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포르노의 상관관계

"게임에서의 스토리는 포르노의 그것과 같다. (또는 최소한 이런 유형의 게임에서는) 있으면 좋지만, 사실 그다지 중요하진 않다. (The story in a game (or at least, a game of this type) is like the story in a porno. You expect it to be there, but it's really not that important)"

- Id Software "존 카멕 (John Carmack)"

존 카멕과 존 로메로, 그들의 이유 있는 결별

현존하는 최고의 천재 프로그래머이자 실질적으로 FPS 장르를 개척한 선구자로 인정받으며 세계 최고의 게임 개발자 중 한 사람으로 손 꼽히는 존 카멕. 전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게임 학회로 손 꼽히는 AIAS(Academy of Interactive Arts and Sciences) 명예의 전당에 4번째로 그 이름을 올릴 정도로 존 카멕의 업적은 이미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입증되었으며, 그의 명성에도 조금도 지나침이 없다. 그런 그가 어째서 쉽사리 납득할 수 없는 이런 문제의 발언을 한 것일까? 스토리가 있든지 없든지 아무도 신경조차 쓰지 않는, 그저 보는 이의 성적 욕구만 충족시켜주면 그만인 저질 포르노와 비교될 정도로 정녕 게임의 스토리가 고작 그 정도의 역할과 비중밖에는 안 된단 말인가?

존 카멕은 그 시작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FPS 장르만을 고집해온 게임 개발자다. 그의 손에서 FPS 장르가 비로소 완벽한 모습으로 탄생하였으며, 지금까지 FPS 장르의 역사는 그에 의해서 대부분 쓰여져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는 FPS 장르에 있어서 만큼은 신화적인 존재임과 동시에 그 자체로 이미 그 역사의 대변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그의 배경을 감안한다면 그가 그런 발언을 했다는 것도 그나마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FPS 장르는 특성 상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액션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타 장르에 비해서 스토리의 비중이 낮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게임 개발자이기 전에 뼛속까지 기술자였다. 그것도 세계적인 그래픽 칩셋 회사들이 자신의 뒤를 따라오게 만들 정도로 그는 항상 시대를 앞서 가는 최고의 기술자였다. 그가 3D 게임 엔진을 하나 만들면 그것이 업계에선 사실 상 표준으로 인식될 정도로 그는 예나 지금이나 현존하는 최고의 천재 프로그래머로 대접을 받고 있다. 그런 그의 성향까지 감안한다면 비로소 그가 어째서, 도대체 왜 그런 발언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실제로 지금까지 id Software에서 존 카맥의 지휘 아래 개발됐던 모든 FPS 게임들은 그 게임의 완성도와 기술력 면에서는 하나같이 최고의 평가를 받았었지만 스토리는 단 두 줄로 요약이 가능할 정도로 스토리 면에서는 심각할 정도로 빈약했었으며, 더 나아가 게임 디자인 측면에서도 타 게임에 비해 부실했던 적이 많았다. 결국 존 카멕에게 있어서 스토리는 그저 게임의 설정을 위한 구실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마치 포르노의 그것처럼 존 카맥에게 있어서 게임의 스토리는 최소한 이런 유형의 게임에서는 불필요한 존재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존 로메로와 얽힌 재미난 일화가 한 가지 있다. 존 로메로는 id Software 설립 초기부터 존 카멕과 함께 해 온 게임 디자이너 겸 프로그래머로서 존 카멕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그런 사이에 있던 단짝이었다. 하지만 "퀘이크2 (Quake2)"의 개발이 끝난 직후부터 둘의 사이는 갑자기 벌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존 로메로는 id Software를 퇴사하기에 이르는데, 그 이유가 게임 개발에 있어서 둘의 의견 차이 때문이었다고 한다. 존 로메로는 프로그래머이기 이전에 게임 디자이너였기 때문에 좀 더 게임 디자인과 스토리에 힘을 기울여 게임을 개발하고 싶어했지만, 뼛속까지 기술자였던 존 카멕이 이를 극구 반대했다는 것이다. 끝끝내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 한 두 사람은 결국 이 일을 계기로 완전히 갈라서게 되고, 존 로메로는 id Software를 나와 스스로 Ion Storm이라는 개발사를 차리게 된다.

최고의 파트너에서 한 순간에 다른 길을 걷는 경쟁자로 변해버린 두 사람, 누구의 생각이 옳은가를 놓고 대결 아닌 대결을 벌이게 된 두 사람의 행보에 당시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었다. 그렇다면 과연 그 대결의 승자는 누구였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은 존 카멕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존 카멕은 퀘이크3로 승승장구하며 또 한 번 자신의 존재 가치를 세상에 가장 이상적인 방법(판매량, 그리고 평가)으로 입증시켰지만, 스스로 개발사를 차리면서까지 자신의 생각이 옳았음을 증명하려 했던 존 로메로의 야심작 "다이카타나(大刀)"는 희대의 괴작이라는 혹평 속에서 소리 소문 없이 어둠의 저 편으로 사라져갔다. 이 뼈아픈 실패로 인해 재정이 극도로 악화된 존 로메로는 자신의 애마였던 페라리를 경매에 내놓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지만, 존 카멕은 퀘이크3의 성공으로 부와 명성을 한꺼번에 거머쥐게 된다. 게임에서의 스토리는 포르노의 그것과 같다던 존 카멕의 완벽한 승리였던 것이다.


현존하는 최고의 천재 프로그래머,존 카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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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카멕에게 승리를 안겨준 퀘이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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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괴작으로 평가 받는 다이카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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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장에 모습을 드러냈던 존 로메로의 페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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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존 카멕이 옳았다?!

존 카멕은 존 로메로와의 대결에서 분명 완벽하게 승리했다. 하지만 존 카멕은 그저 틀리지 않았을 뿐 결코 옳았던 것은 아니다. 존 로메로와의 대결에서 존 카멕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존 로메로가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지, 결코 존 카멕이 옳았기 때문은 아니다. 바로 이를 증명하는 것이 존 카멕이 가장 최근에 내놓았던 야심작 "둠3 (Doom3)"의 흥행 성적이다.

퀘이크 시리즈로 세계적인 게임 개발자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한 존 카멕은 지난 2002년 둠 시리즈의 정통 후속작 둠3를 E3에서 발표했다. 당시 발표된 둠3의 스크린샷 한 장에 회장에 있던 사람들은 물론 전 세계가 경악했었다. 정말 이것이 현재의 기술로 실현 가능한 그래픽이냐며, 정말 이런 그래픽이 실시간으로 구동되는 거냐며 전 세계가 흥분했었다. 희대의 천재 프로그래머인 존 카멕은 또 한 번 시대를 앞서 갔던 것이다. 이 때부터 둠3는 최고의 기대작으로 큰 관심을 모았었다. 하지만 2004년, 드디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던 둠3는 기대 이하의 평작에 불과했다. 압도적인 기술력을 뿜어내며 게이머들을 끌어들이는데 까지는 성공했지만, 게이머들을 붙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본 둠3는 게임에서의 스토리는 포르노와 같다고 말한 존 카멕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기술력 덩어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 곳엔 스토리도 없었으며, 꽉 짜여진 게임 디자인도 없었다. 결국 둠3는 세상을 경악하게 했던 그 시작과는 달리 다소 초라한 결말 속에서 사라져갔다. 반면, 동일 장르의 경쟁작 중 하나였던 "하프라이프2(Half-Life2)"는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장이 팔려나가며 기염을 토했고, AIAS에서 매년 선정해 발표하는, 게임계의 아카데미상으로도 불리는 "Game of The Year 2004"에서도 올해의 게임상을 비롯해 총 9개 부문을 휩쓸며 최고의 게임으로 등극했다. 하프라이프2는 기술력도 기술력이었지만 무엇보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섬세한 레벨 디자인과 스릴러를 연상케 하는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라인으로 게이머들을 사로잡았다.

게임에서의 스토리는 포르노와 같다고, 최소한 이런 유형의 장르에서는 그렇다고 말했었던 존 카멕은 퀘이크3를 통해서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존 로메로에게서 승리했었지만, 결국 마찬가지로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하프라이프2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세상은 존 카멕에게 미소는 보였지만 그에게 웃음을 보여주진 않았던 것이다.


기대 이하의 평작이었던 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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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를 열광시킨 하프라이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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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시대는 변했다

과거에 기술력은 게임을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였다. 특히, 2D에서 3D로 게임의 패러다임이 옮겨가던 때에 이러한 현상은 특히 두드러졌었다. 단지 3D라는 이유만으로 게이머들에게 커다란 관심을 받던 그런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미 시대는 변했다. 기술이 상향 평준화됨은 물론 기술의 발전 가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면서 게임에 있어서 기술력의 차이는 이제 옛날만큼 큰 장점으로 부각되지 않는 시대인 것이다. 이제 기술력으로 승부를 거는 것은 호랑이의 꼬리를 잡고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위험천만한 일이 되어버렸다. 존 카멕이 과연 언제까지 고집스러운 행보를 계속할진 알 수 없지만, 그는 아직까지 최소한 틀리진 않았다. 하프라이프2 앞에서 완벽하게 무너져 내렸지만, 존 카멕이 누구인가. 현존하는 최고의 천재 프로그래머이자 항상 시대를 앞서 갔던 기술자가 아닌가. 그는 여전히 게임에서의 스토리는 포르노의 그것과 같다고 거침없이 말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을 가진 남자고, 틀린 것도 틀리지 않게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최고의 능력을 가진 남자다. 다른 누구도 아닌 존 카멕이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틀리진 않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대를 앞서 갔던 그가 시대와 동일선상에 서게 되는 그 날, 그는 비로소 틀리게 될 것이며 세상도 더 이상 그에게 미소조차도 보여주지 않게 될 것이다. AIAS 명예의 전당에 최초로 이름을 올린, 게임의 신이라 불리는 닌텐도의 "미야모토 시게루"는 말했다. "나는 기술의 발전이 반드시 게임의 재미를 향상시켜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글쓴이 = 이준영 객원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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