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프로게임단 칸, 메이저대회 최초 우승'
아침부터 내리던 가랑비 때문일까. '스타크래프트' 결승전이 벌어지는 KTF 비기 코리아 e스포츠2005 행사장 옥구공원은 한산했다.
'시흥시를 게임시티로!'라는 모토 하에 '스타크래프트''프리스타일''스페셜포스''카트라이더'의 고수 4000여명이 참여하는 초대형 대회를 야심차게 준비한 시흥시 입장에서는 나흘 내내 행사를 괴롭혔던 비가 못내 원망스러웠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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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이번 대회는 이런 비 때문에 묻힐 행사는 아니었다. 다른 종목도 초대형이었지만 '스타크래프트'의 경우 전국각지의 치열했던 지역예선을 뚫고 올라온 아마추어 5개 팀과 11개 프로팀이 포함된, 총 16개팀이 상금 4천만원이라는 큰 상금을 두고 대결을 펼쳤다는 것만으로도 이슈가 되기에 충분했다. 이런 행사가 비 때문에 한산하게 끝났다는 것은 아쉽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래도 이번 행사는 너무도 재미있는 대전이 많아, 행사에 참여한 이들을 달랬다. 특히 e스포츠 대회 사상 최초로 아마추어 VS 프로팀의 구도를 이뤄 아마추어 팀이 프로팀을 꺾고 우승하는 '칼레의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내사랑 애리팀'이 3:1로 KTF에 단 한 세트를 따내는데 성공했을 뿐, 나머지 아마추어 4개팀은 모두 3:0 완봉패 당하며 '프로의 벽'을 절감해야만 했다.
'스타크래프트' 결승무대에 오른 두 팀은 전통의 명가 '한빛 스타즈'와 '삼성전자 칸'. 현재 프로리그에서 중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는 두 팀이기에 예상외의 결승대진인 것은 사실이었다. SKT T1, KTF매직앤스, 팬택 앤 큐리텔 큐리어스 등 통신사 빅3 모두가 4강에도 오르지 못한 것과 더불어 이것은 단기리그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이변일 것이다.
결승전을 앞두고 벌어진 3, 4위전 역시 흥미로운 대진임에는 틀림없었다. 각각 한빛과 삼성에게 3:2로 석패한 POS와 GO의 대결. 양팀 엔트리에서 관심이 모아졌던 것은 단연 염보성이었다. 1990년생, 16세, 중학생의 신분으로 당당히 프로게임계에 등단해 이목을 집중시킨 POS의 보배. 데뷔한지 채 몇 달도 되지 않아 '폭풍 저그' 홍진호를 완파하며 이슈로 떠오른 염보성은 이번 대회 8강에서도 '악마토스' 박용욱을 상대로 압승을 거두며 확실한 슈퍼루키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염보성은 3,4위전에서도 팀이 0:2로 몰린 3경기에 출전해 승리 따내며 팀의 3:2 대역전극에 단초를 마련하는 등 자신이 '될성부른 떡잎'임을 과시했다.

POS 팀
그리고 또 하나, 이 3, 4위전 역전극의 마무리는 역시 POS의 '불세출의 저그' 에이스 박성준의 손끝에서 이루어졌다. 에이스 결정전에서 GO의 간판테란 변형태과 격돌한 박성준은 특유의 공격적인 스타일 보여주며 압승, 자칫 빈손으로 돌아설 뻔 했던 팀에 3위 상금 5백만원을 안겨주며 에이스로서의 임무를 완수했다.
이어 이어진 결승전. 한빛과 삼성의 결승무대 입장과 동시에 쏘아 올려진 축포와 레이저 쇼는 결승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7전 4선승제로 펼쳐진 결승전의 초반 분위기를 가져간 것은 한빛. 특히 1경기는 왕년의 한빛 에이스 박경락이 기나긴 방황을 끝내고 제2의 전성기를 시작하는 자리였다. 박경락은 전성기 시절의 '삼지안 드랍'을 보여주며 송병구에게 승리하면서 급속히 분위기를 한빛쪽으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특히 2경기 팀플마저 따낸 한빛에게 우승상금 4,000만원은 이미 그들의 손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런 수세에 몰린 삼성의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은 '백전노장' 최수범이었다. 최수범은 한빛의 에이스 김준영을 잡아내며 팀 분위기를 반전시켰고, 삼성은 4, 5경기까지 내리 따내며 3:2 역전에 성공했다. 하지만 순순히 물러날 한빛은 아니었다. 6경기를 다시 한빛이 가져오며 스코어는 3:3, 남은 것은 7경기 에이스 결정전뿐이었다.
7경기를 앞둔 상황, 7시 30분에 시작한 결승전은 이미 11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고 제법 쌀쌀한 날씨에 가랑비마저 내리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옥구공원을 뜨는 관객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양 팀 감독, 장고의 장고 끝에 에이스 결정전에 출전시킬 카드를 꺼내들었다. 발표된 엔트리는 한빛의 김준영 저그와 삼성의 변은종 저그. 대미를 장식할 결승전의 에이스 결정전은 짧고 굵은 저그전으로 결정됐다.

변은종 선수
경기가 시작되고, 무대 중앙의 대형 모니터를 응시하는 수많은 눈들은 각자의 소리 없는 기도를 끊임없이 되뇌이고 있었다.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울 수밖에 없는 그 엄혹한 승부의 세계, 사투 뒤에 찾아올 극명한 희비의 교차를 아는 탓에 결승전의 7차전은 차라리 엄숙한 분위기였다. 승부는 단 일합. 스파이어가 완성되기 직전의 타이밍, 변은종의 저글링들이 김준영의 저글링들을 순식간에 집어삼킴과 동시에 모니터에 투사되는 것은 단 두 글자였다. 'GG'.
수많은 불꽃이 피어올라 시흥의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으며 삼성칸의 우승을 축하했다. 그리고 떨어지는 불꽃들은 승자와 패자의 눈에 눈물이 되어 흘렀다. 팀 창단 이래 처음 진출해 본 4강, 그리고 첫 우승. 그동안 만년 중위권이라는 지긋한 꼬리표를 떼어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던가.
삼성칸을 이끌어 온 여장부 김가을 감독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릴 뿐, 인터뷰 마이크에 낼 수 있는 소리는 그저 목 맨 흐느낌 뿐 이었다. 관중들은 큰 박수로 승자를 축하하고 패자를 위로했다. 게임을 즐기고 e스포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되는 순간이었다.
행사가 끝나자, 아까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열심히 무대장치와 설비들을 정리하고 챙기는 분들. 스포트라이트는 조금도 받지 못하지만 게임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을 위해 음지에서 묵묵히 애쓰시는 많은 분들. 이번 대회 준비를 위해 궂은 날씨 속에서도 소임을 다해주신 e스포츠 협회 여러분과 방송 관계자 여러분, 그리고 큰 장을 마련해준 시흥시에게 박수를 치며 대회장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e스포츠 협회가 주최한 'KTF 비기 코리아e스포츠 대회는 막을 내렸다. 모든 격전이 끝나고 내일이면 다시 한산해질 새벽의 옥구공원을 바라보며, 기자는 그리운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 뒷가에로 삼섬 '칸'의 웃음 섞인 울음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