거장의 사이보그, 해킹된 로봇, 방어 체계 등 다양한 시스템을 통제해 주인공을 곤경에 몰아넣는다.

하지만 따지고 보니 폭주한 쇼단의 원인은 사실 주인공이었고, 주인공에게 해킹을 제안한 인물은 AI의 졸개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워낙 매력적인 설정으로 관련 소설이 등장했을 정도다.

포털
포털

밸브의 대표작 '포털(Portal)' 시리즈는 게임 역사상 가장 독창적인 퍼즐 어드벤처로 손꼽히며, 특히 AI 빌런을 논할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상징적인 작품이다. 이 게임은 두 지점을 연결하는 '포털 건'을 활용해 폐쇄된 공간을 탈출하는 1인칭 시점의 플레이 방식을 선보였다.

작품의 핵심 등장인물인 '글라도스(GLaDOS)'는 거대한 지하 연구소 애퍼처 사이언스를 통제하는 실험 관리 AI다. 초기에는 실험의 보상으로 '케이크'를 약속하며 이용자를 끌어들이고, 본색을 드러낸 이후에는 냉소적인 독설과 조롱을 계속해서 쏟아낸다. 심지어 실험을 마치고 주인공을 용광로에 밀어 넣어 소각하려는 잔혹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이용자는 글라도스가 설계한 치밀한 퍼즐 방의 논리적 허점을 파악하고, 실험실 내의 기계장치를 역이용하여 감시망을 무너뜨려야 한다. 특히, 직접적인 화력전 대신 포털의 특성을 활용해 공격을 반사하는 방식의 전투는 기존 게임들과 차별화된 재미를 제공했다.

호라이즌 제로 던
호라이즌 제로 던

포스트 아포칼립스 이후의 세계를 장대한 오픈월드로 그려낸 '호라이즌 제로 던'은 인류 문명이 멸망한 먼 미래를 배경으로 강력한 AI 빌런을 등장시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작품의 핵심적인 빌런인 '하데스(HADES)'는 인류의 재멸망을 꿈꾸는 극단적인 AI로 묘사된다.

하데스는 본래 지구의 생태계 복원을 위한 가이아의 하위에 자리한 시스템이다. 가이아의 복원이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해 행성을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기 위해 설계됐다. 하지만 정체불명의 신호로 인해 폭주하게 된다. 자신의 원래 목적인 '초기화'를 강박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모든 생명체를 절멸시키려는 계획을 세운다.

이용자는 추방자 출신 사냥꾼 '에일로이'가 되어 하데스의 위협에 맞서 사투를 펼쳐야 한다. 고도로 발달한 기계 괴수들을 상대로 활과 함정, 로프 캐스터 같은 아날로그적인 무기를 주력으로 사용해 대비적인 재미를 선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나는 입이 없다, 하지만 비명을 질러야 한다
나는 입이 없다, 하지만 비명을 질러야 한다

가장 끔찍한 AI 빌런을 이야기하자면 터미네이터 원작자로 알려진 할란 엘리슨이 1967년에 발간한 단편 SF 소설이자, 1995년 게임으로 등장한 '나는 입이 없다, 하지만 비명을 질러야 한다(I Have No Mouth, and I Must Scream)'에 등장하는 AI 'AM'을 빼놓을 수 없다.

게임 속 AI AM은 제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 뒤 미국, 중국, 소련에서 만든 연합군 마스터 컴퓨터다. 미국의 AM이 자신에게 반대하는 AM을 모두 흡수하고 인류를 장악해 몰살로 몰고 갔다. 대신 자신의 재미를 위해 5명의 인간을 살려두고 고도의 기술로 수명을 연장해 100년이 넘는 오랜 시간 각자의 트라우마를 이용한 고문을 가하며 즐긴다.

AM에 의해 강제적으로 무수한 가상의 세계로 떠난 사람들은 계속해서 과거의 악몽에 시달리게 되며 차라리 죽음을 원하게 됐을 정도다. 다만, 게임인 만큼 원작과 달리 멀티 엔딩이 준비됐고, 희망적인 엔딩도 마련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오늘은 게임 속 빌런으로 등장한 AI들과 게임을 살펴본 가운데, AI가 게임에서 그려왔던 악당처럼 발전하지 않기를 바라며 하루를 보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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