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MS-닌텐도, 제왕의 자리는 누구에게
지난해 E3 게임쇼부터 시작된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이하 소니),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 닌텐도의 전 세계 비디오 게임 시장의 제왕자리를 위한 혈투가 이번 E3 게임쇼를 통해서 클라이막스에 도달했다. 지난해 MS의 독주를 눈물을 머금고 바라봐야 했던 소니와 닌텐도가 차세대기의 실체를 공개함에 따라 이들의 경쟁 구도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것.
3社는 모두 이번 E3의 승자가 향후 전 세계 게임시장의 제왕이 될 것이라는 판단 아래 총력을 다해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는 중이다. 소니는 PS3와 '파이널 판타지13', '메탈기어 솔리드4' 등 킬러 타이틀을 공개해 이번 E3의 주인공이 PS3라고 선언하고 있으며 닌텐도는 Wii의 신개념 컨트롤러를 메인으로 내세우며 이것이 진정한 차세대 게임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지난해 E3의 주인공이었던 MS 역시 이에 뒤질세라 '헤일로3' '기어 오브 워' 등 XBOX360의 성능을 십분 활용한 킬러 타이틀을 내세우며 1년 동안 쌓은 내공의 힘을 보여주겠다고 나선 상황이다.
*소니, PS3는 게임기가 아니라 차세대 멀티미디어 기기다.
'PS3 출시 전까지 차세대 게임기 시대가 도래 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던질 정도로 PS3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보인 소니. 하지만 소니의 이런 자신감에도 불구하고 현재 PS3에 대한 반응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하다. 소니가 E3를 앞두고 컨퍼런스를 통해 발표한 PS3의 가격에 게이머들이 질타를 보내고 있는 것. 이번에 발표된 PS3의 가격은 저가형 499달러, 고급형 599달러로 차세대 게임기 중 가장 먼저 발매된 XBOX360에 비해 무려 200달러가 비싼 가격이다. 아직 공식 발표가 있지는 않았지만 닌텐도의 Wii 역시 XBOX360과 비슷한 수준으로 발매될 확률이 높아 차세대 게임기 중 가장 비싼 게임기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소니 측은 이런 게이머들의 반응에 대해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비싼 가격이긴 하지만 차세대 미디어인 블루레이를 지원하고 있으며 다른 게임기와는 압도적인 성능을 자랑하기 때문에 이러한 가격은 당연한 것이라는 것. "고가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을 때의 금액과 사원식당에서의 식사의 금액을 비교하는 것은 넌센스"라는 쿠타라기 켄 사장의 발언은 이런 소니의 입장을 대변해준다.
실제로 이런 소니의 발언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 편이다. PS3의 가격은 게임기로는 상당히 비싼 편이지만 일반 블루레이 플레이어와 비교하면 30% 정도 싼 가격이다. 그리고 XBOX360의 경우에는 일반 DVD를 기본 매체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차세대 미디어인 HD- DVD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기기를 추가로 구입해야 한다. 즉, 게임기라는 측면만을 생각하면 비싼 가격이지만 차세대 멀티미디어 기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얘기. 이렇다보니 소니 측은 '"PS3는 게임기가 아니라 차세대 멀티미디어 기기"라며 "제조원가와 기술을 고려하면 PS3의 가격은 너무 싼 것일 수도 있다"고 자신 있게 주장하고 있다.
이런 소니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바로 PS3용 게임의 압도적인 그래픽이다. PS 진영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의 최신작 13편을 비롯해 일본보다 북미 지역에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메탈기어 솔리드4', 격투 게임의 지존 '버추어 파이터5', '철권6' 등 킬러 타이틀을 다수 선보이며 PS3의 성능을 과시하고 있는 것. 그것도 지난해 E3에서 보여줬던 컨셉 영상이 아닌 실제 플레이 영상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게이머들은 비싼 가격에 항의하면서도 이런 타이틀의 동영상에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기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번 E3에서 PS3의 성적표는 분명 마이너스일 수밖에 없다. 차세대 멀티미디어 기기라고는 하지만 게임기를 원하던 게이머들의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힘든 비싼 가격은 그래픽에서 따놓은 점수를 모조리 까먹을 만큼 충격적이었으며, 진동 기능을 빼고 닌텐도의 Wii를 모방한 듯한 컨트롤러 역시 마이너스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는 사항이다. 뿐만 아니라 PS2의 확실한 우방이었던 'GTA'와 '위닝일레븐' 시리즈의 신작이 XBOX360으로 선발매될 예정이어서 예전처럼 타이틀의 우위도 과시할 수 없게 됐다. 야심차긴 했지만 괴로운 출발이 되어버린 것이다.

닌텐도, 이것이야 말로 차세대 게임기
PS3의 가격 발표가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고 있기는 하지만 제왕 자리의 재탈환을 노리는 닌텐도의 차세대 게임기 Wii도 상당한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닌텐도가 Wii를 통해서 노리고 있는 것은 그래픽 경쟁보다는 바로 진정한 게임의 재미가 무엇인지를 돌아보겠다는 것.
"현재 여러분의 집안에는 게임을 플레이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이 명확하게 나뉘어져 있다. 우리들은 이런 상황을 Wii로 변화시켜 이러한 사람들 사이에 있는 벽을 점차 부수어 가고 싶다. Wii는, 연령, 성별, 게임 경험의 유무를 불문하고, 누구라도 곧바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Wii는 누구에게나 신선하고 새로운 체험을 제공할 예정이다. 누구라 할지라도 매일 무엇인가가 늘 새롭다. 이것이 우리들의 대답이다"라는 닌텐도 이와타 사장의 발언은 닌텐도의 목표가 무엇인지 단적으로 얘기해준다.
닌텐도가 이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준비한 것은 다른 게임기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창적인 컨트롤러다. 이 컨트롤러는 기존의 양손으로 잡고 플레이하는 패드가 아니라 무선 인식이 가능한 자유로운 컨트롤러로 게임의 형식에 따라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 컨트롤러가 게이머의 움직임을 감지해 게임 상에서 완벽하게 표현해주기 때문에 '젤다의 전설'을 플레이하면 게이머가 링크가 되어 스스로 칼을 휘두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라 음악 게임을 한다면 직접 지휘를 할 수도 있고 낚시 게임을 한다면 컨트롤러를 이용해 실제 낚싯대를 휘두르는 동작을 입력할 수 있다.
또한 소니가 이를 모방해서 PS3 컨트롤러에 모션 플레이 기능을 추가하고 세밀한 조작 때문이라며 진동 기능까지 제거하자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진동 기능에다 컨트롤러에서 별도의 음향을 지원하는 스피커 기능까지 추가했다. 그리고 너무 독창적인 나머지 다른 게임기와의 호환성 문제가 단점으로 지적되자 이것을 보완하기 위한 클래식 방식의 컨트롤러도 추가로 발표했다. 완벽한 준비를 통해 혁신성과 범용성을 모두 잡은 것이다.
그리고 뛰어난 온라인 기능을 통해 기존 슈퍼패미컴, 닌텐도64, 메가드라이브, PC엔진의 게임을 유료로 다운로드 받아 즐길 수 있도록 해 마니아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그동안 약점으로 지적되던 라인업 부족 문제도 확실하게 해결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까다로운 게이머라도 '슈퍼 마리오 갤럭시' '메트로 프라임 3' '젤다의 전설' '파이어 엠블렘' 등 기존 닌텐도의 간판 타이틀에 남코 반다이의 '드래곤볼 Z', 스퀘어 에닉스의 '드래곤 퀘스트 소드 - 가면의 여왕과 유리의 탑'과 '파이널 판타지 크리스탈 크로니클', 세가의 '소닉 와일드 파이어', 테크모의 '슈퍼 스윙 골프 팡야' 등 충실한 서드 파티 게임으로 무장한 Wii를 두고 타이틀이 부족하다는 얘기는 꺼낼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다른 차세대 게임기에 비해 성능이 떨어지는 탓에 비주얼적인 측면은 약점을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기존 게임기에 비해 뛰어난 그래픽이긴 하지만 보고 눈이 휘둥그레지는 감동은 없다고 할까? 하지만 자신의 손동작에 따라 게임 속 캐릭터가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모습을 본다면 그 순간 닌텐도의 추종자가 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MS, 소니의 발표에 회심의 미소를 짓다.
3社 중 가장 먼저 준비를 끝낸 탓에 작년 E3의 주인공의 자리에 무혈입성한 MS에게는 이번 E3는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자리일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에 모든 것을 보여준 탓에 차세대 게임기의 실체라는 확실한 무기를 들고 나온 소니와 닌텐도에 대항할 적당한 무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소니의 PS3 가격 발표로 인해 MS의 씁쓸한 표정이 환한 웃음으로 바뀌었다. PS3의 예상을 뛰어넘는 가격 덕분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XBOX360의 가격이 더욱 돋보이게 된 것. 때문에 네티즌 사이에는 "소니 발표 전에 초긴장상태였던 MS가 발표 이후 웃으며 회식을 하러 갔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올 정도로 MS는 이번 행사를 즐겁게 바라볼 수 있게 됐다.
MS가 이번 행사에서 자신 있게 웃을 수 있게 된 것은 소니의 부진뿐만이 아니다. 다른 회사보다 1년이나 빠르게 차세대 게임기 시장에 입성한 만큼 그 동안 쌓은 내공을 바탕으로 게이머들의 시선을 확 끌 수 있는 높은 퀄리티의 게임을 다수 준비한 것이다.
이 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XBOX 진영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타이틀인 '헤일로3'. 이번에 공개된 영상은 CG 영상이 아닌 실제 게임 영상으로 '헤일로' 시리즈의 주인공인 '마스터 치프'가 적의 기지를 발견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그리 길지 않은 영상이지만 이때 화면에 나오는 거대한 적 기지와 대형 함 등의 모습은 '헤일로 3'를 기대한 많은 게이머들에게 충분한 만족감을 안겨줬다. 아직 출시일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PS3를 견제할 유일한 타이틀이라는 평가와 함께 11월 달에 출시가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생겨나고 있는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작년 E3에서 주목을 받았던 에픽게임즈의 '기어 오브 워' 역시 MS가 이번 행사를 위해 준비한 비장의 무기. 작년 'E3 2005'에서 공개되면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킨 '기어 오브 워'는 이번 'E3 2006'을 통해서 더욱 진화된 모습을 선보여 게이머들을 경악시켰다. 특히 음폐, 엄폐를 통한 전략적인 전투가 상당히 인상적이며 지형을 이용하는 적들의 뛰어난 인공지능은 실제 게이머와 싸우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 이런 분위기라면 '헤일로'에 버금가는 킬러 타이틀이 또 하나 탄생될 기세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북미 지역에서 PS2가 돌풍을 일으킨 주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GTA' 시리즈와 '위닝 일레븐' 시리즈의 최신작이 XBOX360으로 선행 발매된다는 것도 MS쪽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제 더 이상 킬러 타이틀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듣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제 화살은 쏘아졌다.
1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계속된 XBOX360의 혼자 달리기가 드디어 끝나고 이제 본격적인 차세대 게임기 전쟁이 서막을 올렸다. 이번 E3의 상황을 종합해보면 소니가 가격이라는 예상치 못한 걸림돌 때문에 살짝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MS가 이로 인해 엄청난 반사 이익을 얻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추구하는 바가 달랐던 닌텐도는 Wii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참신한 게임기라는 이미지를 게이머들에게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이번 E3를 계기로 소니의 장기집권 체제에 금이 가면서 평등한 3강 구도가 그려지게 된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블루레이 등 차세대 멀티미디어 시장의 대중화라는 변수가 남아있기 때문에 이 같은 결론은 성급한 것 일수도 있다. 하지만 오는 11월에 비디오 게임 시장의 역사가 다시 씌여진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