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선 저 일본이 신기루처럼 보인다.' 출간
일본대중문화 개방과 관련하여 의미있는 책이 발간이 되었다. 이 책은 수준높은 유명 애니메이션 작품들의 작중배경과 실제의 일본현대사 및 사회상을, 한국의 상황과 관련시켜 비교분석한 컨셉의 책으로 평가가 높은 극장판 애니메이션들과 비디오게임의 관계에 대해서도 파헤쳐 놓은 책이다. ( 게임뉴스코너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나 좋은 책을 게임그루 가족에게 소개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아 기사화 하였습니다. )
여기에선 저 일본이 신기루처럼 보인다. 국내에 나와있는 책들 중에 '일본'이라는 키워드 하나만으로 찾을 수 있는 책은 얼마나 될까? 무려 2,000여권이 넘는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온갖 관심은 단순한 어학책에서부터 문화 소개 비평서, 역사와 사회 분석서를 비롯한 외국 저자들의 번역서까지, 출판사들에게 항상 다양한 소스거리를 제공하여 왔다. 특히나 일본의 대중문화를 소개하는 책들은 책을 안 읽기로 유명한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관심이 유일무이하게 집중되는 분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은 단연 최고라 할 만하다. 예전에는 중고등학생층 정도를 겨냥했던 책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요새는 그 타깃층과 내용의 수준을 한 층 더 높여, 대학생 이상이나 이미 30대에 접어든 1세대 마니아 층까지 섭렵하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계속되는 독자들의 젊은 욕구에 비해 전문인력이 투입된 기획출판물이 부족한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이러한 젊은이들의 문화코드를 이해하고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정보와 자료를 통해 그들의 갈증을 채워주고자 설립된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서적 전문 브랜드 써드아이에서는 기획출판물 1호로<여기에선 저 일본이 신기루처럼 보인다>를 출간하였다. 제목부터 도발적인 냄새가 나는 이 책은, 일본의 2차 대전 패망직후의 시점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훑어 내려가면서, 그러한 시대상을 반영하는 애니메이션 작품에 대한 분석을 곁들이는 독특한 서술방식을 취하고 있다. 실제로 이 책의 제목인<여기에선 저 일본이 신기루처럼 보인다>는, 얼마 후면 우리나라에서도 개봉할<공각기동대>를 만든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극장판<기동경찰 패트레이버 2>의 작중대사에서 따온 것이다. 지금까지 나왔던 모든 일본 애니메이션 관련 서적들이 단순한 작품 분석이나 소개에 그친 것에 비해, 이 책은 오히려 일본의 역사적 사실과 감독들의 성장배경에 초점을 두어, 수준 있는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과거 패망의 시점을 [D-100]으로 규정하고, 신기루 소거의 현재 시점, 즉 [D±00]을 향해 점점 현재의 일본모습을 정리해 내려오는 구성이나, 일본의 미래에 대해서는 [D+1, D+2, D+3]이라는 아이콘을 쓴 점도 이채롭다. 제1장은<제국의 길, 그리고 패망>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바로 얼마 전까지도 민감한 사안이었던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과 관련하여 미야자키 하야오가 있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1988년작<반딧불의 묘>란 작품을 집중분석하고 있다. 일본의 역사적 관점에서는 항상 피해자일 수 밖에 없는 현실, 그리고 그러한 현실 속에서 숨겨질 수 밖에 없었던 가해자로서의 일본의 모습을 교묘하게 모두 담고 있는 이 작품은 국내에는 아직 정식 소개된 적은 없다. 하지만 저자의 냉철한 분석력과 세세한 정리 덕분에, 이 애니메이션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무리 없이 이해가 가능하다. 제3장 1절에서 다루는<인랑>의 경우는 2000년에 국내에서도 극장 개봉되어 우리에게 친숙한 작품이다. 일본의 최대 격동기였던 1960년대. 당시의 복잡다난했던 시대를 직접 경험하며 살아온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사회의식이 고스란히 담긴 이 난해한 작품은, 당시의 일본사회를 이해하면서 보아야만 제대로 된 해석이 가능하다. 이미 이 작품을 감상한 사람들이라면 오히려 이 책에서 밝혀지는 새로운 문화코드들에 기대를 걸어도 좋을 듯하다. 일본의 미래를 다루는 마지막 장의<공각기동대>는 얼마 후 개봉을 앞두고 있어 더욱 흥미를 끈다. 이미 인터넷 상에 엄청난 마니아들을 형성하고 있는 이 작품은 일본의 미래를 이미 1995년에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는 점에서 그 엄청난 의의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실제 현실의 장면과 그것을 애니메이션 속에서는 어떤 식으로 풀었는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하여 같이 배치한 자료이미지들은, 현실세계와 애니메이션과의 관계를 더욱 좁혀주어 이 책의 재미를 증가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이 책은 단순히 꿈과 환상만을 강조하는 듯이 포장되어 당연스럽게 허구라고만 생각했던 일본 애니메이션이, 이미 영화를 능가하는 현실반영의식과 역사의식을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러한 주장은 약간 거칠기는 하지만, 저자의 신념있는 필체와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구체화되어 논리 정연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번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최근 막을 내린 베를린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인 황금곰상을 수상한 것으로 미루어 봐도 알 수 있듯이, 이미 세계가 공감하고 인정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깊이는, 그것을 만드는 감독들이 겪었던 역사적 사건들이나 시대상과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이 책의 뒷부분에 정리되어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