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e스포츠 과연 중흥기인가?'-1부
취재 = 조학동 게임동아 기자 (igelau@gamedonga.co.kr)
김남규 게임동아 기자 (rain@gamedonga.co.kr)
국내에서 출발한 세계대회 월드사이버게임즈(WCG)의 성공적인 해외 진출, 월드e스포츠게임즈(WEG)의 새로운 출발, 억대 연봉의 프로게이머 등장, 부산에서 열린 e스포츠 대회 10만 관중 돌파 등 '스타크래프트'로 시작된 e스포츠 대회가 이제 하나의 신드롬을 넘어 사회현상 내지는 야구, 농구와 같은 정식 스포츠 대열에 들어서는 중흥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즉 특정층만 즐긴다든지, 많은 관람객들을 수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부실한 시설 등 사소한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몇몇 인기 선수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열악한 선수층, 어린 선수들의 군대 문제, 화려한 이면에 의해 감춰진 프로게이머의 열악한 환경 등이 그것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온지 10년이 다 된 '스타크래프트'를 대체할 게임이 없다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스타크래프트'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던 블리자드의 '워크래프트3'도 종족 불균형과 승부 조작 파문 등으로 대체게임에서 멀어져갔으며 해외에서 2000만명이 즐기고 있다는 '카운터 스트라이크' 등 1인칭 슈팅 게임도 국내 반응은 차갑기 그지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지금의 국내 e스포츠는 높이 올라가긴 했지만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상황인 것이다.
e스포츠의 최대 문제점 - 대체 게임의 부제
사이버의 한계를 드러낸 '피파' 시리즈
e스포츠가 태동하던 90년대 후반에 '스타크래프트' 만큼은 아니더라도 큰 인기를 누리던 게임이 바로 '피파' 시리즈다. 이 게임은 하나의 종교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많은 마니아층을 만들어냈다. 특히 '스타크래프트'처럼 유닛 이름이나 경기 규칙을 따로 배울 필요가 없고 경기 중계도 일반 축구와 똑같은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초반에는 e스포츠를 이끌어가는 쌍두마차 역할을 담당했었다. 하지만 2000년에 들어서면서 급속도로 무너졌다.
이유는 다름 아닌 '피파' 시리즈로는 실제 축구의 감동을 재현할 수 없다는 것. '피파' 시리즈 자체가 약간 아케이드적인 성격이 강하기도 했지만 게임 자체에 한계가 있어 프로게이머들의 실력이 향상되면 향상될수록 축구가 아닌 마치 정해진 루트를 반복하는 슈팅 게임처럼 경기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위닝' 시리즈에 밀려 판매량이 줄어든 것도 원인이겠지만 무엇보다도 축구를 관람하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감동의 드라마가 사이버 축구에서는 볼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워크래프트 3'의 종족 불균형, 지루한 경기 운영
'국내에서 3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스타크래프트'를 개발한 블리자드의 차기작' '지금까지 계속 실패해왔던 3D 전략시뮬레이션이지만 블리자드가 만들면 다르다' 등 발매되기 전부터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를 모았던 '워크래프트3'의 현재 모습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물론 얼어붙은 국내 패키지 게임 시장에서 50만장 이상의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기는 했지만 기대치에 비하면 형편없는 수준. 이렇게 된 데에는 크게 2가지 이유가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첫 번째로는 종족 불균형을 들 수 있다. 과거 '스타크래프트'에서도 종족 불균형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계속된 패치와 게이머들의 연구에 의해서 종족 불균형 문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다. 저그의 초반 질주, 프로토스의 강세, 임요환의 등장으로 인한 테란의 전성기, 저그의 부활로 인한 저그와 테란의 2강 체제를 보이고 있는 현재까지 계속해서 게임이 성장해온 것이다.
하지만 '워크래프트3'를 보면 게임이 출시되고 나서 지금까지 계속 '나이트엘프'가 난공불락의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휴먼, 언데드는 근근히 살아가고 있는 형편이고 오크는 아예 전멸. 이러한 종족 불균형 상황이 결국 스포츠에서는 절대 있어서는 안되는 '승부조작'이라는 극한의 상황을 낳은 것이다.
두 번째는 경기 진행의 지루함이다. 필자는 '스타크래프트'보다 '워크래프트3'를 더 재미있게 했다. 화려한 그래픽과 물량보다는 컨트롤이 더 중시되는 전략적인 전투, 그리고 영웅과 아이템을 이용한 두뇌싸움까지 블리자드의 저력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물론 '스타크래프트'보다 '워크래프트3'가 더 뛰어나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스타크래프트'의 다음 작품이라는 엄청난 부담감 속에서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게임성을 보여줬다는 얘기다.
하지만 e스포츠의 핵심요소인 방송적인 측면에서 보면 '워크래프트3'는 잘못 만든 게임이다. '워크래프트3'를 관람하는 사람은 초반에는 게이머들이 몬스터를 잡으러 다니는 것을 봐야 하고 중반에도 잠깐 붙었다가 타운포털로 도망가는 등 상당히 지루한 경기를 보고 있어야 한다. 물론 한번 크게 붙으면 '스타크래프트'보다 더 화려한 임팩트를 감상할 수 있지만 그런 장면이 한 경기에 한 번이나 두 번 정도밖에 나오지 않고 또 그 장면이 나오기까지 너무나 지루한 화면을 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문제. 실제 방송 시청률을 조사해보면 '워크래프트3' 리그를 진행하고 있는 MBC게임의 경우 '스타'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카운터 스트라이크', 전 세계 2000만명이 즐기는 게임, 그러나 국내 실정은….
전 세계 통산 2000만명이 즐기는 것으로 알려진 '카운터 스트라이크'로 대표되는 1인칭 슈팅 게임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즐기는 게임 장르라 할 수 있다. 국내의 e스포츠 열기를 무섭게 쫓아오고 있는 중국의 경우 '카운터 스트라이크' 동영상을 서비스하는 사이트가 사용자 폭주로 인해 다운되는 등 '카운터 스트라이크'야 말로 한물 간 '스타크래프트'를 제치고 e스포츠를 이끌어가고 있는 게임인 것이다. 하지만 국내 e스포츠의 관점에서 볼 때는 '카운터 스트라이크'는 '워크래프트3'보다 더 낮은 시청률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국내에서도 1인칭 슈팅 게임의 인기를 굉장히 높은 편이다. 현재 '카운터 스트라이크'는 PC방 불매 운동으로 인해서 국내에서 거의 퇴출된 것이나 다름없지만 한때 40만명, 동시접속자 10만명 정도를 기록할 만큼 엄청난 인기를 끌었었고 '카운터 스트라이크'와 비슷한 게임인 '스페셜 포스'는 PC방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현재 동시접속자 9만명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이러한 게임 인구가 방송쪽으로는 전혀 유입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하는 사람은 재미있지만 보는 사람은 그리 즐겁지 않다는 1인칭 슈팅 게임의 약점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다.
현재 방송되고 있는 1인칭 슈팅 게임의 경기 중계를 보면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다가 총 소리 조금 나고 경기가 끝나버린다. 게임을 잘 아는 사람들이 보면 저 팀의 전술이 어떤지, 저 게이머가 한 동작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등을 잘 알 수 있지만 게임을 안해본 사람들이 보면 누가 아군인지, 적군인지도 잘 모르고 누가 어떻게 이겼는지도 알 수가 없다. '스타크래프트' 역시 공부를 안하면 잘 알기 힘든 건 마찬가지지만 대규모 병력이 맞붙는 화려한 전투신으로 초보자가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반면 1인칭 슈팅 게임은 조금 움직이다가 총소리 조금 나면 바로 쓰러져버리기 때문에 초보자가 보면 뭐가 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것이다.
그럼 중국에서 게임뿐만 아니라 중계방송까지 크게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용자층이 우리나라의 '스타크래프트'에 버금갈 만큼 많기 때문이다. 게임인구가 엄청나게 많은 중국의 특성상 마니아층만을 공략해도 방송이 성공을 거둘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1인칭 슈팅 게임 마니아들이 중국만큼 많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방송 쪽에서 게임을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초보자들을 교육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 방송에서 인기가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국내 e스포츠, '스타크래프트'에 올인해야 하는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스타크래프트'를 대체하리라 기대됐던 게임들은 모두 실패를 거두었다. 이 말은 바꾸어 말하면 '스타크래프트'가 무너지는 그 순간이 바로 국내 e스포츠가 무너지는 순간이라는 것. 이것이 e스포츠 출범 후 10여년동안 국내 e스포츠 관계자들을 괴롭혀온 문제다. 물론 '스타크래프트'가 야구나 축구같이 절대 무너지지 않은 하나의 스포츠화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현재 전 세계의 추세를 볼 때 한국만의 특별한 상황을 일반화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된다.
그럼 대안은 없는 것일까? 국내 e스포츠는 계속해서 '스타크래프트'에 올인해야 하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그동안의 많은 실패가 있기는 했지만 그 실패를 거울삼아 계속해서 대체 게임을 발굴하는 것이 e스포츠가 살아날 길이다.
위의 게임들의 실패 요인을 분석해 보면 국내의 e스포츠용 게임이 갖춰야 하는 요소는 단 한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바로 관람객을 위한 게임이어야 한다는 것. '워크래프트3'도 그렇고 '카운터 스트라이크'도 그렇듯이 아무리 하는 사람이 재미있어도 방송으로 볼 때 재미가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경기 진행은 최대한 빠르고 박진감 있어야 하며 경기 규칙도 간단하면 간단할수록 좋다. 예를 들면 '카트라이더' 같은 게임이 좋은 예가 될 듯. 이 게임은 이번에 e스포츠 공인 종목으로 선정되기도 했는데 게임의 특성상 스타 프로게이머가 등장하는 것이 조금 어렵기는 하지만 국내 1000만명이라는 엄청난 인프라와 간단한 게임성, 그리고 빠른 경기 진행으로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방송사의 노력이다. 국내 e스포츠 출범 초기에는 '스타크래프트'의 복잡한 유닛관계와 경기 규칙을 일반인에게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지금까지 '스타크래프트' 대체 게임으로 선정된 게임에서는 그러한 노력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물론 열악한 방송사 사정상 인기없는 게임보다는 '스타크래프트' 경기를 한번더 방송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야구, 축구, 농구처럼 경기 내외적으로 재미있게 게임을 관람하는 법을 계속해서 일반인에게 교육했으면 지금과는 좀 다른 상황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