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을 때려잡아야만 게임이 되는건 아니다 by 목장이야기

지금까지 수천에 달하는 용사가 비슷한 비율의 마왕을 때려잡기 위해 수천억에 해당할 적들과 싸워왔다. 이러한 세상을 구하는 싸움에는 항상 결말이 존재하였으며 감동적인 에필로그와 함께 용사의 싸움도 막을 내리고 마침내 다른 용사가 나올때까지 이 세상은 평화로운 안식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WOW나 리니지같은 MMO형식의 게임이 주류가 되고 몬스터 헌터같은 MO형식의 게임이 인기를 끌면서 용사들은 더이상 안식의 나날을 누릴 수 없게 되었다. 창궐하는 악은 아무리 노력해도 사라지지 않았으며 밑도 끝도 없이 강해지는 용사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적들 또한 그 한계를 모른채 계속해서 강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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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가적 향유의 나날
메가톤 히트 타이틀인 몬스터 헌터의 성공이후 PSP 타이틀의 주류는 어느덧 소위 말하는 몬스터헌터 류의 게임이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최대 4인까지 즐길 수 있는 동시 플레이를 통한 끝없는 전투의 장은 비록 단순하지만 게이머들이 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가장 명확한 해답을 제공해주었다. 게다가 지속적으로 제공되는 다운로드 콘텐츠는 자칫 쉽게 소모될 수 있는 콘텐츠에 장기적인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기까지 하였다. 이후에 등장하는 게임들 역시 이런 MO형식을 빌렸으며 강한 적의 토벌과 아이템 수집에 중점을 둔 게임성을 바탕으로 애드 훅이라는 강력한 커뮤니티 도구를 앞세워 성공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오늘 소개할 게임인 목장이야기가 주목한 포터블 기기로 즐길 수 있는 재미는 이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성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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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세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번에 PSP로 등장한 목장이야기는 누군가와 싸워서 무언가를 얻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으며 목표를 위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자신의 행동에 바로 반응해서 변화하는 것 또한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농작물은 심자마자 쑥쑥 자라 잭의 콩나무처럼 커지지 않기 때문에 적어도 몇 일간은 지속적으로 물을 뿌려주고 관심을 가져줘야 비로소 그 열매를 제공한다. 가축들도 마찬가지다. 달걀에서 병아리에 걸쳐 닭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결코 짧지 않으며 아무것도 주지 않는 병아리를 닭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모이를 주고 관심을 주어야 한다. 변화의 주체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속해있는 환경으로 바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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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이 시리즈를 접한 게이머들은 아마도 초반에 지루함과 막막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화려한 눈요기로 오프닝을 장식하지도 않으며 딱히 사명감에 불타게 할 어마어마한 위기가 세상을 위협하지도 않는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남긴 유산으로 받은 목장만이 덩그러니 주인공의 눈앞에 놓여 있으며 평범하기 짝이 없는 주인공의 손에는 아무것도 쥐어져 있지 않고 조그만 마을을 돌아다니는게 전부인 상태로 목장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게이머는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산뜻한 해방감 속에서 게임을 진행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마을에선 강요받는 것도 꼭 해야만 하는 일도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포터블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꾸준히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콘텐츠는 상성이 잘 맞는다. 지하철이나 버스 속에서 플레이어는 큰 긴장없이 자유롭게 목가적 나날을 향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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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를 갖고 꾸준히 행한 조그만 노력들이 지속적으로 자신의 환경에 변화를 가져온다. 지속적인 노력과 관심을 보여준 이성들은 주인공을 좀 더 호의적으로 대하기 시작할 것이며, 어느덧 목장에는 조금씩이지만 자신의 자산이라 부를만한 것들이 쌓이기 시작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물을 뿌리고 농사만 짓던 일상에 아침마다 소의 젖을 짜야하고 닭의 모이를 줘야하며, 닭들이 낳은 계란을 회수하는 것들이 추가된다. 이러한 계란은 소중한 자산으로 팔수도 있으며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주는 선물로 활약할 수도 있다. 물론 원한다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게임을 전개해 나가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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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등장하는 적을 물리치는데 골몰하던 게이머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되었다. 싸움의 대상은 농작물을 망치거나 방목한 가축들을 병들게 하는 비와, 물을 주지 않으면 농작물을 말라죽게 하는 태양으로 바뀌었으며, 실제 이 게임의 기본적인 목표인 레저랜드의 건설을 막기까지의 시간만이 이 게임의 주된 방해요소라고 볼 수 있다. 게임내의 소소한 변화는 계절이 지나감에 따라 등장하는 이벤트에 의해 더욱 극적으로 바뀌며 당신의 주변에 존재하는 NPC들은 당신의 변화에 맞춰서 특정 이벤트를 일으키는 형태로 바뀌어간다. 게다가 레저랜드의 건설을 막았다 하더라도 당신은 여전히 마을에 남아 계속해서 변해가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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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게임의 기본 시스템은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에 가까운 형태를 띠고 있으며 거기에 연애나 아르바이트 등의 다양한 생활들을 양념으로 집어넣었다. 게임의 기본적인 목적이 일단 돈을 모아서 레저랜드의 건설을 막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물론 다른 방법도 존재하지만 가장 우선적으로 선보이는 것은 땅값 시세인 50000G를 버는 것이다)게이머는 돈을 벌기 위한 작업을 최우선시 해야 한다. 일단은 주의 깊게 길을 돌아다니면서 여러 가지 과일이나 풀 등을 얻을 수 있으며 해안가에는 가끔 희귀한 아이템이 파도에 휩쓸려 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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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자원은 주인공의 체력이다. 주인공은 체력을 소모해서 각각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며 아르바이트를 통하여 체력이란 자원을 돈으로 바꿀 수 있다. 이중 초반에 가장 유용한 것은 아르바이트이며, 특히 광산과 벌목 아르바이트를 통해야만 자율적으로 채광과 벌목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끝내야 할 것이다. 또한 요리 아르바이트도 중요하다. 이는 단순히 아르바이트에서 끝나지 않고 비록 랜덤이지만 요리 레시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남는 요리재료를 얻어다가 팔 수 있다는 점에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배가 된다. 목장이나 식료품점은 각각 초반에 달걀과 우유를 수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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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 찻집이나 도구점을 가면 각 주민들의 요구사항이 들어간 퀘스트들이 존재함을 알 수 있으며, 이를 완료하면 소정의 보수를 받는다. 투자대비 이득은 천차만별이니 잘 선택해서 완료하면 나름 중요한 수입원이 될 수 있고, 단순한 수집이나 농사에서 벗어나 분명한 목적의식을 제시해준다. 주의깊게 보면 실은 정말 다양한 행동들을 통해서 모든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는데, 이를테면 송충이를 잡아다 주는 퀘스트도 있고 허브나 풀을 가져다주는 퀘스트도 있으니 왠만하면 주변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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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번 돈으로 도구들을 경량화 하면 도구를 사용한 작업을 할 때 드는 체력이 더 적어지기 때문에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목장을 계속해서 증축하면 주인공이 할 수 있는 일들도 늘어나고(이를테면 요리)그에 따라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실제 목장을 경영하는 요소가 이 게임의 가장 큰 핵심이다. 물론 숨겨진 진짜 목적으로 알려진 마음에 드는 이성과의 결혼도 있지만 역시 연애는 공짜가 아닌 법. 마음에 드는 이성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대화와 선물공세가 필요하니 많은 여성을 동시에 공략하고 싶다면 열심히 돈을 버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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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즐기는 법
현실을 잊고 즐기기 위한 게임은 또 하나의 현실이 되어 게이머를 압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온라인 상에서 이어지는 끝없는 전투는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격차를 현실만큼이나 명확히 인지시켜주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아이템 현금 거래 등의 게임외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이를 잊고자 하는 서글픈 노력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과연 그런 노력들이 게임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일까? 오히려 손에 닿지 않을 목표를 향해 스트레스를 감수하며 계속해서 달리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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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잠시 손을 놓고 치열했던 전투는 잊기로 하자. 위에서도 언급한대로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을 세상이라면 굳이 무리해서 치열한 싸움을 감행해야 할 이유는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조그만 변화에 한번 눈을 돌려보는건 어떨까?. 어쩌면 그곳에 다른 종류의 정답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딱히 마왕을 잡거나 사악한 용을 잡지 않아도, 당신의 조그만 노력들에 의해 세상은 변할 수 있음을 목장이야기는 증명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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