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그의 새로운 패러다임 앞에 테란들 '벌벌'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크')가 오랫동안 게이머들의 사랑을 받아온 이유는 바로 절묘한 종족 밸런스 때문이다. 테란과 저그, 프로토스라는 세 종족이 삼국지를 연상 시킬 정도로 서로에게 확실한 장단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이상의 종족 밸런스를 갖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은 나오기 힘들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테란은 저그에게, 저그는 프로토스에게, 프로토스는 테란에게 강한 면모를 보여 가위-바위-보 관계가 성립되는데 최근 저그가 이러한 종족 상성을 뛰어 넘어 최강의 종족으로 손꼽히고 있다. 사실 그동안 각 종 '스타크' 리그만이 아니라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테란이 최강의 종족으로 칭송 받았지만, 근래에는 테란에게 약한 면모를 보였던 저그가 테란들을 압도하면서 최강 종족의 양상을 바꿔놓고 있는 것이다.

* 디파일러의 재발견, 저그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저그가 테란을 상대로 기를 펴게 된 것은 마법 유닛 디파일러의 재발견에서 시작된다. 그동안 저그는 상대보다 많은 멀티를 확보해 쏟아져 나오는 물량과 저글링+러커의 지상군 조합, 빠른 뮤탈리스크를 활용한 상대 견제와 최종 테크 유닛 울트라리스크를 활용한 공격이 자주 사용됐다. 하지만 테란의 마린, 메딕 조합이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비해 높은 효율성을 갖추고 있어 저그의 생산력을 압도할 경우가 많았고 특별히 테크트리를 투자하지 않아도 되는 기본 유닛이라는 점에서 저그에게는 늘 부담이 됐다. 또한 여기에 탱크나 사이언스 베슬까지 추가되면 그야말로 저그에게는 괴로운 싸움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디파일러의 마법 다크스웜과 플레이그의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이 같은 양상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상대 바이오닉 병력의 공격을 무력화 시키는 다크스웜은 저글링, 러커, 울트라리스크와 같은 지상 병력이 두려움 없이 적진으로 뛰어들 수 있게 돕고, 플레이그는 지속해서 회복을 하는 마린, 메딕 조합을 순식간에 무력화 시킬 수 있는 해결책으로 떠올랐다.

물론 저그는 디파일러를 활용할 수 있는 하이브 체제까지 유연하게 넘어갈 수 있도록 시간을 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러커나 뮤탈리스크를 활용해 상대를 견제해주고, 디파일러의 천적인 사이언스 베슬을 격추하기 위한 히드라리스크와 스컬지의 활용 등이 필요하다. 테란이 마린, 메딕, 탱크, 사이언스 베슬의 조합을 갖춰야만 하는 것처럼 저그도 갖춰야할 조합이 늘어났지만 조합을 갖춘 뒤에는 저그가 뒤지지 않는 싸움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포인트다. 또한 기본적으로 저그는 '스타크'에서 가장 생산력이 뛰어난 종족이기 때문에 병력 소모 뒤에 빠른 재충전으로 테란을 압도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 저그의 새로운 체제 3 해처리

최근 저그의 새로운 트랜드로 자리 잡은 빌드 오더 중 하나가 바로 3 해처리 체제다. 기존에는 빠른 스포닝풀 후에 저글링을 활용한 초반 공격과 여유 있게 앞마당 멀티를 확보한 뒤에 테크트리를 투자해 레어 체제 유닛들을 활용하는 빌드들이 자주 사용됐다. 여기에 좀 더 보완된 체제가 바로 3 해처리 체제다. 물론 기존부터 많이 사용된 체제였지만 최근에는 저그를 사용하는 게이머라면 유행처럼 사용하고 있는데 앞서 언급한 빌드오더들의 단점을 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해처리를 하나 더 확보해 유닛 생산에 여유가 생긴다. 해당 빌드 건물에서 유닛이 생산되는 다른 종족과 달리 저그는 해처리에서 모든 유닛을 생산 하기 때문에 해처리의 숫자는 곧 유닛의 양으로 연결된다. 3 해처리 체제는 게임 초반부터 이러한 저그의 생산력을 보완하게 됐다.

이와 함께 상대의 빌드에 따라 맞춤 선택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더해진다. 저글링이나 오버로드를 통해 상대를 정찰한 후 상대의 빌드나 유닛들, 그리고 공격 타이밍을 확인하고 나서 3개의 해처리에서 모아둔 라바를 한 번에 유닛으로 생산하면서 빠른 대응이 가능해졌다. 상대가 빠른 바이오닉 러쉬를 시도한다면 드론을 생산한 뒤 성큰 콜로니를 짓거나 저글링, 러커 등으로 대응하고 오히려 상대가 움츠러든다면 다른 멀티를 확보하던가 뮤탈리스크를 한 번에 다수 생산해 흔들기가 가능하다. 특히 근래에는 레어로 체제를 변환한 뒤 스파이어와 히드라리스크덴을 함께 확보하는데 이는 테란이 어떤 조합을 갖추느냐에 따라 맞춤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맵의 특성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전개가 되고 있지만 이렇게 3 해처리 체제는 유연한 체제 변환과 상대에 전략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저그의 생산력을 극대화 해준다는 점에서 저그들이 선호하는 빌드로 손꼽히고 있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천적 테란을 압도할 수 있는 것이다.

* 스타리그 역시 변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스타리그의 양상을 봐도 두드러진다. 과거에는 삼성칸의 박성준이 선보인 레어 체제 유닛의 활용(생산력을 바탕으로 한 저글링과 러커의 공격), 엠비씨 히어로의 박성준이 자주 활용한 뮤탈리스크 견제 등이 주를 이루었다면 근래에는 CJ 엔투스의 마재윤, SK텔레콤 T1의 박태민 등이 선보이는 운영형 저그들이 테란에게 좋은 승률을 거두고 있다.

특히 최근 '본좌'의 자리에 오른 마재윤의 경우 저그가 테란에게 상성상 불리한 점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유연한 체제 전환과 디파일러의 활용으로 테란을 요리하는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제 3회 슈퍼파이트에서 이윤열과 펼친 경기를 보면 이러한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날 펼쳐진 경기에서 마재윤은 대부분 3 해처리 빌드를 선택 했고 극에 이른 디파일러의 활용을 선보였다. 특히 테란과 저그의 모든 것을 보여준 2경기에서는 저그가 가장 두려워한다는 SK테란(마린, 메딕을 기본으로 하고 다수의 사이언스 베슬을 갖추는 조합) 체제를 갖춘 이윤열을 상대하는 마재윤의 활약이 빛났다. 마재윤은 초반 뮤탈리스크 체제를 선택했지만 이렇다할 피해를 주지 못 했고 오히려 이윤열은 맵 알카노이드의 특성을 살려 드롭쉽 특공대로 마재윤의 멀티를 파괴하고 중립 건물을 파괴해 진출로를 열었다. 하지만 마재윤은 멀티 곳곳에 디파일러와 나이더스 커널을 활용해 이윤열의 끈질긴 공격을 막아냈다. 특히 신들린 듯한 다크스웜과 플레이그의 활용은 끊임없이 공격하는 이윤열의 바이오닉 병력들을 번번히 막아내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곰TV를 통해 공개된 마재윤의 개인 화면을 시청한 게이머들은 "과연 마재윤이다. 저렇게 디파일러를 활용하다니 놀랍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결국 마재윤은 이윤열을 3:1로 제압하고 '본좌' 논란에 종지부를 찍으며 2006년 최고의 게이머 자리에 우뚝 서게 됐다.


* 프로토스와 테란의 거센 반격을 기대해본다

올해는 저그가 최강의 종족으로 손꼽힐만큼 활약이 두드러진 해였다. MSL에서는 저그 대 저그의 결승전이 열릴 정도였고 프로리그에서도 매경기마다 저그들의 활약이 승패를 좌우할 정도로 숙적 테란을 뛰어넘은 저그의 기세는 눈부셨다. 또한 마재윤과 같은 조용호, 심소명 등과 같은 걸출한 스타들이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면서 박성준이 OSL 2회 우승을 차지한 뒤로 가장 좋은 한 해를 보내지 않았나 싶다.

반면 상성상 저그에게 불리한 프로토스는 극도로 힘든 한 해를 보냈다. 가뜩이나 힘든 저그전이었지만 3 해처리 체제로 인해 더욱 힘들게 됐고 '프로토스의 희망은 없다'라는 비관적인 얘기가 나올 정도로 힘겨운 시기를 보냈다. 물론 강민과 오영종 등이 어느 정도 선전했지만 전체적인 판도를 뒤바꿀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당분간은 프로토스의 시련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테란 역시 '스타크' 최강의 칭호를 빼앗기면서 다시 왕좌를 탈환하기 위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절대질 것 같지 않았던 마재윤이 최근 곰TV MSL 개막전에서 STX 소울의 진영수에게 패배한 것처럼 게임에 '완벽'이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빌드라고 해도 약점이 되는 타이밍이 있기 마련이고 그에 대한 대비책이 언젠가는 발견되기 때문이다. 한 때 테란이 프로토스를 상대로 사용했던 FD 체제가 절대 깨어지지 않을 것 같았지만 최근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빌드가 되었다. 그만큼 게이머들의 파해가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최강의 자리에 오른 저그지만 이를 뛰어넘기 위한 테란과 프로토스의 도전과 연구도 계속될 것이다. 앞으로 나머지 두 종족이 어떤 방법으로 저그라는 거대한 산을 무너뜨릴지 지켜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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