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칼과 활만으로 이루어 지지 않는다
경영과 전쟁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
어렸을 때 친구가 빌려준 시디로 처음 접했던 세틀러2는 당시 어떤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도 볼 수 없었던 효율적인 자원 관리와 안정적인
생산 라인을 요구했었고 전투는 단지 도시 경영을 확인하는 과정일 뿐이었다. 그러나 거의 10년 만에 다시 접한 세틀러6은 필자가 가지고 있던
세틀러에 대한 이미지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잘 짜여있는 경제 시스템과 아기자기한 캐릭터들의 움직임은 여전했지만, 더 이상 전투가 경영의
부속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도시를 발전시키고, 자원을 관리해야 되는 등 전반적인 게임 흐름의 초점은 전쟁으로
넘어가 있었다.
귀찮게 구는 놈들 따위 쓸어버리고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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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경제가 받쳐주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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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없이 밀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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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 패배
약간은 황당한 난이도 설정, 그러나 지루하지 않은 도전과제들
세틀러6의 스테이지는 총 16개로 구성되어있다. 대부분의 게임들은 난이도 구성을 스테이지1~ 16까지 순차적으로 어려워지게끔 조절해서
플레이어가 포기하지 않고 차근차근 클리어 해 갈수 있게 배려해 주는데, 아무래도 시나리오를 강조하다 보니 그러한 난이도 구성이 이루어지지
않은 듯 했다. 스테이지 1~7까지는 차근차근 새로운 기능들이 나오고, 점점 요구사항이 많아지는 등 예상했던 대로의 난이도 증가 폭을
보여줬으나, 할머니들의 할머니를 만족시키기 위해 크림슨 사바타와 경쟁하게 되는 스테이지8과 레드 프린스에게 포위당한 주아하르 시를 구출해야
하는 스테이지10의 난이도는 아마도 리뷰가 아니었다면 게임을 그만두었을 지도 모를 정도였다. 특히 스테이지10의 경우는 패배 조건이 명확하지
않아서 다 이겨가고 있는데 뜬금없이 패배하기도 하고, 할 때마다 타이밍이 바뀌기도 하는 등 생각보다 레벨디자인 면에서 빈틈이 보였다. 그러나
그 두 개의 스테이지를 제외한 나머지 스테이지들은 세틀러만의 특징적인 경제 시스템을 잘 활용해서 적절한 난이도 설정이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마지막 스테이지인 스테이지16까지 계속해서 새로운 기능들이 추가되고, 스테이지 클리어 조건도 단순히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퀘스트 형식으로 주어진 조건들을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스테이지 하나 하나가 플레이 타임이 3시간 정도씩은 되는 데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게 엔딩까지 꾸준히 플레이 할 수 있도록 배려되어 있었다.
불공평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끼게 해주는 스테이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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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스테이지 보다 더 어려웠던 스테이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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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평가가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세틀러6은 경영+전략 시뮬레이션으로서 그 어떤 게임보다 높은 경지에 올랐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세틀러2의 강렬한 과거의 이미지가 남아있어서 도시 경영에만 치중하다가 패배도 하고, 전략적인 요소들을 활용하지 못했었는데, 공성무기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중 후반부터 세틀러6만이 가진 강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전략 시뮬레이션들도 고급 유닛을 생산하려면 이것저것 관리해 줘야 하는 것도 많고, 테크트리에 신경 써서 건물이나 유닛을 배치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한두 가지의 자원만 관리해 주고, 자원이 생기는 대로 테크트리를 올리기만 하면 되는데 세틀러는 그러한 테크트리를 올려나가는 과정 그 자체가 바로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예를 들어 가장 높은 테크를 가진 투석기를 생산하려면, 투석기를 생산하기 위한 공성무기 제작소가 필요하고, 공성무기 제작소에서 투석기를 제작하는데 필요한 철이 필요하다. 철을 생산하려면 철광산 옆에 철광소를 지어야 하며, 철광소를 지으려면 나무가 필요하고, 나무는 벌목소에서 채집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대부분의 전략 시뮬레이션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러한 과정들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가장 큰 차이점이 드러난다. 일단 벌목소의 나무꾼과 철광소의 광부가 일을 하려면, 음식이 필요하고, 음식은 푸줏간이나 훈제소, 제빵소, 낙농장 같은 음식 관련 건물에서 생산된다. 또한 음식 생산자가 음식을 가공하려면, 우선 동물고기나 생선, 곡물, 우유 같은 원료가 필요하다. 게다가 일꾼들이 일을 하려면 음식뿐만 아니라 옷이나 위생용품, 오락거리 같은 부수적인 것들도 필요하다. 만약 이중에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파업을 할 것이고, 도시의 경제는 마비되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다. 마치 어렸을 때 학교에서 사회시간에 배운 유통과정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실제(과거)사회 경제의 모습을 리얼하게 표현해 놓은 것이다. 물론 그 덕분에 세틀러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어려움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다행히 화면구성을 대부분 아이콘화 하여, 매우 복잡한 내용을 쉽게 알아볼 수 있게끔 잘 정리해 놓았다. 다만 아이콘에 마우스를 올려놓았을 때 나타나는 툴팁(설명)이 바로 바로 나타나면 좋았을 텐데 1~2초 정도의 지연시간이 있어서 아이콘의 의미를 다 익히지 못했을 때는 약간의 짜증을 유발할 수도 있다.
멧돼지를 잡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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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줏간에서 가공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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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소비한다
부드러운 사운드 하지만 너무 부드럽다...
세틀러6의 배경음악은 대부분 환경 음(일하는 소리나 새소리, 물 흐르는 소리 등)과 잘 어울리게끔 자연스러우면서 정적인 부드러운 음이
대부분인데, 한 스테이지를 오랫동안 해야 되는 세틀러의 특성상 귀에 거슬리지 않는 편안한 음이 어울리기는 하나, 전투가 별로 없는 생산/배달
퀘스트 위주의 스테이지에서는 약간 졸리기 까지 하다. 다행히 환경 음이나 유닛 들의 음성, 기타 효과음 등 보조해주는 사운드가 많아서 도시를
관찰하거나 할 때는 잠이 올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좀더 강약이 있는 배경음악을 사용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켜보는 재미와 행동하는 재미
하면 할수록 알게 되는 복잡한 생산시설 간의 상호연관 관계와 자원 부족 문제, 그로 인해 바빠지는 손놀림 속에 컴퓨터의 견제까지 계속되는
상황이 3시간 동안 이어진다면 아마도 굉장히 피곤할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세틀러에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그러한 피로도를 조절할 수 있게끔
되어 있었다. 게임 진행속도를 1배속/2배속/3배속으로 손쉽게 조절할 수 있도록 해놓아서 플레이어가 게임 중에 진행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판단되면 속도를 올려서 빠르게 진행할 수 있게끔 해놓았는데, 세틀러의 특성상 자원 채집이나 가공을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소비되는 긴 시간을
단축 시킬 수 있어서 매우 편리했다. 그리고 스테이지 진행 중에 끊임없이 제시되는 퀘스트들은 캠페인 모드 전반에 걸친 스토리와 연관되어 매우
짜임세 있게 잘 만들어져 있어서 대부분의 스테이지가 클리어 하는데 3시간씩은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시간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세틀러 시리즈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아기자기한 캐릭터들의 동작이 세틀러에 빠져들게 만드는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수렵소의 사냥꾼이 멧돼지를 활로 쏴 잡아서 고기를 얻은 다음 마을의 창고에 가져다 놓으면, 푸줏간의 주인이 고기를 가져다가 칼로 다지고,
분쇄기에 갈아서 소시지를 만들어 가게 앞에 진열해 놓고, 진열된 고기를 다른 건물의 일꾼이 가져가는 등 각 과정을 디테일하게 잘 표현해
놓았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애니메이션들은 건물을 건설하고 영토를 확장하고, 자원을 관리하는 등 도시 관리자의 입장에서 무언가를 진행 중일
때는 잘 모르다가, 어느 순간 게임의 템포가 느슨해질 때 건물 하나를 줌인 해서 관찰하면 깨닫게 된다.
당신을 도와줄 충직한 기사들. 하지만 누군가 배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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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축 레드프린스와 그의 심복 크림슨 사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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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다. 그렇지만 빛난다
참고로 필자는 세틀러3와 5사이의 시리즈들은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동안 세틀러가 어떤 식으로 변화해 왔는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번
세틀러6을 해보니 아마도 세틀러의 가장 큰 매력인 아기자기한 캐릭터 애니메이션은 변함이 없었던 것 같다. 도시 경영에다가 전략 시뮬레이션까지
합쳐 놓아서 굉장히 복잡하고 짜증이 날것 같은 조합을 시각적인 즐거움과 깔끔하게 정리된 인터페이스로 승화하는 세틀러식 표현법은 6번의
시리즈에 걸쳐서 완성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틀러의 가장 큰 특징인 경제, 건설 시스템에 대한 게임 내 설명이 다소 부족하여 이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게이머에게는 그것이 굉장히 큰 벽으로 다가와 게임의 진정한 재미를 느끼지도 전에 마우스를 놓아버리는 일이 생길까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사라져가는 패키지 시장에 깔끔한 한글화를 해서 발매한 건 반가운 소식이지만, 달랑 DVD박스 하나에 게임타이틀과 설명서만
들어있는건 상당히 아쉽다. 정품을 구매하는 게이머들를 위한 조그만 일러스트나 OST라도 들어있다면 좀 더 구매의욕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하지만 이러한 단점들을 상쇄하고도 남을 게임성은 이 게임의 가장 큰 장점이다. 온라인 게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엔딩을 보고
나면 한동안 마우스에서 손이 떨어지지 않을 만큼 감동의 물결을 가슴으로 맛볼 수 있다. 그동안 세틀러라는 소문만 들어보고 아직 게임을 플레이
해보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정말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는 우물 속 보석같은 명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