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비주얼의 진보, 발칙한 상상력에 무릎을 꿇다'
미국 현지 시간으로 지난 10일부터 12일까지 3일간 개최됐던 세계 최대의 게임쇼 E3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이번 E3의 특징은 그동안 '비주얼 중심의 화려함' 위주로 진보를 거듭했던 게임이 이제는 '아이디어'와 '재미' 위주로 그 방향을 틀고 있다는 것. 또한 좀 더 게임이 생활처럼 '친근감있게' 다가갈 수 있도록 방향을 선회했다는 것이다.
이런 진보의 기류를 만들어낸 것 중 가장 돋보이는 회사는 단연 닌텐도였다. 닌텐도의 게임은 과거 소니가 보여온 혁신적 비주얼에 대한 메리트는 없었으나, '게임이 주는 요소'를 정확하게 짚고 있다고 할만큼 재미있는 성과물들을 만들어냈다.
컨트롤러를 직접 움직여 '낚시를 하고' '화면을 마구 난도질하는' 등 '몸을 움직여서 하고 싶은 것을 행한다'는 닌텐도의 게임들은 게이머들에게 쇼크라고 할만큼 크게 다가왔다. 이들 게임들은 '나름대로 게임을 제법 알고 있다'고 하는 전문가들의 뒤통수 조차 마구 때려대는 '발칙한 상상력'이 담긴 게임들이었다.
PS 진영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메탈기어 솔리드 시리즈의 개발자 코지마 히데오의 'Wii로 당장 게임을 만들고 싶은 심정'이라는 발언이나 닌텐도 부스 평균 입장 대기 시간 4시간, 전세계 모든 매체에서 이번 E3의 승자는 닌텐도라고 발언한 것 등은 이번 행사에서 닌텐도가 준 쇼크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와 전면으로 대적하는 소니 또한 혁신적인 게임들을 잔뜩 선보이며 '비주얼의 진보'에 힘을 실어주긴 했지만, 비주얼의 진보에 필연적인 고성능 하드웨어 플랫폼은 가격경쟁에 치명적인 약점을 보이게 되어 이전처럼 '보장된 장미빛 미래'를 꿈꾸는 건 다소 힘들게 됐다.
이런 재미와 친근 이라는 요소는 단지 비디오 게임에만 국한 된 모습은 아니였다. 이런 테마는 묘하게도 이번 모바일 게임과 온라인 게임에도 잘 드러나고 있었다. 흔히 모바일 게임은 시간을 죽이는, 즉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용도로 쓰이기 마련. 하지만 이를 다시 풀이하면 '언제 어디서든 편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가지고 있는'이란 뜻도 되기 때문에, 이번 E3에서는 모바일 게임도 새로운 관심사로 떠올랐으며 좀더 재미있고 친근함 이라는 요소로 사람들에게 각광을 받았다.
온라인도 마찬가지로 이번 E3에서 많은 변화된 모습을 보였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콘솔의 그래픽을 따라잡기에만 급급했던 온라인 게임들은 그래픽 퀄리티를 비슷한 수준까지 끌어올리는데 성공하면서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색다른 시도를 보이고 있다. 작년에도 일부 공개되기는 했지만 FPS와 MMORPG를 결합한 헬게이트 런던이나 이번 E3를 통해 날아다니는 캐릭터의 환상적인 모습을 선보인 엔씨의 '아이온' 등은 온라인 게임 세계에도 변화의 바람의 불기 시작했다는 것을 확연히 보여준다. 또한 이 게임들은 개발자가 만든 세계에서 게이머들이 놀았던 기존의 게임들과 다르게 게이머들이 직접 역사를 창조하고 세계관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즉, 이제는 '게임의 주체는 개발자가 아니라 게이머'라고 강력히 주장하는 게임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E3는, 단지 외형적인 발전이 아니라, 내부적인 '재미'의 디딤돌을 새로 다지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E3를 통해 이러한 새로운 시도가 새로운 시장 창출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만큼, 개발사들도 게이머들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보다 '발칙한 상상력'을 많이 적용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